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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Aug 28. 2020

순간을 영원으로 담는 사진작가, 그가 남기고픈 화성

하종규 (한국사진작가협회 소속 사진작가)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거센 바람이 밀려 온다는 소식에 오후로 잡혔던 약속을 서둘러 오전으로 옮겼다. 푹푹 찌는 듯한 무더운 공기가 이른 시간부터 가만히 가라앉아 있는 아침이었다. 태풍이 오기 전의 불안한 고요함, 제때 인터뷰를 마치고 무사히 복귀하려면 자꾸 서둘러지는 초조함. 조금씩 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약속장소인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서니, 내 마음과는 영 딴판으로 한가로운 미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도 느껴지는 환영의 인사였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먹고 사는 기본적인 일들을 해결하기 위한 일상의 시간, 그리고 찾아오는 주말은 오롯이 그를 위한 시간이라고 했다. 사진에 담고 싶은 순간을 찾기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마다 않고 달려가는 그에게, 금요일 퇴근부터 월요일 출근 전까지는 3박 4일 꽉꽉 채울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다. “사천까지 가는 데도 뭐 4시간 밖에 안 걸리니까” 땅 끝까지 오가며 길에 버리는 긴 시간과 힘듦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이렇게까지 그를 홀리게 만든 사진세계라는 게 대체 어떤 건지 새록새록 궁금해졌다. 

 

 

사진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거에요?

벌써 30년이 되었네요. 제가 부동산 일을 하게 된 게 16년 정도 되었으니까, 지금 본업인 부동산 일보다 사진이 훨씬 먼저인 셈이죠. 처음에는 우리 집 아이들 사진 찍어주려고 카메라를 산 게 시작이었어요. 그때부터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죠. 


그 때면 필름 카메라 아닌가요? 

맞아요. 지금 같은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고 인화를 해야 하는 필름 카메라였으니까. 흑백필름현상을 하려고 드레스 룸에다가 직접 암실까지 만들었으니까, 제대로 푹 빠져들었든 게 맞네요. 흑백작업은 온도 1도에도 사진이 거칠어지고 부드러워지고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는데, 주변 온도의 영향을 제일 적게 받는 곳이 아파트 구조에서는 딱 드레스 룸 자리더라고요(웃음). 또 현상액이 냄새가 아주 심하거든요. 그래서 아내가 집을 비우면 그 때를 노려서 작업을 하고 그랬죠. 정작 드레스 룸의 주인인 옷들은 다른 방으로 여기저기 이동을 하고. 


못 말린다는 듯이 피식 웃는 아내도 부동산 사무실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실 드레스 룸에 차렸다는 현상실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는 살짝 불안하던 터였다. 취미에 빠진 배우자 때문에 한바탕 집안이 시끄러워진 이야기는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터. 그 시절이었으면 장비며 필름이며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 저 인간을 어쩌냐 하며 째려보는 자포자기의 웃음이 아니라, 그 열정 그 마음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이해의 웃음이었다. 그가 가진 큰 복 중에 하나였다.  

 

 

아내분과 같이 사진을 찍지는 않으시고요? 

저는 사진, 아내는 등산이 취미에요. 각자 제일 하고 싶은 거 제일 즐거운 거를 하는 거죠. 예전에 아내가 히말라야로 등반을 가면서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해서 따라가봤는데요. 아이고 죽겠더라고요, 힘들어서(웃음). 막상 가니까 사진 욕심이 또 생겨서, 미리 올라가서 앞에서 앵글을 잡았다가 또 뒤에서 찍었다가 몇 번을 더 오르락내리락 하는 거죠. 기진맥진해서 다시는 안 따라간다고 했어요. 


그냥 취미사진 정도가 아니라 공모전 수상 경력도 많으시던데? 

사진에 입문하고 나서 4개월 반 만에 공모전에 통과를 했어요. 그렇게 빠른 입선은 처음이라고들 했어요(웃음). 하려면 제대로 해 보자 싶어서 책 사서 지독하게 공부하고 좋은 스승님을 찾아서 열심히 배웠어요. 사진을 찍어서 오면 그 필름 현상한 것을 쫙 펼쳐놓고는 선생님이 물어보세요. 이건 어떤 건지, 이건 왜 이렇게 찍은 거지 설명해봐, 하면서 하나하나 필름에 체크를 해주셨죠. 제가 말로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그 의도도 미리 알고 계시더라고요. 아, 좋은 사진은 말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껴지는 거구나, 그때 배웠어요. 


특별히 향토 사진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평일 내내 부동산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주말에는 도시의 사람 대신 자연을 만나고 싶어져요.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도 찾고 싶어지고요. 저에게는 그게 나름의 힐링 방법이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다 중단했지만 해외로 출사를 나갈 때면 최대한 오지로 팀을 꾸려서 찾아가곤 해요.     


좋아하는 사진 이야기가 나오자 눈에서 반짝, 빛이 났다.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촬영작품들을 보여주는 내내 잔뜩 신이 난 그였다. 수레를 끌며 신나게 달리는 아이들의 웃음, 나무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부엌 틈새로 스며드는 햇살, 깊이 팬 주름이 혹독하고 기나긴 세월을 말해 주는 할머니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잘 다듬어진 풍경을 최대한 예쁜 각도로 담는 사진들 보다는 꾸미지 않은 사람들과 원초적인 자연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그. 천생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였다.   



 

이렇게 오지로 촬영을 가면 힘이 들지 않으세요? 아무래도 불편할 텐데. 

자는 거 먹는 거 다 마땅치가 않죠. 제가 또 현지 음식을 잘 먹는 편도 아니라 한 열흘 정도 촬영을 다녀 오면 1.5Kg 이상은 훌쩍 빠져 있죠. 조금 가져간 젓갈이랑 김으로 연명하다시피 하니까. 그래도 그게 너무 즐거워요. 숙소에서 나오는 아침식사도 저는 안 먹어요. 해가 뜨고 그림자가 길어져 있는 아침 10시 이전, 그때가 딱 제가 제일 좋아하는 빛이 있는 시간이거든요. 아끼고 아껴서 간 촬영인데, 호텔에서 아침이나 먹고 있을 시간이 있나요.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을 찍는 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제일 중요한 건 교감인 것 같아요. 전 항상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사람들과 마음부터 나누려고 해요. 같이 놀고 뒹굴뒹굴하다 보면 언어는 안 통해도 서로 다 알아요. 다큐멘터리 사진 촬영을 가게 되면 거기에서 며칠이고 머물게 되는데, 그러면 같이 음식을 준비해서 예상치 못한 마을잔치도 벌이게 되죠(웃음). 그리고 만날 때 마다 반갑다고 꼭 끌어안곤 해요. 진심을 다해서 안으면 서로가 느껴지나 봐요. 다음에 다시 찾아갈 때는 지난 번에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찍은 분들에게 돌려주죠. 그러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축제 사진들도 아주 인상적인데요. 이 분들도 섭외한 모델들은 아니죠? 

축제 현장에서도 인파 속으로 막 뛰어들기 전에는 미리 안전한 앵글로 멀찌감치 떨어져 ‘보험용’ 사진을 찍어놓거든요. 혹시라도 모르니까. 그러고는 같이 물감도 뿌리고 서로 얼굴에 물감도 발라가면서 한 바탕 즐기고 놀면서 사람들과 교감을 하죠. 그러고 나서 다시 사진을 찍어보면, 처음에 찍어 두었던 보험용 사진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순간과 이야기가 바로 찌릿하고 전해지죠.  


주름진 얼굴로 살며시 내려 앉는 은은한 햇살을 찾아서 잠시 자리를 옮겨 앉았다던 베트남의 한 오지마을 할머니의 사진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이 사진은 아마 할머니에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다며, 순간 그리움 섞인 슬픔도 그의 얼굴을 스쳐 갔다. 이미 저 세상 사람이라 제 주인을 잃은 사진들, 개발에 밀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들, 그렇게 다시 올 수 없는 시간들이 그의 사진에만 남아 있었다. 

 
  

화성을 찍은 사진에도 그렇게 사라진 순간들이 있나요? 

20년 전에 ‘왕모대’라는 곳을 찍은 사진이 있는데 지금은 가보면 그 때의 자취를 찾을 수도 없어요. 화성방조제가 들어서면서 사라진 곳이죠. 참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고기를 잡으러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밀물에 휩쓸려 죽은 아내의 전설이 있는 ‘각시당’에서는 동료 사진작가들하고 같이 하룻밤 머물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었죠. 하늘의 별이며 달이며, 참 특별한 순간이었는데. 지금은 신도시개발공사가 진행되면서 옛 모습을 잃었죠. 


이제 그런 곳의 풍경은 필름에만 남은 거네요. 

그렇죠. 필름하고 저의 머릿속 기억에만 남아 있어요. 원래 사진이라는 게 순간을 담아 놓는 거잖아요. 흘러가는 순간들이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 거죠. 저희 집에 가면 그 동안 쌓아 온 사진기록들이 몇 박스나 있는지 몰라요.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의 사는 모습, 아예 없어져 버린 장소들, 지금은 망가져 버린 자연의 옛날 풍경.... 다 제 사진 속에서만 남아 있죠. 


그런 기록 사진들을 찍으면서 하는 고민도 있을 텐데요?

양날의 검이라고 해야 하나요? 참 좋은 자연이나 귀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게 되면, 이걸 공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좋으면서도 또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망가지게 되는 걸 계속 보아 왔으니까요. 귀한 것을 같이 나누고 싶으면서도 내 사진 보고 찾아 온 사람들 때문에 더 망쳐지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이 동시에 생기게 되죠.  


그 동안 모아온 기록들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지만 방법이 마땅하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사진전을 연다 해도 전시관을 빌리는 비용부터 전시할 작품을 출력하는 비용까지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일도 조심스레 시작해 보았다. 이런 자료가 필요한 향토박물관이라도 생겨서 모두 달라고 하면, 기꺼이, 기꺼이, 내어주겠다며 조금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또 환하게 웃었다. 그의 집에 가득 쌓여 있을 자료들이 컴컴한 박스 속에서 나와 빛을 보게 되는 날이 언제쯤에나 오게 될는지. 

 
 


화성 지역도 출사를 자주 다니시나 봐요?

도시 가까운 곳에 이렇게 멋진 자연이 있는 곳도 드물죠. 화성이 또 참 넓잖아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쉴 만한 공간들이 참 많아요. 저만 해도 출근하기 전에 일찍 나와서 화성방조제 쪽을 들렸다가 오곤 해요. 거기 가면 언제나 철새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빛이 있는 시간대이기도 하고. 새벽 4시에 집에 나와서 오전 10시 전까지 한 바퀴 둘러보면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담고 그래요 그리고 나서 사무실로 출근을 하면 정말 하루가 행복하죠.  


향토사진작가로서, 화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뭔가요? 

당연히 갯벌이죠. 갯벌마다 품고 있는 생명이 다르고 물이 들고나는 모양새도 다르거든요. 여기 화성의 갯벌은 살아 있어요. 렌즈를 통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갯벌에서 뭔가 생명들이 꿈틀꿈틀해요. 그 안에 생명의 단계들이 다 있는 거죠. 그 생명들 때문에 날아드는 새들도 있고, 또 낙지든 조개든 캐어 올리는 어부들도 있죠. 갯벌에 가면 그런 생명의 순간들을 사진에 담을 수가 있어요. 


말씀하신 화옹지구 쪽으로 군 공항이 들어올 수도 있다 던데요?

하...... 그러면 저는 이제 새들 대신 전투기를 찍어야 하나요? ....... 휴.  그러면 철새들도 다 날아갈 텐데요. 그 전투기 소리를 들으면서 새들이 살 수는 없죠.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또 어디를 찍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곤 하는데, 그런 낙도 다 사라지겠네요. 



화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갯벌’이라고 대답할 때 1초도 망설이지 않은 그였다. 너무나 당연하게 떠올릴 만큼 지켜야 할 생명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 갯벌 쪽으로 군 공항이 들어올 수 있다는 상상 앞에서는 짧은 탄식과 긴 침묵이었다. 살포시 해가 떠오르면 조심스레 살아나는 화성의 자연을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는데, 그게 또 한번 사진으로만 박제된 기억이 되려나 문득 두렵다.  


참 많은 순간과 기억들이 그의 사진에만 남고 사라졌다. 살면서 그게 제일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화성의 이 귀한 자연만큼은 현상된 몇 장의 사진이나 몇 박스의 필름 무더기로 남기고 싶지 않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기억에만 흐릿하게 남는 것들을 선명한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향토사진작가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이지만, 아직 화성의 자연은 자신의 필름 속에만 가두어 두고 싶지는 않다. 


어쩌다 한번 들쳐보는 사진이 아니라 매일매일 만나는 일상으로 조용한 갯벌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바닷물이 스르륵 빠져나가고 나면 숭숭 뚫린 갯벌의 구멍에서 작은 게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그 갯벌에서 배를 채운 새들은 화성호의 갈대 습지로 날아가 큰 소음에 놀라지 않고 꾸벅꾸벅 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면의 사진 한 장에 박아 넣기에는 화성의 자연은 너무나도 입체적으로 생생히 살아있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에게 어느새 내려진 축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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