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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Dec 20. 2019

논픽션 화성호 2029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화성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화창하게 갠 5월의 봄날, 화성호가 시작되는 쭉 뻗은 방조제 도로로 들어서자 인공지능 내비게이션이 친절한 목소리로 안내를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화성호 생태습지지역이 시작됩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은 에코화성 가이드를 지키셔야 합니다. 지금은 화성호 철새들의 산란기이니 철새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30km 이하로 속도를 낮추시기 바랍니다.” “그래, 알았어. 화성호에 오면 이 정도는 상식이지.” 나는 하이브리드 전기차의 저속모드를 작동시켰다. 화성호를 자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친환경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가 필수가 된 지는 몇 년이 되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화성습지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화성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화성시는 화성습지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에코화성 가이드라인’을 조례로 제정해 공포하였다. 조례에 따르면 매년 화성호와 내측 습지의 환경생태조사 결과에 기반 해 환경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특히 철새와 저서생물의 산란을 하는 시기에는 농섬을 비롯한 일부지역은 사람의 접근이 금지된다. 탐조와 갯벌체험이 가능한 시기에도 방문객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사전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문하기 힘들다. 처음에는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지 않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화성시의 꾸준한 홍보캠페인과 화성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잘 지켜지고 있다. 

이제 화성호는 사람들이 몇 달씩 예약하고 기다렸다가 방문하는 전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생태관광지이다. 나도 K-POP 콘서트 티켓만큼 구하기 힘들다는 매향리 농섬생태투어 티켓을 6개월 전에 예약하고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느긋하게 운전하다 보니 도로 왼쪽은 푸른 바다, 오른쪽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 사이로 새들이 노니는 습지가 펼쳐진다. 나들이하기 좋은 봄이라서 그런지 길 곳곳에 차를 세우고 아이들과 함께 새를 바라보는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가까이서 보니 다들 스마트폰과 습지를 쳐다보면서 열심이다. ‘에코화성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조류탐조를 하는 모양이다. 그 앱을 핸드폰에만 설치하면 멀리 있는 새들이 어떤 조류이고, 어떤 모습과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 금방 찾아볼 수 있다. 화성호를 사랑하는 젊은 소셜벤처가 최근에 개발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솔라바이크로 누비는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다니, 약속시간에 늦겠는 걸’ 매향리역사관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입구로 서둘러 걸어갔다.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은 한국전쟁 이후에 미공군 사격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지만, 이제는 봄이면 매화꽃이 만발하고 화성주민 뿐 아니라 화성을 찾는 사람들이 꼭 들리는 명소이다. 오늘은 역사전시관을 찾은 외국인 단체방문객이 많은지 이곳저곳에서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가 들려온다. 공원광장을 둘러보다 ‘화성호 유기농마켓’ 에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건강한 먹거리가 있는 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친구는 역시나 마켓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좀 늦어서 미안해” “아니야. 농부마켓 구경하고 있어서 시간가는 줄도 몰랐네” “여기 살만한 게 많아? 모 보고 있었어?” “네가 화성호 유기농마켓 유명한 거 잘 모르는구나. 여기 농산물, 해산물, 수산물 모두 청정 유기농이잖아. 농산물은 바닷물을 깨끗하게 정수한 물로 재배하는 화성호 유기농 팜에서 재배한 거고, 해산물은 화성호 인근 바다와 갯벌의 유기농 어장에서 잡은 거고”      

“화성호 유기농 어장이 있다고 들긴 했는데, 그건 어떤 거야?” “생태계가 잘 보전된 바다와 갯벌에서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양식하는 거지. 바다는 원래 보존만 잘해도 끊임없이 먹거리가 나오잖아. 화성호는 해수와 담수가 적절하게 섞이는 지역이라 그걸 잘 활용하면 생태계가 더 풍부해진대” 친구와 함께 마켓을 구경하며 살 물건도 골라 흥정을 하다 보니 일곱 살짜리 친구 딸이 ‘솔라바이크’를 타고 다가왔다. 매향리 평화생태공원과 농섬, 화성방조제 내측 습지에는 자동차가 드나들 수가 없다. 주변에 서식하는 동식물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깔아놓은 도보길로 걷든지 노약자나 장애인은 태양에너지를 충전해서 사용하는 ‘솔라바이크’를 이용할 수 있다. ‘솔라바이크’는 초소형 이동차, 휠체어형, 자전거형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이들에게는 자전거형이 인기가 좋다.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으로 ‘솔라바이크’를 생산, 관리하는 기아자동차에서는 내년에는 아동과 어르신을 위한 솔라바이크를 더 많이 제작하겠다고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마을주민이 안내하는 농섬생태투어     

드디어 기다리던 농섬생태투어 시간이다. 농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물때가 되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매향리 마을포구 앞으로 모였다. 친구와 나처럼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고 조류생태전문가, 그리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외국인 청년들도 있다. 오늘 투어를 안내할 가이드는 바로 바닷가햇살에 그을린 얼굴과 오랜 노동으로 투박해진 손을 가진 매향리 마을주민이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매향리 어민이에요. 저 바다와 갯벌을 보고 자라난 사람이고, 저 농섬에 폭탄이 떨어질 때는 싸움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유기농 어장에서 일하는 어부이자 농섬생태투어를 안내하는 주민해설사도 하고 있습니다.” 친척 아주머니 같은 친근한 인상이지만 바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수십 년 어민의 내공이 담겨 있다. 매향리 미군 폭격장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분노와 결기에 찬 표정을 지어 보여 내심 놀라기도 했다. ‘에코화성 어플리케이션’ 매향리 메뉴에는 동시통역 기능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 친구들도 이어폰을 끼고 주민해설사와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듣고 있었다.   

  

“여기 보면 조개, 게, 갯지렁이가 파놓은 구멍과 바닷물을 머금고 통통해진 칠면초를 볼 수 있지요? 이런 저서생물들은 구멍으로 산소를 공급해 갯벌이 섞지 않게 하고 염색식물은 흡수한 바닷물의 오염을 걸러줘요” 갯벌 구멍 사이로 무언가 뽀글뽀글한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해설사는 잠시 머리를 내민 게를 살짝 잡아 아이들에게 보여주곤 다시 놓아주었다. 농섬갯벌체험은 예전처럼 살아있는 생물체를 캐서 가져가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잘 관찰하고 다시 생태계로 돌려준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어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점을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갯벌을 들여다보는 사이, 물때는 간조가 되어 농섬으로 가는 길이 드러났다.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이는 농섬 주변에는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내려앉았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군무가 펼쳐진다. 화성호가 왜 국제적으로 멸종위기 조류들의 피난처라는 말을 듣는지 알 것 같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장관이다. “이제 농섬으로 걸어 들어가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조용조용하게 걷고 말도 크게 하지 마셔 야 해요. 지금은 꼬마물떼새와 여름철새들이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시기라 새들이 엄청 민 감해져있거든요” 우리는 행여나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농섬으로 들어갔다. 울창한 해송과 매화나무 사이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날개짓이 가득하다. 주민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조심스럽게 들쳐본 나뭇가지 사이에 앙증맞은 물새의 알들이 있었다. 알들이 부화하고 아기 새들이 날 수 있을 때쯤 북쪽에서 다른 철새들이 찾아올 것이다.     


아름다운 낙조와 함께 꿈꾸는 아이들의 미래     

농섬생태투어를 마친 사람들은 포구 앞에서 모두들 전기차에 올랐다. 매향리에서 궁평항까지 화성시가 운영하는 무료 관광셔틀이다. 개인 자동차로 다니는 것이 금지된 곳이 많은 화성호에서 궁평항의 낙조를 볼 수 있도록 화성시가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아이와 함께 전기차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궁평항으로 향하던 친구가 말했다. “내년에 이쪽으로 이사 오려고 알아보고 있어. 아이는 이런 곳에서 키워야 할 것 같아. 우리 아이들은 자연과 가까워지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아야하니까… 오늘 봤던 저 새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겠어.. 그래야 아이들을 위해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담한 항구마을을 배경으로 서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가 펼쳐지고 있었다. 화성호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즐기며 살아갈 만한 자격이 있다. 철새도, 갯벌의 조개도, 어민도, 여행자도 우리는 화성호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꾼다.     


*이 글은 2019년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된 “Hwaseong 30,000 reason: A sustainable, wise-use development proposal”의 내용을 기반으로 10년 후 화성호의 미래를 논픽션으로 그려본 것이다.


글  허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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