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만난 인턴들과의 만남, 일, 생활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인턴 중에서 가장 좋은 인턴이 KOICA 인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모든 인턴제도를 알지는 못하지만, 해외사업이나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이 있다면,
해외사무소에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파견하여 주거비, 생활비 지원해주고, 항공권 등 모든 비용을 제공하면서
해외 생활과 업무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B국가에서 청년인턴 1기부터 6기까지 함께 일해보았고, C국가에서는 8기부터 18기(?)쯤까지 함께 일했다.
1. 아쉬운 잦은 임기 변경
내가 C국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인턴제도의 임기는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 6개월 + 6개월이었고, 본부 4개월 + 현지 6개월 제도로 변했다.
그리고 다시 6개월 + 6개월로 바뀌었다. 그리고 5개월 + 5개월로 바뀌었다.
그 이후 5개월 단기로 바뀌었다가 이번에 공고한 걸 보니 12개월로 바뀌었다.
제도가 변경되는 건 매번 나름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만, 인턴 당사자와 사무소 입장에서는 참 어려웠다.
취준생이 6개월에서 1년을 해외에서 보내는 것은 나름 많은 고민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어찌 보면 손해를 보는 일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사무소 입장에서는 새로 오는 사람을 위해서 집도 준비해야 하고 업무도 조정해야 하고 해야 하는 일이 많다. 기간이 바뀔 때마다 다시 조정해야 한다. 4년간 업무분장을 두세 달에 한 번씩 바꿔야 했다.
2. 좋은 점
개도국에서의 삶을 경험할 수 있다. 개발협력에 관심이 있지만 현지에서 살아보고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코이카 영프는 개도국의 삶이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도 있고, 주재국 고위층 인사들의 삶을 엿볼 기회도 있다.
원조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고, 되는 게 잘 없구나 회의가 들 수도 있다. 이런 경험 모두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이다.
꽤 많은 인턴들을 거치면서 인턴들의 반응을 보면,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꽤 많다.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이쪽 일을 하겠냐는 물음에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꽤 있었다. 꼭 코이카에 입사하고 싶어 졌다는 사람은 딱 한 사람 있었다.
한편으로 대부분 인턴들이 좋아했던 것은 전문가 출장 수행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해당 사업을 위해서 주재국 정부 관계자를 방문해서 협의하고, 내부 협의하고 의견을 조율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걸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2주 정도 출장단과 함께 지내면 친해지기도 하고, 많은 격려와 도움을 받고 한편으로는 네트워크가 쌓이는 이점도 있다.
3. 별로인 점
사는 게 쉽지 않다. 주거 환경, 주변 환경이 한국에서 살 때보다 확실히 추락한다.
처음 도착했을 때 인턴들의 집에서는 세수할 때 전기가 통하기도 했고, 바퀴벌레 다반사에 집 주변은 비포장인 경우도 있었다.
늘 더러운 택시를 잡아서 흥정해야 하고, 깔끔하고 우아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먼지 풀풀 날리고, 땀나고 짜증 나는 순간의 연속일 수도 있다.
인터넷, 전기, 수도는 아무 때나 끊기고,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 한국식당은 비싸다.
인턴이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사무소 소장 또는 부소장, 코디네이터의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이 많기 때문에 어떤 일은 담당자 수준의 업무를 요구받는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 말은 그만큼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책임은 소장이 진다.
이왕 나왔으니 마음껏 해외를 즐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 상당히 제약이 많다. 해외 휴가도 제한적이고, 밤에 다니는 것도 안되고, 주재 국내 여행도 꼭 허락을 받아야 하고, 여러 제한이 있다. 개도국에선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서 가능한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게 기본 방침이다. 상당히 답답할 수 있다. 늘 인턴들은 휴가가 불만이었다. 주변 국가도 휴일 이용해서 더 다녀보고 하면 좋을 텐데. 쉽지 않다. 특히 국내 여행을 다닐만한 곳이 없는 국가는 그냥 답답한 생활이다.
4. 나는 무얼 기대할까?
인턴십이기 때문에 사실 기대치가 높지는 않다. 일을 잘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맡은 업무를 성실하게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공부하기를 바란다.
일을 잘하면 좋겠지만, 짧은 시간 낯선 업무를 잘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일 자체는 루틴하게 돌아가는 면도 있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경험적인 판단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요구했던 것은 이렇다. 담당하는 업무 관련 문서와 관련 규정을 읽고, 과거 또는 작년에 했던 일을 참고해서 자신의 결론을 도출해 보시라.
일하면서 대부분의 인턴들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고, 적정 수준의 기대했던 만큼의 일을 해냈다. 어렵거나 복잡하면 물어보고 같이 논의해가면서 일을 했다.
그중 한 인턴은 내 예상을 뛰어넘게 일을 잘했다. 보통 업무 결과를 함께 이야기할 때 내가 이런 면은 어떻게 되는 거에요 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지만 이런 질문은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다. 경험하지 못하면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매년 조금씩 변화하는 업무의 히스토리를 알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그분은 늘 거기에 대해서 자신이 이렇게 생각했는데 저렇게 될 것 같아서 요렇게 했어요 라는 답을 했다. 그래서 난 많이 놀랐다. 사회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일을 잘했다.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일을 잘하는 구나를 그때 처음 느꼈다. 그는 늘 일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할 만큼 업무에 자신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데.
물론 더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관련 공부를 하고 오래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5.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개발협력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코이카 입사를 시도한다고 들었다. 인턴을 통해서 자신의 역량을 맘껏 발휘하고 좋은 평판을 얻어 입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 같이 일하기가 좀 쉽지 않고 어렵구나 라는 평판을 얻게 될 수도 있다. 해외생활은 상당히 좁은 커뮤니티에 속하게 되고 일을 같이 하면서 삶도 거의 같이 하게 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도 일하고, 밤에도 밥이나 술을 같이 먹고, 주말에 놀러 가는 것도 회사 사람들과 같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사람의 민낯을 알 수 있게 된다.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나의 단점이 다 드러난다. 해외생활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이유다.
세상은 좁고, 소문은 빠르다.
6. 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이카 인턴은 꼭 한 번 해보면 좋겠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제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 인생의 6개월에서 1년을 낯선 곳, 살기 어려운 곳, 그래도 사람 살만 한 곳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색해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도 있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있다. 끝나면 뭘 할까 고민하면서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인턴을 마치고 나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만났던 인턴들은 상당수가 연락이 되거나 소식을 듣는다.
유학 간 사람도 있고, 코이카에 입사한 사람도 있다. 코이카 코디네이터로 타국에서 근무 중이기도 하고, 대사관에 행정원으로 있기도 하다.
기자가 된 사람도 있고, 중견기업 회사원이 되기도 했다. 개발협력 엔지오에 들어가기도 했다. 개발협력과 관련된 스타트업에도 근무하고 있다.
인턴생활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세상 어디서든 좋은 기억이 있고 나쁜 기억이 있을 거다.
서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에서 살면서 인생의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것이 추억이 되고,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나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P.S. ODA 청년인턴제도는 현재 영프로페셔널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어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