매거진 시랑 나랑

소록도 동백

--나병 환자들의 슬픔을 담고 있는 나무 한 그루

by 한상림


소록도 동백


한상림


잘 꾸며진 정원 한 켠

물끄러미 병실을 바라보고 서 있는

동백나무


빗줄기에 대고

송알송알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꽃 편지 펼쳐놓고

아무리 적어 봐도

서러운 이야기들 뿐


보리깜부기 볼거질 때면

짙은 눈썹달 그려가며

쏟아내던 붉은 눈물


꽃잎 떨어지던 밤

바다건너를 꿈꾸던

그해 봄.



2013년 4월 23일


소록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는 아직도 아픈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살고 있다.

먼 바다 건너 뚝 떨어진 섬,

지금은 다리로 이어져서 배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소록도에서 단절된 삶을 살았을 조상들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병실 앞 뜨락에 서있는 동백나무 한 그루,

비를 맞으며 붉은 꽃잎을 쏟아놓고 있는 거다.


눈썹 빠진 사람들,

얼굴이 뭉개지고 살이 썩어들어가면서도

가족과 떨어져 바다 건너만 바라보며 애간장 태우던 곳


소외 당한 사람들

가족이 그리워, 그리워만 하다 죽어갔던 사람들

일본놈들 실험대상으로 해부 당하고

마루타가 되어

살갗을 찢기며 두려움에 흘렸을 피눈물

저 붉은 꽃잎은 어찌 그리도 붉고 애닲던지...

피비린내기 아직도 흥건하다.


종일 비가 내리는 날, 전날 밤새 달려간 소록도 현장에서

준비해 간 재료로 직접 짜장면 700인분을 만들었다.


주민들이 직접 와서 먹기도 하고

일부는 마을로 가져가서 각 가정으로 배달해 주기도 하였다.


소록도에는 한하운 시인님의 시비가 있는데

한하운 시인 <보리피리> 시비 앞에 서서

보리피리 시를 읽어보고 즉석에서 썼던 시이다.


보리피리

한하운(1915-1975, 본명 태영)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릴 때 그리워

필-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가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필-ㄹ닐니리

소록도에 있는 한하운 시비 <보리피리>

한하운 시인


<표지 사진은 당일 현장애서 직접 촬영한 동백나무>

<본문 사진 2장은 다음 사이트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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