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개발자로 커리어 전환 시리즈
개발자로 북미쪽 해외취업 또는 유학을 결심했다면 첫 단추는 나라를 정하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중 어디가 더 나에게 좋을지 2017년의 나는 머리를 싸매고 표를 그려가며 분석했다. 해외에 살아본적이 없고 어디에도 연고도 없었기에 이 큰 북미 땅덩어리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왠지 테크 인더스트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야 핫하게 성공할 것 같은 느낌도 들다가, 혹시 이상한 동네게 정착하게 되어 내가 사랑하는 김치찌개도 못먹고 인종차별 당하면서 팍팍하게 살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캐나다, 그중에서도 밴쿠버라는 도시를 선택하였고, 거주 4년차로 접어든 지금 나의 선택에 아주 만족한다.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4년차 거주중이며, 3번의 개발자 인턴십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모두 캐나다에서 했다. 취직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위치)에서 오퍼를 받았다. 당장은 마이크로소프트 밴쿠버 지사에서 일을 시작하고 향후 2년 안에 미국 비자가 나오면 시애틀로 이동할 계획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하자면, 시작은 캐나다에서 하는 것이 안전하다.
캐나다에서 개발자로 취직을 하는 가장 현실적인 루트는 다음과 같다.
1. 캐나다 학교에서 공부한 뒤 취직
2. 한국에서 바로 경력자로 해외취업
1의 경우가 나의 경우다. 캐나다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에겐 3년간의 오픈 워크 퍼밋(비자)가 나온다. 즉, 3년간 자유롭게 구직활동을 하고 일하는 비자가 나오는 것이다. 개발자의 경우 - 큰 변수가 없다면, 3년동안 오픈비자 신분으로 지내면서 본인의 스케쥴에 맞춰 영주권을 신청한다. 개발자 직종은 영주권 받기 난이도 (하) 이다. 본인이 조금만 노력하고 챙긴다면 영주권자로 비자 걱정없이 맘 편~하게 캐나다 주민으로 살 수 있다.
2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채용을 확정하면 워크퍼밋을 신청하면 되고, 비자를 받는 과정도 미국과 비교한다면 엄청나게 간단하다. 2의 경우에도 워크퍼밋을 받고 일하다가 캐나다에 쭉 살고 싶으면 영주권 신청을 하여 받으면 땡! 이다. 영어점수 획득 및 서류준비의 과정은 지난하지만, 솔직히 미국의 영주권 과정에 비하면 훨씬 쉽고 기간도 적게 걸린다.
이와 반대로, 미국의 워크비자(H1B)는 일단 추첨 형식으로 지원자의 1/3 ~ 1/10 정도만 뽑히고, 뽑힌 인터뷰를 보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지원 요건도 직종과 관련된 최소 학사 이상의 디그리를 요구하기 때문에, 예를들어 "전 화학과 나왔는데 어쩌다가 코딩을 좋아해서 프로그래머가 되었어요" 하는 경우는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다. 필자의 지인도 캐나다에서 생물학쪽 디그리를 받고 아마존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능력은 출중하나 미국 워크 비자 지원 자체가 불가능해서 지금 온라인으로 컴퓨터사이언스 디그리를 따고 있다. (이게 웬 시간 낭비 돈낭비 시츄에이션…). 어찌저찌 H1B를 받더라도, 그린카드(영주권) 받기까지의 길이 험난하다. 한국인의 프로세스 기간은 평균 3~5년 이고 그동안 회사를 바꾸지 못한다. 그 기간 동안 신상의 큰 변화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며 산다. 대부분의 지원자가 위험을 최소화 하기 위해 최대한 미국 땅을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1년에 한번씩은 한국에 가줘야 숨이 트이는 사람이라 이 시기가 되게 어려울 것 같다. 한 지인은 본인이 어릴적부터 키우던 강아지가 한국에 있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빨리 비자가 나와야 무지개 다리 건너기 전에 한번이라도 직접 다시 볼텐데 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었다. 나도 한국집에 강아지가 있는데, 저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진다.
이러한 미국의 얄미운 행패에도 미국이 계속 양아치(?)처럼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이래도 올 사람이 줄 섰기 때문이다. 인도나 중국인의 경우 영주권 프로세스 정말 어마어마(10년+) 이고, 매년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해외취업 하려는 사람들이 재이고 재였다. 필자가 있는 캐나다도, 학생들이 미국에 가는 것 = 성공하는 길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페이가 2배정도로 뛰게 되고 (기본급이 더 쎄고 + USD 와 CAD의 환율 차이로 인한 이득), 큰 회사의 본사로 취직하여 떠나거나, 스타트업 CEO가 되려는 마음으로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로 가는 학생들도 종종 보인다. 지나치게 경쟁적인 문화에 지쳐서 돌아오는 경우도 보았지만, 캐나다 학생들은 일단 넘어가서 최소한 “내집마련을 위한 목돈을 모으자” 라는 생각으로 단기적으로 미국으로 많이 떠난다. 하지만 사견으로, 한국의 극경쟁적인 문화에 단련된 한국인은 미국의 경쟁적인 문화를 보고 "이게 무슨 경쟁적..?풉" 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외국에서 보면 한국인들은 회사에서든 학교에서든 정말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보석같이 반짝반짝 빛난다.
흠, 그렇다면 나도 상황이 된다면 미국에서 일하면서 돈을 왕창 모으고 싶거나, 실리콘밸리에서 다양한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흡수하고 오고 싶은데 어떻게야 할까? 이 답은 두번째 이유에 있다.
나도 마이크로소프트 밴쿠버 지사에서 인턴으로 일했지만 풀타임 오퍼는 오피스 위치를 바꾸어서 시애틀 본사로 받았다. 글로벌 대기업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내부적으로 북미 오피스내 전환은 매우 수월한 편이다. 캐내디언인인 경우는(캐나다 시민권 보유자) 그냥 옆동네 가듯이 간다. 캐내디언은 T1비자를 발급받는데 이 비자는 정말 간단하게 나오는 비자라 걱정없이 없다. 한국인 시민권자의 경우 미국 워크 비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미국 워크비자(H1B)는 추첨 형식으로 지원자의 약 10~33%만 뽑힌다는 것이다. 순전히 운이 중요한 이 프로세스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회사에서 오퍼를 받고도 비자가 안나와서 못가는 문제를 야기하는 주범이다. 캐나다 오피스에서 있다가 내부적으로 미국 오피스로 전환을 신청할 경우의 최대 장점이 여기서 나온다. 미국 비자가 나올때까지 캐나다 오피스에서 일하도록 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올해 미국 비자 추첨에 떨어졌다. 따라서 1년동안 팀은 시애틀에 있지만 밴쿠버 오피스에서 원격으로 일한다. 만약 내년 추첨에도 떨어지면, 마소에서 L1비자(주재원 비자)로 발행하여 본사로 보내준다. 한마디로 비자가 안나와도 기다릴 것 없이 캐나다에서 일하면 되고, 비자가 나오면 그때 맘편히 가면 되는 것이다. 또한 영주권을 받을 예정이기 때문에, 향후 미국에 살다가 캐나다로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올수 있는 든든한 백업 플렌이 있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나온 경우, 개발자는 대부분 STEM 분야 학위가 인정될꺼라고 가정한다. 그렇다면 캐나다 오픈비자 처럼, 미국 오픈 워크 비자가 나오게 된다. 캐나다 오픈비자보다는 다소 적은 기간으로 나오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오퍼를 받아서 일을 시작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사실 더 큰 부담은, 오픈 워크 퍼밋이 끝나기 전에 H1B비자로 전환하거나 영주권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신분 유지를 위해 개인 본인이 많이 신경써야 한다. 나는 한국에서 퇴사할때 “한국에앞으로 10년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놀러 오는 경우 제외)”라는 마음가짐으로 떠났기 때문에, 신분 문제로 부득이하게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라는 리스크를 감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신분 및 체류문제에서 안전한 캐나다를 선택했다.
신분 걱정 없이 제일 안전하게 미국에서 일하는 경우는, 캐나다에서 영주권 취득 후 시민권까지 취득한 뒤에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캐내디언 시민권을 가지게 되면 TN비자로 미국에서 일할 수 있고, 이는 추첨도 아니고 매우 간단하다. 또 캐나다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북미 지역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는데 신분이라는 큰 걸림돌을 해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5년 이상 걸리는 매우 긴 과정이고 한국 시민권을 포기해야 되는 큰 결심이기 때문에, 영주권자로 지내면서 찬찬히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 나는 아직 한국 시민권을 유지하는 선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캐나다는 Mosaic(모자이크) 문화, 미국은 Melting Pot (멜팅팟) 문화 라는 말이 있다. 캐나다는 "Celebrate Diversity(다양성을 축하한다)"하는 나라이다.
각자 개인의 개성과 문화를 존중하고 환영하면서 모자이크처럼 멀리서 조화롭게 보이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각 색, 문화와 개성이 있는 나라이다. 미국은 멜팅팟, 한마디로 "다 녹여버려서 미국식 인간으로 만들겠다라는 느낌이 강한 나라이다. 세계 최고의 나라 라는 자부심(이라고 쓰고 오만함이라고 읽는)이 강하고, 개개인의 출신과 다양성보다는 미국화 시키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미국에서든 캐나다에서든 본인이 만랩이라면, 즉 내 할말 똑부러지게 잘하고 미친놈 만나면 똑바로 혼내주고 한다면 어디에 살아도 큰 상관은 없다. 하지만 내가 만랩 캐릭터가 아니라면, 캐나다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좀 더 순한편이고, 치안이 비교적 안전하며, 전체 인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적극적 이민 지원을 펼친다는 점 때문에 영어를 쓰는 문화권에 살고 싶다면 좋은 출발점이 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북미에서 살겠다고 결심한다면, 캐나다에 갔다고 그곳에 평생 사는게 아니다. 향후 5년은 어느정도 방황하면서 여기저기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살아야지 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는것이 좋다. 이곳 저곳을 경험하며 나에게 꼭 맞는 취향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의미에서 캐나다는 난이도 “하”의 나라다. 어디서든 항상 또라이는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캐나다 사람들 정말 착하고 순하다. 한국의 경쟁적인 문화에서 나와 캐나다에서 그들과 살다보면, 점점 여유로워 지는 마음, 좀 비효율적이더라도 과정을 즐기고, 타인에게 오지랖같은 친절을 베푸는 나를 보게 된다.
최근 한국에 사는 지인이나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캐나다 친구들과 다른점 하나를 발견했다. 한국지인들은 항상 "외국에 사는데 힘들겠다" "고생이네" "걱정이네" "힘든데 어떻게 하냐" 이렇게 내걱정을 해준다. 사실 나 되게 잘지내는데… “존버”라는 단어를 일상어로 쓰는 한국문화는 “힘들지만 버티고 이겨내자”라는 마인드다. 반면 캐나다 친구들은 항상 칭찬이 주를 이룬다. "와 되게 멋있다" "도전하면 재밋을 것 같아" "대단해" "자랑스러워" "필요한거 있으면 언제든 불러"등. 뭔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의 성공에 진심이든 그냥 하는말이든 응원하는 문화는 참 좋다.
대표사진 출처: Photo by Hermes River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