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랑 나랑

모과와 석류

- 자작시

by 한상림

모과와 석류



한상림




못난이가 못난이를 알아본다고 모과와 석류가 마주 보고 실랑이를 벌인다.

울퉁불퉁 매끄럽지 않은 쪽은 매한가지,

제 모습은 안 보고 서로 못생겼다며 비아냥거리며


“석류, 넌 정말로 못생겼어

너랑 마주하고 있으면 내 친구라는 것이 창피스러워”


드문드문 박힌 검은 반점의 모과를 본 석류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려 벌건 속을 보이면서 침을 톡톡 쏘아댄다


“뭐라고, 모과 너 지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아! 과일도 아닌 것이 먹을 것도 없으면서 고집불통 바람둥이 주제에 냄새만 풍기고…"


“석류, 너 젊었을 때 작고 앙증맞은 붉은 꽃송이가 얼마나 예뻤는데,

따가운 햇볕과 비바람에 시달려 지금은 시큼털털 떫은 것이

맛도 없으면서 입술만 빨갛게 덧칠하고'

아직도 지난봄 밤 키스하던 남녀의 입술 훔쳐보던 그 눈빛으로

누굴 그리 유혹하려는 건데? "


옥신각신 다툼 끝에 석류가 먼저 등 돌리며 선언했다.


"야, 모과, 너, 앞으로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네 친구라 하지 마

너 같은 친구 둔 적 없어


떼구르르~~~

농익은 모과 한 알이 나무에서 떨어져 아스팔트 골목으로 구른다


이미지 출처: 모과, 석류 . 다음 이미지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은 몇해 전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나서다.

아이러니하게도 술 한잔 하면서 잠시 친구와 나누던 대화 중에서 힌트를 얻게 된 것이다.

별 말도 아닌데 괜한 친구가 던진 말 한마디에 심통을 부렸던 안 좋은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기 허물은 덮고 남의 허물을 들추려 하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생각 없이 내뱉게 된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맞아 죽는 개구리 격이다.


내 허물을 감추고 싶은 만큼, 남의 허물도 눈 감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모과를 못 생겼다고 말하는데, 요즘 모과는 모양도 매끄럽고 예쁜 것도 많다.

사실 토속적인 모과는 울퉁불퉁 못생겼지만, 아주 향이 강하고 좋다.


고향집 폐가 뒷 산엔 200년 묵은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올 가을엔 몇 개나 달렸을까?

그 모과는 정말 못생겼지만 향은 진하고 모과차를 담그면 아주 맛이 좋다.

이 모과나무를 보고 쓴 시도 있다.


올 겨울에도 이 모과나무에서 딴 열매로 진한 모과차 한 잔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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