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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Feb 25. 2022

질그릇을 빚는 삶이 인생이다.

  - 후회하는 세 가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을 인생이라는 질그릇에 비유해 보면 어떨까?

태초에 하느님이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으니,  정자와 난자의 수정란을 한 덩이 흙이라 하자. 그 흙덩이에 들어있는 DNA로 빚어진 태아가 자궁문을 열고 나와 탄생하는 순간 한 사람으로 탄생한다. 따라서 지구 상 수많은 인류 중에서 지금까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쌍둥이도 얼굴 모습은 거의 똑같지만 성격과 성향은 제각각 다르다. 마치 질그릇의 모양과 명칭과 쓰임이 다르듯, 태어나는 순간 “응애, 응애”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아이가 자라 독립할 때까지는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질그릇 모양을 빚는다. 물론 빚는 과정에서 깨뜨리거나 금이 가고 이가 빠지기도 하여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잘 빚어서 구워낸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담아내 여러 사람과 나눠 먹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접시든, 밥공기든, 국대접이든, 크고 작은 그릇이면 어떤가? 제각각 용도에 맞게 쓰이듯, 사람도 각자 위치에서 자기 모양대로 열심히 산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오늘은 무슨 반찬을 만들어서 식탁에 차려놓을까?’ 살짝 고민하면서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낸다. 매일 반복하는 식사 준비가 익숙해진 일이면서도 날마다 새롭다. 그것은 어제 먹고 남은 밥이나 반찬을 그대로 차려주면 성의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없기 때문이다. 행여 내 모습이 식구들에게 지루한 반찬을 담아내는 찌그러지고 울퉁불퉁한 질그릇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미안함 같은 거다. 또한 나보다 더 아름답고 단단한 질그릇에 찰진 음식을 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이 육십 중반에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뭐라고 하실까? 김형석 교수님은 65세에서 75세까지를 아직도 청춘이라고 하실 만큼 백 년 인생을 찰지게 살아오신 분이다. 물론 인생은 언제나 미완성이기에 백 퍼센트 만족할만한 삶을 살았노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승을 떠나고 난 후 주변 사람들에게 비추어진 모습에서 잘 살고 못 살았음을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얼마 전에 ‘디지털문학회’ 발기인 모임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한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던 문학회 준비위원들 대부분 60대 중반에서 80대 초반 정도이다. 황순원 소나기 문학관 김종회 촌장님을 회장으로 모신 디지털문학회가 곧 창단식을 앞두고 있다. 대부분 대학에서 교수로 정년퇴직을 하신 분들과 각기 다른 여러 분야에서 열정적인 삶을 살다가 퇴임 후 모인 분들이다. 대화 도중에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3多’가 있는 분들을 많이 모셔 와 문학회 발전을 위한 능력을 활용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3多’라고 하면 다독(多讀), 다사(多思), 다작(多作)으로 생각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3多는 ‘시간, 돈, 경험’이다. 즉 노년기에 시간과 돈과 경험을 많이 갖고 있어야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그런 분들의 능력을 활용하면 문학회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노년기에는 무엇보다도 건강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에 ‘시간, 돈, 경험’ 많은 사람과 소통하여 즐거운 삶을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즉 자기 손으로 빚은 ‘’ 인생이라는 질그릇에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담아내듯, 세상에 내놓은 책 한 권의 찰진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빛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이 세 가지를 충족하고 사는 사람인가?

지금까지 빚고 있는 질그릇 모양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걸까?’ 하고 자문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에게는 ‘시간, 돈, 경험’ 세 가지 중에서 시간 외에 다른 것은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건강을 제대로 지킨 것도 아니다. 육십 넘어서부터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중이다. 5년 전에 갑자기 고관절에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겨 맘대로 걷지도 못하고 대부분 집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면서 소일하다 보니 병명만 하나둘씩 늘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모아둔 것도 아니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둔 삶도 아니다. 그저 주부로서 평범한 삶을 살면서 좀 내세울 만한 것이 있다면 20여 년 사회 봉사활동을 하면서 받은 대통령 훈장과 구민 대상 등 많은 상장이 전부다.


  인생이라는 책은 예독(豫讀)을 할 수 없고 지나고 나서야 살아온 내력을 읽게 되는 독후감 같은 거다.

자신이 직접 써온 책을 읽으면서 만족하는 사람보다 후회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때로는 지나온 삶처럼 다시 살라면 되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과거에 대한 회의감을 갖기도 한다. 결국 후회는 항상 늦고 거꾸로 되돌아가서 수정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책이다.


  그동안 1차선으로만 직진하면서 지나온 내 삶을 되돌아보니 ‘3多’가 아닌 ‘3회(悔)’로 ‘건강, 돈, 효’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던 기회를 놓친 것이 여전히 아쉽다. 결혼 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딱 한 번 태권도장을 찾아갔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해 버린 일과 산악회 활동을 하다가 그만둔 것이 늘 후회된다. 그때부터라도 꾸준히 운동하였다면 운동의 달콤한 맛을 알고 꾸준히 하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살림하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로 내 몸은 뒷전이었다는 것 역시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도 잘 안다.


 두 번째는 돈이다. 결혼 전 40여 년 전만 해도 여성 대부분은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니 맞벌이를 선호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직장을 다니다가도 결혼을 하면 당연히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그 당시 신혼 2년 동안 남편의 해외 근무로 떨어져 사는 것이 싫었다. 첫 아이를 갖고 입덧을 하고 있을 즈음 시아버지께서 신문 광고 하나를 오려 주었다. 교사 모집 순위 고사 안내문이었는데 서울 지역이 아닌 지방에서 근무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어렵게 3년 만에 얻은 첫아이 임신과 아울러 또다시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하니 생각할 여지도 없이 포기했다. 그때 신중하게 고민하여 미래를 선택했다면 아마도 지금쯤 퇴직하여 연금으로 좀 여유롭게 살지는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세 번째 후회되는 점은 바로 부모님에 대한 효도이다. 지금은 양가 어머님만 살아 계시지만, 시어머님은 지난해 7월에 쓰러져서 뇌사상태로 요양병원서 얼마 버티지 못하실 거란 소식만 전해온다. 친정어머니는 다행히도 혼자 대전에서 잘 지내고 계신다. 물론 매일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만 듣고 밥 한 끼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다. 두 어머니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잘해 드려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이미 15년 전에 돌아가신 양가 아버님을 생각하면 나 살기 급급해 용돈 한번 제대로 못 해 드린 것이 후회스럽다. 어쩌다 한 번 아들딸 집에 찾아오셨는데 빚을 내서라도 용돈 한번 듬뿍 드려 기쁘게 해 드리지 못했다. 솔직히 내 자식들 교육비는 아낌없이 쓰면서도 부모님에게는 매우 인색하게 살아왔다.


  그러고 보니 육십여 년간 빚은 내 질그릇은 옹기도 아니고 달항아리도 아니고 그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투박하고 울퉁불퉁하고 찌그러진 윤기 없는 접시이다. 몇 번은 깨트리거나 다른 그릇과 부딪쳐 이가 나갈 뻔한 적도 많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사용할지 모르는 윤기 잃고 퇴색하여 낡아가는 질그릇 하나, 그 질그릇이 내 모습이다. 그래도 남은 시간 조심스레 아끼며 다양한 음식을 담아 여러 사람에게 내놓고 싶다. 방금 삶아 썰어낸 수육과 숙성된 배추김치와, 삭힌 홍어를 푸짐하게 담아 막걸리 한 잔과 곁들여 문학과 철학을 이야기하며 밤새울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요즘 들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더 와닿는다. 지나온 인생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기에 남은 시간만이라도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투박한 질그릇으로 남으면 좋겠다. 그 질그릇에 맛깔스러운 음식을 듬뿍 담아 세상에 내놓고 싶다.


--------------------------------------------------------- 2022년 2월 일요주간신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s://m.cafe.daum.net/osan4196/jBRK/227?q=%EC%A7%88%EA%B7%B8%EB%A6%87%20%EC%98%88%ED%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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