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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Jun 03. 2022

내 마음이 들리니?

자취생 엄마의 용돈 고민


"여보, 아들 생활비가 부족한가 봐."

"음...... 가계 사정상 더 올려주긴 곤란한데."

"집에 자주 내려오라고 하면 버스비 없다 하고, 과일 사 먹어라 하면 너무 비싸 못 사 먹는다는데 좀 짠해."

"돈은 있는 게 한정이라, 주는 만큼 쓰게 되는 거야. 그리고 아들이랑 같이 합의한 금액이니까 일단 살아보게 하자고. 경제관념 키워주려면 좀 빠듯하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아."




서울로 위탁교육을 간 아들이 자취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었다. 아들이 하는 말들을 종합해서 어찌 지내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헤아려 본다. 일단, 헤어와 메이크업을 배우는 아들 반에는 열 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아들은 유일한 남학생이다. 청일점인 아들을 대하는 친구들의 명랑함과 거침없는 스킨십이 어색하고 기 빨리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는 모양이다. 공부는 어떠냐고 물으니, 헤어는 재밌는데 메이크업은 잘 안된다고.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화장을 배우고 여자 친구 얼굴에 실습을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 나는 짐작한다. 그러면 무엇이 가장 불편하냐고 물으니, 생활비가 많이 들어서 곤란하다고 한다. 쏙쏙 빠져나가는 통장 잔고에 당황스러워하는 아들이 보인다.


자취하는 데 필요한 생활비는 남편과 아들이 의논해서 정했다. 한 달치 식비, 버스비, 잡비를 책정해 주 단위로 끊어서 자동이체를 시켜주는데 아들은 항상 모자라다고 걱정이다. 남편은 이왕 독립을 했으니 생활비 지출 내역을 잘 파악해서 살림을 꾸려 가는 경험을 쌓길 기대한다. 요즘 물가도 높고 서울 생활이 만만치 않은데 책정한 금액이 부족하진 않을까 물으면, 넉넉하진 않아도 학생으로선 적당한 금액이라고 남편은 잘라 말한다. 나도 그러려니 하며 지켜보다가도 가난했던 가정 형평상 자립심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남편과 안정적인 가정에서 별 불편함 없이 자란 아들은 그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치가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말끝마다 돈이 없어서를 달고 사는 아들은 아마 나름대로는 지출 내역을 생각하며 쓰겠지만 꼼꼼하게 관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쓰는 계획에 없던 지출, 그 조그만 틈으로 돈이 술술 세는데 그것을 깨닫고 차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오랫동안 사고 싶었던 것이 갑자기 반값 세일을 한다든가.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 예상에 없던 커피 이 나가게 된다든가, 책정한 점심 값 이상의 음식을 갑자기 먹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다 한 번일 것 같은 소비를 부추기는 상황이 페스츄리 결처럼 하루하루 펼쳐지는데 방심하는 순간 거지신세다. 정해진 금액 안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은 투철한 다짐이 없으면 실패하기 일수다. 여윳돈이 생기기 전까지는 젊은 날 넘어야 하는 산이고 아들은 그 초입에서 당황하고 있다.


아들의 상황을 우리도 겪었기에 이 시기에 수입과 지출 내역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조절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주어야 함을 안다. 아빠는 정해진 금액 안에서 돈을 써야 하는 이유를 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아들은 말없이 듣고 수긍하지만 얼마나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이것은 감성보다 이성으로 살라는 말이기도 하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우라는 또 다른 가르침. 그러나 어린 나이에 이성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며 계획에 맞게 살기란 쉽지 않다. 자꾸만 실패하고 좌절하다 세상에 원망을 쌓지 않도록 잘 살펴 적절히 도와주는 것도 부모의 몫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들이 슬쩍슬쩍 흘리며 하는 진심을 들으려 애쓴다. 집에 올 버스비가 없다거나, 과일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 '아들이 보고 싶어 병원비 드느니 보낸다'는 농담을 섞어 차비를 챙겨주고 배달앱에서 과일을 배송시켜 준다. 여자 친구를 자주 만난 주에는 이벤트성 잡비와 음료 쿠폰을 깜짝 선물처럼 쏘아주고 배달앱에 엄마카드를 등록해 가끔 먹고 싶은 건 사 먹게 한다.


좋은 습관을 들이고 바른생활을 지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아이들 마음에 섭섭함이 쌓이지 않도록 신경 쓴다. 마음이 단단하면 다른 것들은 차후에 스스로 채워갈 수 있을 거라 믿기에 엄마가 줄 수 있는 충분한 사랑을 느끼게 하고 싶다. 이 글을 남편이 읽으면 속에서 자글자글 잔소리가 끓어오를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아들 입에 과일 한 조각 더 들어가는 게 좋고, 혼자 떨어져 외로운 아들이 여자 친구와 다정하고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 부모의 일관된 양육이 바른 습관을 길러준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난 천성을 거스르며 냉정하기가 힘들다. 그냥 남편은 선을 지키는 단단한 양육을, 나는 그 선을 넘나드는 유연한 양육을 우리 집의 일관된 양육법으로 정착시키면 어떨까. 아빠는 원칙을 가르치고 엄마는 그 원칙을 넘어서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그런 가정 말이다. 행여 나의 이런 행동이 아들의 자립을 막고 남에게 쉽게 의존하는 습관을 들이게 될까 염려가 될 때도 있지만, 우려하는 마음보다 엄마의 진심을 알고 바른 방향으로 인생의 길을 걸어갈 아들임을 믿는다.




"야옹야옹"

청소하는 나를 따라다니며 나나가 불러댄다. 왜? 하고 물었더니, 자기 간식이 든 서랍장으로 데려간다. 그리곤 초롱한 눈동자로 서랍장을 바라보고 있다. 한껏 기대에 차선 잔망스럽게 꼬리도 흔들어댄다. 나나의 모습이 귀여워 찰칵 사진을 찍곤 아들 폰으로 전송했다. '나나 간식 좀 줘!'  혹은, '귀엽다! 나나 보러 집에 가고 싶네!' 이런 답 톡을 기대하며 문자도 한 줄 남겼다.


"나나가 뭐라고 하는 거 같아?"

"나에게 용돈을 주라고!"

"ㅋㅋㅋ 알았어."


나는 카톡으로 아들에게 얼마간의 용돈을 보내 주었다. 그날 밤에 통화를 하며 무엇을 했느냐? 물었더니, 여자 친구와 떡볶이를 먹었다고 한다. 너무 자주 만나는 거 아니냐니까 아니라며 웃는다. 아들이 여자 친구를 많이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마음이 어리다고 다를까! 시간 나면 만나고 싶고 오래 같이 있고 싶고 그러려면 밥도 사 먹고 밀크티도 한 잔 마셔야겠지. 때론 함께 영화도 보고 싶을 거고. 생활비로는 택도 없을 아들 연애까지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엄마지만, 지금 아들의 이쁜 사랑을 응원하고 싶다. 이제 꿈을 향해 인생의 첫 발을 내딛는 아들이 자취 생활에 적응하며 스스로의 패턴을 찾아갈 수 있도록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숨 쉴 틈이 되어주는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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