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1980년대는 나의 유년기가 책과 함께 무르익어가던 시절이었다. 소심하고 부끄럼쟁이였던 나는 낯설고 어려운 현실보다 재미있고 만만한 책 속 세상으로 더 쉽게 빠져들었다. 책이 귀하던 시절 마르지 않는 샘처럼 이야기를 제공해 주던 나의 아지트는 엄마가 근무하던 시골 국민학교의 도서관이었다. 일직 근무를 서던 날이면 따라갔던 그곳은 나에게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직사각형으로 붙인 책상에 선생님들의 방석을 가져다 깔고 그 위에 누워 세계명작동화를 열심히 읽었다. 책 속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세상과 사람들이 존재 했다. 마냥 심심할 것 같은 산골 생활 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한 『알프스 소녀 하이디』, 착한 세라보다 부잣집 딸 세라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 물질적 욕망을 깨닫게 하던 『소공녀』, 거지 소녀 파데트가 랑드리의 아름다운 피앙세로 거듭나는 『사랑의 요정』은 꼭 요조숙녀가 아니어도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이야기여서 신선했다. 이외에도 인상적인 작품은 너무 많았다. 이런 책 속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선량하고 의지가 강했다. 그들을 통해 굳은 심지를 가지고 바르게 살다 보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착한 것이 이긴다는 믿음은 양심의 불을 밝혀 주었고 긍정적인 아이로 자라게 해주었다. 좋아서 읽은 책들이 나를 지키는 힘이 되어주었다는 확신은 책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엄마가 되자마자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책의 재미를 알게 해주고 싶었다. 풍요로운 책 세상을 만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고 내면을 단단하게 키우기를 바랐다. 아기 때부터 꾸준히 책이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림책을 충분히 읽어주었다고 느꼈을 때 세계 명작 동화로 넘어갔다. 어릴 적 추억과 겹쳐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시간은 나에게 기쁨이었다. 우리는 좋은 문장에 감동하고 함께 울고 웃는 날들을 쌓아갔다. 작은 도서실에서 내 세계가 무한히 뻗어나가는 경험을 했듯이 우리 아이들도 책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책이 점점 두꺼워져 내가 읽어주기 버거워지자 아이들은 서서히 책으로부터 멀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아이들도 책을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은 착각이었나? 엄마의 바람과 달리 듣는 것은 재미있지만 스스로 읽는 것은 싫다며 아이들은 독서와 쿨하게 작별했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었다. 독서만이 내적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유익을 알기에 지금도 가끔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발견하면 책상 위에 슬쩍 올려놓는 미련을 떤다.
최근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책을 읽었다. ‘미래를 기억한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있으면 그런 오늘이 온다는 말로 이해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비관이나 절망 대신 희망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언젠가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책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넬 다정한 말을 고르고, 슬픈 사람을 위로할 사려 깊은 마음을 배워갈 미래를 기억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미래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나의 독서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리라.
유난히 덥던 올해 여름도 저물어가는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하다. 달라진 바람을 느끼며 문득 학교 도서실에 있던 나와 엄마 생각이 났고 그 생각은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엄마가 되고 보니 비로소 깨닫는 것이 있다. 아이가 떠올릴 엄마와의 추억은 기억의 한 조각이겠지만, 엄마는 아이와 함께한 시간을 촘촘한 파노라마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도 그럴 것이다. 그 생각에 이르자 고향에 계신 엄마를 더 자주 만나야 한다는 조급함이 인다. 친정 식구들과 만날 접점이 필요한데, 번뜩 떠오른 생각이 책 모임이다! 책 모임을 구실 삼아 자주 얼굴을 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책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어쩌면 평생 하지 못했을, 아니면 하지 못할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질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내년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향에 내려가 엄마, 언니와 독서 모임을 해볼까 하는데 어떠냐고 물었다. 남편은 조금 놀란 모습이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대로 하라고 했다. 그 말끝에 뭔가 아쉬움이 묻어나서 설마 당신도 독서 모임하고 싶은 거야? 물었더니,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며칠 뒤 남편이 소설책을 빌려와 열심히 아주 열심히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독서에 취미가 없는 건 남편 유전이라고. 여태 완독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투덜댔는데 이번에 남편은 진지하게 완독하고 나의 서가를 기웃거린다. 평소 휴대폰 영상만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웃어대던 남편이 갑자기 책을 읽고 있는 풍경이 펼쳐지는 우리 집. 아내와 함께 놀려면 책을 읽어야겠다 각성한 것인지 정작 읽으라는 애들은 안 읽고 남편이 책을 보는 생뚱맞은 현실에 웃음이 난다. 인생은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 거기에서 또 행복을 발견하기도 하나 보다.
이제 나의 독서 아지트는 거실 서재다. 소담한 정원이 보이는 창 쪽으로 테이블을 놓고 거기에 앉아 매일매일 책을 읽는다. 비가 오는 날, 눈이 내리는 날, 새가 찾아드는 날, 꽃이 피고 지는 날 모든 하루에 책 읽기를 더하며 나이 들어간다. 그런 나의 곁에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을 상상한다.
책방을 운영해도 좋겠다. 나뭇결이 느껴지는 아늑한 공간, 식물의 푸르름이 싱그러움을 더하고 통창을 통해 햇살이 넘실대는 곳. 커피 향이 음악처럼 흐르고 재미있는 책이 곳곳에 꽂혀있는 작은 책방에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삶을 나누는 그런 미래를 기억한다. 그때는 일상적인 대화 너머의 속마음들이 부드럽게 넘나들며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가겠지.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 시간. 유년기 나의 아지트에서부터 독서를 통해 내가 채워온 것은 이런 낭만이었나 보다.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것. 우리 같이 책 읽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