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걷다] 호동왕자는 나쁜 남자인가 1

by 숲별바람

내가 호동왕자를 처음 알게 된 때는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이었다.

그 당시 나는 KBS에서 방송하는 연속 인형극을 즐겨 보고 있었다. 김유신 장군, 동명성왕, 바보 온달, 충신 박제상 등 역사적 인물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인형극으로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연속 인형극이 인기가 있었는지 타 방송국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인형극으로 방영했다.

나는 KBS 연속 인형극을 좋아해서 그 프로그램을 먼저 보고 가끔 채널을 돌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끝부분을 보곤 했다.

어느 날인가 호동왕자가 죽어가는 낙랑공주를 끌어안고 "공주! 공주!" 하며 애타게 부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후 동화책을 통해서 그 이야기의 전모를 알게 되었다.

사랑을 위해 나라를 버린 낙랑공주,

나라를 위해 사랑을 버린 호동왕자....

어릴 때는 누구도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사랑이냐, 나라냐의 갈림길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두 남녀의 운명이 안타깝기만 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는 그 드라마틱한 내용 덕분에 문학으로, 드라마로, 만화로 재창조되는 단골 소재가 되었다.

자신의 야심 때문에 사랑을 저버린 호동왕자를 냉정하고 비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호동왕자는 왕이 되겠다는 야망으로 낙랑공주의 사랑을 이용해 낙랑국을 정복하고, 낙랑공주를 죽음에서 구해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호동왕자보다는 낙랑공주의 편에 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이용당하고 결국 아버지 손에 죽임을 당하는 슬픈 운명이 낙랑공주에 더 애정을 갖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호동왕자와 관련된 문학이나 역사책을 보면서 호동왕자 역시 왕권 싸움에서 패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는 모두 권력의 희생물이었다.

애초에 두 남녀는 사랑으로 혼인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들에 의해 정략적으로 혼인한 것이다.

호동왕자의 아버지 대무신왕은 야심이 크고 정복욕이 강한 왕이었다.

첫째 형 도절은 어릴 때 죽었고, 둘째 형 해명태자는 아버지 유리왕의 미움을 받아 자결했다.

대무신왕은 태자에서 왕에 오르기까지 조마조마하며 살았을 것이다. 친아들도 죽일 수 있는 괴팍한 유리왕의 눈에 날까 봐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대무신왕은 고구려와 오랜 세월 숙적이었던 동부여의 대소왕을 죽임으로써 유리왕의 신임을 얻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대소왕의 막냇동생 갈사왕의 손녀를 자신의 후궁으로 맞게 되었다. 그 후궁이 낳은 아들이 바로 호동이었다.

호동왕자는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고 대무신왕을 닮아 총명했고 용맹스러웠다. 왕이 되기에 충분한 재목이었다.

처음에 대무신왕은 호동왕자를 총애하고 당연히 태자로 삼을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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