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에서 길을 찾다 1

비행기가 자주 날아다니던 동네

by 숲별바람

서울에서 강서구라는 곳, 그곳에서도 화곡동이라는 곳에서 오래 살았다.

예전에는 화곡동이 영등포구의 한 동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다가 강서구로 분리되었다.

내 기억에 일곱 살 때쯤 그곳으로 이사 갔을 것이다.

화곡동은 김포공항이 가까워서 비행기 소리도 자주 들렸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김포공항이 가까워서 전철역이 들어올 수 없다는 말도 들었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낭설이었던 듯싶다.


학교에 입학했는데 요즘처럼 초품아가 없던 때라서 30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 A학교에 다녔다.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가끔 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차비가 20원 정도였다.

그때는 버스에 안내양이 있던 시절이었다.

쪼끄만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안쓰러웠는지 버스에서 내릴 때 나를 안고 내려주는 안내양 언니도 있었다.


그러다가 2학년에 올라갈 무렵 B국민학교가 새로 생겼다.

A학교보다는 집에서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새 학교였고 우리보다 한 학년 높은 3학년이 제일 높은 학년이었다.

운동장에는 흙이나 모래가 아닌 자그마한 흰돌들이 깔려 있었다.

새 학교라서 손 볼 곳이 많았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청소는 당연히 학생들이 했고 마루로 된 교실바닥을 왁스로 닦는 일도 했다.

책걸상을 모두 뒤로 밀어놓고 교실바닥에 앉아 왁스를 묻혀 걸레질을 하는데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구구단 구령에 맞춰 바닥을 닦았다. 매일매일 그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교 2학년은 아기들이다.

그 애들이 어른들이 해야 할 학교청소를 했던 것이다.


새 학년이 되면서 반장선거가 있었다.

반장 한 명, 남녀 부반장 각 한 명씩 뽑는 선거였다.

선생님이 추천하는 학생들을 반 아이들이 선거로 뽑게 되었다.

대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후보가 되었다.

거기에 나도 끼어 있었다.

내 뒤에 앉은 남학생이 "나 너 뽑을게."

하고 약속했고 나는 그 남학생을 뽑기로 했다.

결과를 보니 내 표는 단 한 표, 나를 뽑겠다고 한 남학생의 표가 전부였다.

남학생은 약속을 지켰지만 어쩐지 부끄러웠다.

나에게 표를 준 남학생은 부반장이 되었다.


여자부반장이 된 K는 밝고 명랑하고 예뻤다.

K네 집은 초품아처럼 학교 앞 도로를 건너면 나오는 골목길에 바로 있었다.

부잣집의 상징인 이층 양옥이었다.

그 이층 양옥을 보는 순간 눈이 부셨다.

그 당시 웬만큼 사는 집은 국민주택이라고 하는 단층 양옥이나, 주공에서 지은 5층 아파트에 살았다.

우리 집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집에 놀러 갔는데 내가 사는 집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집임을 깨달았다.

아이들 방이 따로 있었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

거실은 넓고 창문으로 밝은 햇살이 아낌없이 들어와 환했다.

거실 옆에 있는 K 방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1970년대에 피아노를 배우고 집에 피아노가 있는 집은 드물었다.

부자이거나 교육열이 높은 집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집에서 피아노라는 악기를 처음 보았다.

K는 내가 보는 앞에서 피아노 교본에 있는 '하모니카 부는 아이'를 쳤다.

나는 삽화와 함께 악보가 그려진 바이엘 교본을 신기한 듯 들춰보았다.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면 예쁜 소리가 나는 피아노가 신기하기만 했다.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연주하시는 풍금과는 달랐다.


그 집에서 놀다가 우리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 집이 더 초라하고 어둡게 느껴졌다.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 네 식구가 함께 살았고 공부할 때 사용하는 책상도 없었다.

방바닥에 엎드려서, 혹은 밥상을 놓고 숙제를 했다.

어쩌면 K는 내가 처음 부러워한 친구인지도 모른다.

만만해 보이는 여자아이들을 골리기 일쑤였던 남자아이들도 K에게는 함부로 장난을 거는 일이 없었다. K는 부잣집 딸에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부반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