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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수 Jul 07. 2024

‘닫힌 우물’ 속에서  시인이 너무나 그리워했을 하늘

인왕산 자락 1 - < 윤동주문학관 >

※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쓰는 24년차 작가로서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들른 곳의 이야기, 보거나 겪은  여러 이야기를 <작가의 발길, 작가의 마음길> 매거진에 담습니다. 그 첫 번째는 윤동주 문학관 이야기입니다.  


윤동주 시인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중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를 접한 것이 출발점일 텐데…….

내가 제일 처음 접한 시인의 시가 <서시(序詩)>였는지 <별 헤는 밤>이었는지, 아니면 <소년>이나 <자화상> <참회록> 같은 시였는지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윤동주 시인' , 하면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도 언제나 그 시, <서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序詩(서시)> 원문. 1941.11.20 - 



윤동주  <序詩(서시)> 친필 원고. 1941.11.20

어쨌든 나는 <서시>를 내 인생에서 문학적 감수성이 가장 넘쳐 났던 시절, 서울 명동성당 바로 옆 계성여고(지금은 남녀공학인 ‘계성고’로 바뀐 데다 교사(校舍)도 강북구로 이전해 명동에는 계성여고가 없다) 에 다니던 문학 소녀 시절에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때 그 시구를 접하고 사실 많이 놀랍고 또한 살짝 부끄러웠던 것 같다.


놀라웠던 건 시구가 일단 너무 강렬했던 데다, ‘사람이 어떻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랄 수 있을까, 성인(聖人)도 아닌 범인(凡人)이 그렇게 산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부끄러웠던 건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는데, 나는 ‘ 잎새에 이는 바람’ 이며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의 심오한 의미를 어렸던 탓에 아직은 이해하기 힘든 까닭이었다.   




물론 그때도 윤동주 시인의 삶의 궤적을 모르진 않았다. 여러 과목 중 최애 과목이 국어였고, 고려대를 나온 키다리 국어 쌤이 나의 최애쌤이었으며, 우리 문학과 우리 작가에 진심인 그 쌤의 영향으로 나 또한 우리 문학과 우리 작가들을 동경하고 흠모했기에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도 제법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일개 소녀에 불과했기에 일제 강점기에 시인이 온몸으로 겪고 여러 작품에 투영됐을 고통이 그렇게까지 절절히 와 닿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시절의 나는 <서시> 보다는 <별 헤는 밤>이 훨씬 더 좋았다.   


季節(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 1941『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1955년 증보판 인용 (이하 동일)-  


이렇게 시작하는 서정적인 첫마디부터가 가슴을 흔들었다. 계절, 하늘, 별, 헤일듯하다, 이런 단어들이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문학 소녀는 <별 헤는 밤> 중에서도 아래 시귀가 가장 좋았다.   


별하나에 追憶(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憧憬(동경)과  

별하나에 詩(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중략)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북간도)에 게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하략)  


- 윤동주, <별 헤는 밤> , 1941,『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1955년 증보판 인용-  


삼남매 중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난 나는 친구들 어머니에 비해 나이 많으신 내 어머니가 늘 마음쓰였다. 그래서 소녀 적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꿈을 무척 자주 꾸고, 꿈속에서 슬피 울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현실이 아니었음에 안도하곤 했다.


여고 시절의 내가 <서시>보다 <별 헤는 밤>을 더 좋아하고 사랑했던 건 아마도 그 영향도 컸을 것이다.  서정적이고도 외로움의 정서가 가득한, 그리고 어머니를 비롯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좋아하는 이들(심지어 프랑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이국 시인까지)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별 헤는 밤>은 소녀적인 감성을 건드리기에 충분했으므로.  그랬기에 나는 훗날 작가가 된 후, 6.25 전쟁 때 피난길에 고아가 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역사 동화 <그해 유월은>(스푼북, 2019)에서도 이 시를 인용했다.

왼쪽:  <윤동주문학관>에 전시돼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초판본과 문고판 / 오른쪽 :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을 인용한 신현수 역사동화 『그해 유월은』


그 소녀 시절로부터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제법 많이 알게 되었을 뿐더러, 특히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형언할 수 없는 수난에 대해서도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물론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도 소녀 적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글로써 밥벌이를 하는 작가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스물네 해가 되었다.   


그런데 이 여름 어느 날 아침 문득, 뜬금없이, 윤동주 문학관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원고 마감의 압박에서 벗어나 조금 한가로워진 때문이었을까. 2012년에 세워진 그 문학관을 한번 꼭 가 봐야지 하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처 못 가 본 터였다.  나는 서둘러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서울 종로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 닿았다.

    


윤동주 시인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재학하던 시절, 인왕산 자락 누상동에 있는 후배 소설가의 집에서 약 4개월 동안 문우 정병욱 선생과 함께 하숙하였다고 한다. (정병욱 선생은 윤동주 시인이 생전에 펴내고자 했던『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원고를  소중하게 지켜냈다가 시인의 사후에 공개, 유고 시집으로 발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하였다) <별 헤는 밤> <서시> <자화상>을 비롯한 대표작들도 이곳에 머문 짧은 기간에 썼다고 한다. 이 소중한 인연을 살려 종로구가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문학관을 만든 것이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조붓한 버스길 맞은편에 보이는 윤동주 문학관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소박하고 아주 조그마했다.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 이미지를 바탕으로, 버려져 있던 청운 상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리모델링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왠지 거칠고 투박한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겪은 시인의 고통이 문학관 곳곳에 서려 있는 듯한 느낌에 가슴이 아릿했다.    

윤동주문학관 전경, 정면 출입구 옆에 윤동주 시인의 모습과 함께 <새로운 길>이라는 시가 걸려 있다.


문학관은 모두 세 개의 전시실로 이뤄져 있는데 제1전시실 '시인채' 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친필 원고 영인본, <별헤는 밤>의 초판본과 중판본, 시인의 생애를 배열한 사진 자료 등을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의 사진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인이 수감되었다가 생을 마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관련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울컥하고 먹먹했다.    


제2전시실 '열린 우물'은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용도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해 만든 조그만 중정(中庭)이다. 중정에 서서 문득 위를 올려다 보니 시인이 형무소에 갇힌 채 너무도 그리워했을 하늘이 시야(視野) 가득 들어와 마음이 무거웠다.  


왼쪽: 윤동주문학관 제2전시실 <열린 우물>  / 오른쪽: 제3전시실 <닫힌 우물> 입구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중략)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 윤동주, <(자화상)> , 1939.9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1955년 증보판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에서 인용 -

  

제3전시실 '닫힌 우물'은 지하에 있고 두꺼운 철문을 거쳐 내려가게 돼 있는데,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볼 수 있었는데 음습한 지하 공간에 물때가 그대로 남겨진 거친 벽면에서 시인이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가 연상돼 역시 또 가슴이 먹먹했다.      

    



문학관을 나온 후에는 바로 위, 자하문 고개 정상에 있는 '시인의 언덕'에 올랐다. 조국의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5년  2월 외롭게 숨진 시인은 고국 땅에도 묻히지 못했다. 그래서 간도 용정에 있는 시인의 무덤에서 가져온 흙 한 줌을 이 시인의 언덕에 뿌렸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세워져 있는 시비. 시인의 필체로 <서시>가 새겨져 있다.

그 사연을 알았기 때문일까.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경복궁과 시청, 종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윤동주 시인도 종종 이곳에 올라 시상(詩想)을 떠올리고 시심(詩心)을 가다듬었으리라 생각하니 그저 비감하기만 했다.

시인의 언덕에는 잔디 마당에 팬들이 기증한 소나무가 있고, 윤동주 시인의 필체로 <서시>를 새긴 시비도 세워져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서시>와, 시인의 필체로 비석에 새겨진 <서시>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해서 무더웠던 2024년 7월 여름 어느 날, 윤동주문학관을 거쳐 시인의 언덕에까지 올랐다. 거룩했던 시인의 고독하고 고통스러웠을 시혼(詩魂)을 되새기며, 보잘것 없는 일개 작가가 시와 문학과 역사와 삶을 조금은 깊게 생각해 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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