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작가’ <강> 서정인 작가와의 만남 1
서정인 작가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내가 그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를 잘 안다는 사람들의 글과 이야기가 그렇게 말했다. ‘스타일리스트’,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 서정인 작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와 한국문학작가상, 월탄문학상, 이산문학상 등 넘치는 그의 수상 내역이 또 한 번 말했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서정인 작가는 올해 여든 하고도 하나였으며, 학교 후배인 김승옥 작가보다도 다섯 살 위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하다가 가장 많은 들은 이야기가 ‘작가님 아마 인터뷰 안 하실 걸요’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때 읽은 서정인 작가의 소설 <후송>과 <강>. 왜 그의 소설은 읽고 또 읽어도 쉽게 들어오지 않고 곱씹어 보아야 하는지, 그가 생각하는 작가의 사명과 글쓰기의 기능은 무엇인지. 궁금증이 넘치다 못해 반드시 그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누군가 그에 대해 써놓은 글을 보면 지레 겁을 먹었다.
“서정인은 나의 고등학교 5년 선배였다. 5년이나 선배가 되기 때문에 나로서는 가뜩이나 대하기 어려운 심정인데 이 양반이 워낙 말이 없고 타인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미이기 때문에 함께 동인 하자는 말이 얼른 나오지 않았다.”
-책 (<내가 만난 하나님> 김승옥 / 본문 일부)
서정인 작가의 순천고등학교 후배이자, 서울대학교 후배인 김승옥 작가가 문학동인지 ‘산문시대’의 동인으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청년 시절이라 그랬다 하다가도 최근 글을 보면 크게 다르지가 않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회의 상식이 요구하는 인습적인 제약이나 가식으로부터 나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으리만큼 파격적으로 자유롭다. 더구나 그는 이러한 파격적인 결단을 할 때 억지로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한다.”
- 책 (<달궁가는 길> 신광철 / ‘술친구 서정인’ 일부)
각고의 노력으로 일궈낸 탁월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에 귀 기울이는 독자가 많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엮은 <달궁가는 길>의 서평에도 자신의 글로 인해 서정인에게 작은 누라도 끼칠까 걱정하는 친구 신광철의 근심이 묻어난다.
몇 줄 되지 않은 문장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이메일을 보냈더니 며칠 동안 답이 없다. 역시 그를 직접 만나는 것은 어렵겠구나, 했을 때 즈음 도착한 답변.
‘고등학교 선후배로도 좋고, 새로운 작가와 오래된 작가로도 좋고 언제든지 만납시다.’
인터뷰가 좋다는 한 줄짜리 문장이었지만, 나에게 그 한 줄은 곧 문학이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오른 전주행 기차.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김포 군하리로 가는 버스에 오른 소설 <강>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군하리행 버스처럼 전주 가는 기차에도 별 특별할 것 없는 군상들이 앉아 있었지만, 소설처럼 기사가 늑장을 부리는 일은 없었다. 이제는 서울에서 전주까지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그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너무 젊어서 나는 전화가 잘 못 걸려왔는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했다. 기다리고 있다는 광장으로 나갔더니 세련된 아웃도어 패딩을 입은 멋진 노신사가 SUV 운전석에 앉아서 얼른 타라고 손짓을 한다. 사진에서, 글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키가 컸고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드디어 만났다.
작가 서정인을.
“주변에서 선생님 만나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해서요...”
"그래요?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을 텐데...”
다행이었다. 순천과 인연이 있는 작가, 영화감독, 배우들에게 순천 생활과 그들의 작품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더니,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 순천고 동창의 아들이라는 배우 최재원을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아도 김한민과 최재원을 엊그제 만났다고 하니 허허 웃는다. 그도 요즘에는 ‘응팔’과 ‘금사월’을 모르면 대화에 낄 수가 없다며 최근 방송 흐름에 대한 것을 안부 차 물어왔다.
전북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 전주에 살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 햇수가 순천에서 살았던 것을 넘어간다. 당신의 아들도 프리랜서로 캠핑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부모 되는 입장에서 걱정도 되지만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말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군대를 다녀오고 스물 몇 살쯤 내가 방송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나의 부모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수필집에서 그가 술 때문에 차를 팔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고 했더니 “나는 괜찮은데 집사람이 불편해해요. 내가 운전기사죠.” 그의 말 하나하나에는 여유가 있고 유머가 있다. 친구도 가족도 살아있는 이들이 많지 않아서 순천 갈 일은 별로 없다고 했다. 대학로에서 김승옥 작가를 만난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김승옥, 참 재치 있는 친구야. 재치가 있어.”하며 그가 말을 잃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전주에서 친구들과 가끔 들른다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나는 실제로 순천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국어, 국사 시간에 모교 출신의 작가로 4회 서정인과, 9회 김승옥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2009년에는 서정인, 김승옥 두 작가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교정에 문학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내가 말했었죠. 내 이름은 빼고 김승옥만 하라고. 버젓이 살아있는데 문학비가 웬 말이야.”
자리에 앉아 건넨 첫마디가 서정인 작가의 성격을 그대로 잘 보여준다. 결국 관계자들의 말을 이길 수 없었다며 쑥스럽게 웃고야 만다.
1936년, 순천군 순천읍 장천리 (지금의 장천동)에서 태어난 서정인. 어린 시절 그는 삼국지 읽기와 자신의 키보다 훨씬 깊었던 옥천에서 헤엄치며 놀기를 좋아했다. 책이 닳을 때까지 삼국지를 보고 또 봤으며, 해가 넘어간 줄도 모르고 쏘다니기 바빴다.
“인구는 8만 정도. 지금은 면적도 엄청 넓어졌죠. 법원과 호수 공원이 생긴 자리가 허허벌판이었으니까. 집이 남문다리 근처 장천동이었고 순천고등학교까지 걸어가는데 건물은 없고 논밭만 있었어요. 예전에는 바다까지 나가는데도 하루 종일 걸렸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서울대학교를 간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지금처럼 과외를 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했으면 자신은 서울대학교에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은 서울이 더 유리하고, 서울 중에서도 강남이 더 유리하다고 하잖아요. 우리 아이들도 공부하고 밤 12시에 왔는데 손자들은 더 한 것 같더라고. 예전에는 옥천에서 놀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있나요. 다른 사람들도 다 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잖아요. 그런 게 한국에서 못 살게 만드는 거죠.”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물으니, 등단도 오히려 그때가 더 쉬었을지 모른다면서 그냥 글을 쓰고 싶었고 운이 좋게 당선이 됐다고 한다. 글을 쓰다가도 아내와 딸이 보고 있으면 글쓰기를 멈춰버렸고 하루에 원고지 몇 장을 쓰지 못할 정도로 사력을 다한 시절이 있었다. 요즘 그의 글쓰기는 어떨까.
하루에 몇 매씩 꼬박꼬박 쓰면 좋으련만 그게 잘 안된다고 했다. 대작가에게도 마감일은 두렵나 보다. 마감일이 다가오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글이 써진다고 한다. 요즘은 이메일로 글을 보내지만 예전에는 원고지에 쓰고 우체국으로 가서 직접 보냈다고, 언젠가는 우체국에서 제목을 바꾼 적도 있었다며 웃는다.
서정인 작가의 글은 세심하게 갈고닦은 돌 같기도 하고, 주변에서 언뜻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그림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리얼리즘의 대가’ 혹은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근본적으로 문학은 사실주의 아니에요? 사실주의가 아니면 환상이라든가 상상력을 많이 넣어서 쓰는 거지. 문학은 목에 핏대 세우면 안 돼요. 문학은 버려도 조국은 못 버린다는 말이 대단한 것 같은데 그건 문학이 아니죠. 목에 핏대 세우면 안 돼요.”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묘사 못해요. 이마의 길이가 얼마라고 해도 독자들은 몰라요. 헌데 달덩이 같은 여자 하면 바로 알아요. 그것도 리얼리즘에 포함시켜야 돼요. 사실에 기반하는 것들 말이죠.”
단 몇 마디만으로 사실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문학의 정의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아, 잊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수 십 년 동안 학생들에게 언어와 문학을 가르쳤던 교수였다는 것을 말이다. 스무 살, 문학 수업을 듣던 학생으로 돌아가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문학은 어디까지가 작가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독자의 몫인가요?
“작가의 손을 떠나면 글은 독자의 것이겠죠.”
교수의 대답은 짧았지만, 정확하고 단호했다.
“내가 쓴 것을 읽고 만들어내는 소설은 분명히 당신의 것이다. 내가 썼지만 읽은 것은,
나의 독자여, 당신이었다.”
- 책 (<개나리 울타리> 서정인 / ‘독자와 공저’ 일부)
* [순천, 그리고 순천사람들 3] ‘위대한 작가는 시대의 취향까지 바꾼다’ 작가들의 작가, 소설 <강>, <달궁>의 서정인 작가와의 만남2에서 계속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작가의 역할과 글쓰기의 기능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