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손택수 시인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 중에서
"어부바", 하며 넓고 따스한 등을 내밀던 아버지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52세 젊은 나이에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주 다투시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마다 늘 어머니 편에 서서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릴 적에도 아버지의 등에 업혀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내게 아버지는 대쪽 같은 성격에 워낙 말수가 없기 때문에 결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위엄스러운 존재였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아마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였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일흔이 갓 넘어서 암 진단을 받고 2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 남편에게서 그 당시의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서서히 굽어가는 남편의 등을 바라보면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때의 나처럼 우리 아이들도 점점 힘없이 작아지는 남편의 등을 읽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택수 시인은 아버지의 등을 밀면서;
우리들 아버지상을 새롭게 조명한다. 평생 일만 하시던 아버지의 굽은 등과 움푹 패인 지게 자국을 병원 욕실에 들어와서야 발견한다. 돈이 아까워서 목욕탕 한번 같이 가지 못하고 아버지가 쓰러지고 나서야 등짝에 새겨진 아버지의 지게 자국을 보았다. 그리고 그토록 함께 가고 싶었던 소원 하나 들어주신 거라고 했다. 요즘 아버지들은 세상에 소외당하고 하물며 퇴직 후 세 끼 집에서 밥을 먹는 다하여 "삼식이 새끼"라는 비어까지 웃으면서 말을 한다. 가족을 위해 밤낮 죽어라 일을 하면서 가정을 지켜온 남편이자 가장인 우리들의 아버지. 젊은 날 아버지들이 그토록 자신 있게 내밀던 따스했던 넓은 등은 모두 어디로 떠나고 없는가. 세파에 등 떠밀리듯 기울어진 양 어깨와 굽은 등을 보이면서 쓸쓸히 뒷모습을 보이는 아버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그 길 끝에 우리의 고독한 아버지들이 서 있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