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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스킹혜성 Mar 15. 2023

내가 아는 연진아, 너는 안녕하니?

더글로리 정주행 후 생각난 나의 연진에 관하여

작년 말에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 파트1이 인기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절반만 공개되고 나머지 파트2는 3월에 오픈된다고 해서 보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가 3월이 되어서야 정주행을 시작했고, 곧 파트2가 공개되어 결말까지 바로 볼 수 있었다. 


더글로리의 후기나 연출의 의도 분석 등은 이미 너무나도 많아서 내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연진이가 있어서 글을 적어본다. 


더 글로리 3화 중에서
화이팅, 박연진! 
브라보! 멋지다, 연진아! 


연진이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같은 반이었고, 키 순서로 자리배치를 해서 짝꿍이 되었다. 절친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종종 서로의 집에 가서 숙제를 할 정도는 되는 친구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진이와의 좋지 않은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당시 취미로 우표수집을 하던 나는 우체국에 우표를 사러 가기 위해 지갑에 현금을 넣어서 집을 나섰다. 우체국에 가기 전 만난 연진이는 내 지갑을 구경한다면서 지갑을 만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우체국에 가니 분명 집에서 넣어온 돈이 사라졌다. 나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고, 유일한 용의자인 그 아이에게 전화해서 화를 냈었다. 당시 연진이는 학교에서 도벽이 있기로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에 대한 배신감이 더해진 작은 의심은 점점 불어나 확신이 되었다. 


나의 연진이는 끝까지 자신이 그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했다. 전화로 내용을 다 알게 된 연진이의 이모가 추궁을 했지만 역시 끝까지 억울함을 주장했다고 한다. 연진이의 이모는 본인은 연진이의 이모이기에 연진이의 말을 믿고 싶고, 그래도 연진이와 있었을 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미안하고 친구사이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잃어버린 액수의 돈을 주셨다. 


그렇지만 이미 각자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버린 우리가 다시 하하호호 하며 만나는 일은 없었다. 한 동네에 사니까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지만,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서 다행인 일이었다. 나의 기억 속에서 그 아이의 존재감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주 잊고 지내다가 연진의 이름이 존재감 있게 각인된 것은 대학교 졸업 후 만난 친구 A를 통해서였다. 대학교 졸업 시즌에 동기들 사이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다단계에 끌고 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소문이 돌 때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한 A를 마냥 편하게만 만날 수는 없었다. 며칠 후에 내가 정한 장소에서 A를 만났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나를 다단계나 사이비로 데려갈 것 같지 않아서 경계심을 풀고 사실은 너무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이런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는데, A가 자신은 이미 다단계에 학을 뗐다며 연진의 이름을 말했던 것이다. 


A는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에 전학을 왔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모두 옆의 신도시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어울리는 무리가 없었고 바로 A와 친해지게 되었다. 2년 내내 붙어다니다가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A는 중3이 끝날 무렵에 보습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그 학원에서 연진이와 만나 친해졌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A에게 초등학생 때의 일화를 설명하면서 연진이에게는 도벽 소문이 있으며 나는 직접 당했으므로 그 소문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네가 연진이와 친해지는 것이 별로 달갑지는 않다고 말했었다. 


당시 학원을 다지지 않던 나는 A와 연진이 방과 후에 학원에서 만나는 것을 막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진로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내가 A의 친구 관계까지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이들은 한 동네에 살면서 꽤 친하게 지냈고, 함께 어울리는 다른 친구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친분이 있던 A와 연진, 대학생활을 하던 어느 날 연진이가 A를 다단계 회사로 데려갔다고 한다. 

처음엔 다단계인지 몰랐고, 친구인 연진을 믿고 따라간 A는 계속 거부하다가 결국 서류에 사인을 하고나서야 그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옥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집안 형편도 좋지 않은 A가 다단계로 많은 빚을 지게 되었고, 가정이 시끄러웠고, 마음 고생하시던 A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도 중학생 때 몇번이나 인사드렸던 분인데 부고조차 받지 못해서 놀랍고 서운한 양가감정이 들었다. 연진이는 본인은 제안만 했을 뿐 계약서에 사인은 네가 한 거라고 하면서, 이번에도 자신의 잘못을 부정했다고 한다.  

A는 외가댁에서 어머니 빈소에 들어온 조의금으로 너의 다단계 빚을 갚았다면서 어미 잡아먹은 년이라는 소리를 들어 외가와도 인연을 끊었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더 난리를 치고 도벽을 이슈로 만들었다면 그런 일까지는 생기지 않았을까. 중학생 시절에 내가 더 적극적으로 A와 연진을 못 만나게 했어야 했나,  연진이는 어째서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에게 이런 상처를 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날이 A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날 이후 연락처가 바뀌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더글로리를 보면서 자꾸만 연진이의 이름을 듣게 되니까 

내가 오래전부터 알던 연진이가 자꾸 떠올랐다. 


순진한 친구를 다단계에 끌어들이고 너는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요즘 핫한 더글로리 드라마를 너도 봤겠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본인이 한 짓은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연관 짓지 못하고 있을까. 


궁금하긴 한데 사실 관심없어 연진아, 니가 뭘 느끼며 살든 나랑 무슨 상관이니. 난 복직해서 바쁘거든. 

넌 그냥 나쁜X 이야. 부디 지금은 남에게 피해안주고 살고 있기를 바란다. 살면서 다시는 소식듣지 않도록 조심 좀 해줘. 


나도 이 글이 소설이면 좋겠다.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느낌으로 털어놓기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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