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걷다] 호동왕자는 나쁜 남자인가 2

by 숲별바람

대무신왕의 첫 번째 왕비, 정비가 아들을 낳았다. 이름은 해우였고, 호동왕자와는 나이 차가 많이 났다.

그래도 호동왕자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정비의 친정 세력이 고구려 조정에서는 호동왕자의 외가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호동왕자의 모친은 동부여 계열의 갈사국 출신이었고 둘째 왕비였다. 삼국사기에는 둘째 왕비, 차비라고 기록되었는데 후궁일 것이다.

아무리 호동왕자 나이가 해우보다 많아도 왕위 서열에서는 해우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호동왕자가 태자가 되려면 눈에 띄는 혁혁한 공을 세워야 했다. 마침 대무신왕은 낙랑국 정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혼인을 추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신임을 얻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 낙랑국에는 적군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울리는 북과 나팔이 있는데 그것을 못 쓰게 만들면 낙랑을 쳐서 이기는 건 따놓은 당상이었다.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그 일을 해낸다면 낙랑공주를 고구려로 데려가서 정식 왕자비로서 대우를 받게 할 것이라고 꼬드겼다.

낙랑공주는 호동왕자의 말대로 무기고에 들어가 자명고를 찢고 자명각을 부서뜨렸다.

낙랑공주가 자명고와 자명각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전갈을 받은 호동왕자는 이 소식을 대무신왕에게 전했고, 이때를 틈타 대무신왕은 군대를 이끌고 낙랑국으로 쳐들어갔다. 이 군대에는 호동왕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동왕자를 사위로 맞아 고구려와 화평하게 지낼 것이라 믿었던 낙랑국 왕 최리는 고구려의 침략에 놀랐을 것이다. 왜 자명고와 자명각이 제 구실을 못했을까 의아해했다가 자신의 딸이 그렇게 만든 범인임을 알고는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고구려의 배신, 사위 호동왕자의 배신도 모자라 딸까지 한통속이 되어 자신과 낙랑국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격노했다.

최리는 고구려에 항복하기 전에 제 손으로 딸을 죽였다. 죽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동왕자가 고구려의 승리를 위해 낙랑공주의 안위를 생각지 않은 것도 비정하지만, 호동왕자의 말에 넘어가 낙랑국의 멸망을 자초한 낙랑공주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 정도로 호동왕자를 사랑했을까?

친정인 낙랑국보다 시댁인 고구려가 더 중요했을까?

설사 고구려의 태자비가 된다 해도 낙랑국은 멸망했는데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나라를 배신하고 고구려의 태자비가 되었다는 꼬리표가 내내 따라다닐 텐데 감당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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