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번역되지 않은 지식을 탐구하는 즐거움

by 탱귤도령



emile-verhaeren-writing-1915.jpg!Large.jpg 테오 반 리셀베르헤(Theo van Rysselberghe) - 에밀 베르하렌의 글쓰기(1915), Wikiart



"나는 책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에게 보낸 편지> 中 (1815年)


나는 독서 중독이라는 제법 성가신 병증에 시달리는 환자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부터 동화책을 읽기 시작해, 부모님 서가에 꽂힌 책들까지 잡히는 대로 읽어 치웠다. 친구들이 밤새워 수능 공부에 진력하던 시절에도 나는 책을 쌓아두고 꼴딱 하얗게 밤을 새웠다. 덕분에 시험은 아주 제대로 망쳤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동기들이 “같이 술 한잔하자”라고 불러도 “도서관 가야 한다”라고 답하곤 했으니, 독자들은 이 병세의 완강함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차도 없는 이 병은 결국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상태로 나를 몰아갔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양질의 외국 서적을 찾아 인터넷을 떠도는 정처 없는 유목민이 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번역서를 읽다 보면 각주와 참고문헌에 실린 책들 가운데 유독 입맛을 당기는 제목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아마존을 뒤져 책을 구했다. 그러나 이 독서 편력은 곧 나의 슬픔을 배가시켰다. 하찮은 외국어 실력을 통절히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업으로 삼은 지식인들이야 원서를 읽는 일이 일상일 테지만, 학위도 없고 내세울 이력도 없는 보통의 독자에게 그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구글 번역, 딥엘, 파파고를 동원해 문장 하나, 페이지 하나를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번역기 성능이 지금처럼 좋지 않던 시절이라 고생도 많았지만, 한 권을 끝까지 읽어냈을 때의 쾌감은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지금은 인공지능 번역이 눈에 띄게 발전해 예전처럼 문맥을 일일이 고쳐가며 읽지 않아도 되니, 그야말로 좋은 시대다. 원서를 읽는 문턱은 생각보다 많이 낮아졌다.



Eye_of_Horus_bw.svg.png 우제트, 호루스의 눈, Wikipedia



책을 읽고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쌓는 일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의 해상도를 높여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광증에 가까운 나의 독서 편력이 이집트 신화 속 호루스의 눈처럼 세계를 명료하게 꿰뚫는 지혜를 선사해주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미숙한 단견에 사로잡혀 세계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일개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초상이 아닐까.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언어라는 감옥에 갇혀 쇠창살 너머로만 세계를 곁눈질하는 존재다. 독서는 그 감옥의 평수를 아주 조금, 숨통이 트일 만큼만 넓혀주는 수리 작업에 가깝다.


오해를 미리 불식하고자 덧붙인다. 이 연재는 미번역서를 소개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정본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번역되지 않은 책을 읽으며 혼자 밑줄을 긋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덮어버린 시행착오의 기록일 뿐이다. 그러니 이 독서는 언제나 얄팍하다. 그리하여 ‘얄팍하게 읽기’다. 부담은 내려놓고, 술친구의 잡담을 듣듯 가볍게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