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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Apr 29. 2022

나의 분더카머

잡동사니 이야기들을 모아둘 거야

그림책 큐레이터 수업을 듣고 있다. 강사님께서 '자기만의 분더카머'를 만드는 연습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하는 숙제를 내셨다. 언제나 딱 하나를 고르는 것은 힘들다. 그림책이 꽂힌 서가에 서서 책 제목을 훑어보다 무심코 창 밖에 눈길이 갔다. 어머나! 어제보다 더 화려한 봄날이 펼쳐져 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책이 있었으니 강경수 작가의 <꽃을 선물할게>. 


"곰님은 꽃을 좋아하시나요?"

"만약 저를 살려 주신다면 다음 해에 수많은 꽃들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꽃을 선물할게 > 중


어느 날 아침, 거미줄에 걸려 생명이 간당간당한 무당벌레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곰을 붙들고 살려달라 부탁하며 건네는 말이다. '무당벌레가 꽃을 선물한다고?' 그림책을 보던 나는 저 문장이 적힌 페이지에서 멈칫했다. 두 번이나 무심히 무당벌레 곁을 지나치며 그의 부탁을 외면하던  곰도 저 말에는 발길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너의 이야기가 나에게 와 호기심을 자극하고 멈춰 세우고 생각을 하게 하는 순간, 이야기는 힘을 발휘한다. 그림책 <꽃을 선물할게>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도 그저 진딧물을 잡아먹는 포식자 정도로 알고 있던 무당벌레를 봄날의 뮤즈처럼 특별하게 그려내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다.




여섯 살의 어느 겨울밤이었다. 따뜻한 방에 이불을 덮고 그림책을 보던 나의 머릿속에 반짝 전구가 켜졌다. 냉큼 책을 들고 엄마 곁으로 다가가 방금 든 생각을 쏟아내듯 말했다.


"엄마, 여기 봐봐. 아기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건 엄마가 만들어 준 이불을 덮고 자기 때문이야. 엄마의 사랑을 아기가 느꼈다는 거지. 그리고 여기, 꿈속에서 아기랑 놀아주는 사슴은 엄마가 만들어 준 이불에 있는 사슴이야. 엄마 사랑 때문에 아기가 행복해."


읽고 있던 그림책은 엄마가 만들어준 이불을 덮고 자는 아기가 꿈속에서 사슴과 놀았다는 단순한 내용이었는데, 그림책이 품고 있는 속내를 깨쳤다는 최초의 경험은 내 영혼에 흔적을 남겼다. '는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운명 같은 새김이었다. 다른 사람의 조언 따윈 필요 없었다. 이미 스스로 결정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성급한 이 결정이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조증과 울증을 오르내리게 할지 그때는 몰랐다.


막무가내로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는 자라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수많은 책 속 주인공들이 내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이목구비를 갖춘 존재가 되어 살아 움직였다. 누구나 살고 있는 현실 외에 나만이 열 수 있는 비밀 세계를 하나 더 가졌다는 든든함은 특별한 존재가 된 듯 고개를 빳빳이 들게 했다. 친구가 많지 않아도 나의 상상 친구들로 외롭지 않았고 그들은 '너도 재미난 이야기를 써 봐!' 속삭이며 나를 부추겼다. 나의 독서는 좀 더 전략적으로 진화하여 주인공의 특정 행동을 이끌어내는 환경적 요인, 사건을 만들어 가는 시대적 배경, 갈등을 조장하는 포인트를 찾아 관찰하며 분석하는 책 읽기로 나아갔다. 특히 초등학교 땐 <삼국유사>를 읽으며 선화공주와 서동 이야기, 소금 장수가 되었던 미천왕 을불 이야기, 신비한 피리 만파식적 등 우리 민족의 고유한 멋과 재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역사 판타지를 쓰는 작가가 되어보겠다며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중등 시절에는 고구려 제15대 미천왕 을불의 스토리에 빠져선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를 짜느라 머릿속이 분주했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구성해 보려 삼국시대 왕의 계보뿐 아니라 생활 풍속들이 담긴 책들을 찾아 읽었다. 을불을 돕는 사람들,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을 구상하고 그들을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만나게 할 세부적인 사건을 만드느라 삼 년을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그들을 품었다. 형제들을 거침없이 죽이며 피의 군주가 되었던 봉상왕을 피해 머슴살이, 소금장수 등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남아 고구려의 영토를 넓힌 성군으로 역사에 기록된  을불,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인가! 십 대의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를 내 머릿속에 그려내며 지겨운 수업시간을 보냈다. 눈은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필기를 하고 있는 듯 보였겠지만 실상 내 영혼은 천 년 전 고구려, 너른 들판에서 말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생계형 글쓰기가 가능한 나인지 객관적인 검열에 들어갔다. 결과는 땡이었다. 상상 속에서 즐겁게 뛰어놀던 을불을 지면으로 데려오니 300페이지쯤은 거뜬히 써낼 것 같던 기개는 어디로 사라지서너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엉덩이는 들썩대고 문장은 삐그덕 거리며 이어지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무능을 탓했다. 상상 속에선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던 이야기가 현실에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경험. 이것이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는 것인지.


글쓰기 자신감이 바닥을 칠 때면 책으로 숨어들었다. 엄마의 서가에 꽂혀 있던 세계 문학 전집, 한국 현대 소설, 고전 문학 등읽었다. 좋은 작품은 자꾸만  마음 문을 두드리며 쓰는 삶을 부러워하게 고 열심히도, 잘 쓰지도 못하는 나를 또 만나게 하며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열망에 비해  영글지 않은 생각과 필력을 탓하며 어릴 적 품었던 작가라는 꿈은 깨야만 하는 악몽일지도 모르겠다 한탄했다. 그렇게 롤러코스터를 타던 나의 장래희망은 단지 희망이었던 걸로 인정하는 순간이 왔고, 내 삶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구멍이 나선 그곳으로 생기가 쏠쏠 빠져나갔다.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한숨을 내뱉고 인생은 그저 살아내는 거라는 애늙은이 같은 말을 읊조리며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신 써지지도 않는 글 따위 써보겠다고 골방에 들어앉을 일은 없을 거라고, 그것보다 더 재미난 것을 찾아 헛헛한 마음을 달랬던 청년기.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달큼하게 치기가 오르는 술자리를 즐겼다. 그때는 정말 책을 읽지 않아도 일기 한 줄 쓰지 않아도 살만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알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아!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사사건건 나의 말에 '왜요?' , '싫은대요' 거침없이 자기 소리를 내는 낯선 존재와 원치 않는 꼴로 골방에 다시 들어앉으며 인생 2막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기존 세상을 향해 '왜?'라는 의문을 품고 그 프레임 밖을 기웃거리는 존재다.

이미 검증된 루트를 쫓아 안전한 길을 알려주어도 재미없다며 굳이 좁은 길로 삐딱 삐딱 거리며 걸어가는 아이.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자꾸 건드리는 아이를 보며 불안한 나는  화내고 고함쳤다. 하지만 아이는 입을 뚱 내고는 돌아섰다가도 또 물었다. 엄마가 하는 말이 이상해. 나는 생각이 달라. 나는 다르게 살 거야. 왜 그러면 안돼? 나날이 아이의 질문 앞에 말문은 막히고, 힘들다고 내칠 수도 없는 존재들을 붙들고  화만 다. 세상에 이런 진퇴양난이 있다니! 이 고비를 넘어보고자 다시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었다.


아이가 행복한 자기 인생을 위해 질문을 한다. 뻔한 대답 말고, 남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인 듯 갖다 쓰지 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의 이야기를 써 나겠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내가 좋아했던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이 그랬고,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그랬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아동 문학과 그림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며 잃어버렸던 기쁨이 잔잔히 밀려왔다. 이렇게 다시 독서, 글쓰기와 화해를 했다. 애초에 운명처럼 얽혀 있었던 나의 것들, 이야기 세상은 내 영혼의 분더카머 중 하나였다.




 나의 글쓰기는 누구를  향해 있었던 걸까? 평가받기 위한 글을 써야 한다고 누가 가르쳐 준 걸까? 학창 시절 이후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 모래 위에 쓴 글처럼 파도에 지워져도 또 깔깔대며 다시 쓸 수 있었던 순수한 즐거움을 떠올린다. 


우리 아이에게도 나다운 가치를 찾아 자기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도록 말랑한 시간들을 허락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체념의 끈으로 묶어두었던 나만의 이야기들을 살살 풀어봐야겠다. 목차도 없고, 일관된 주제도 없다. 그냥 내 마음이 건네는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눈치 보지 않고 써 볼 것이다.


호기심의 방 '분더카머'

나의 글쓰기 분더카머 속에 아이들, 가족, 책. 시, 여행, 그림책 등 다양하고 자유로운 이야기가 가득하기를. 그곳이 나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꽉 찰 때 비로소 새로운 다음 편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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