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과 함께
어제부로 1년의 육아휴직이 끝났고 오늘 첫 출근을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눴고, 같이 차를 마셨고 식사를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1년간 사회와 거리를 두고 가정을 중심으로 살았던 삶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고 싶었다.
1. 아이와의 친밀감은 정말 좋아졌다.
확실히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수록 친밀도가 상승한 것 같다. 같이 장난치고 게임하고 춤추고 노래부르면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숨바꼭질도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했다. 자전거를 탔고 산책도 하고 등산을 다녔다. 작년에는 무서워서 많이 못했지만 그래도 올해는 조금더 야외 활동을 많이 한 것 같다. 길에서 넘어진 딸이 '아빠~' 하고 우는 모습에 감동했다. 엄마가 아닌 아빠를 부르며 우는 아이의 모습이 우리 사이의 친밀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2. 책을 많이 읽었다.
틈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아침마다 신문도 읽었는데 신문읽을 때는 별로 감동도 없고 기분만 나빠지는 글이 많았다. 역시 책이 좋다. 1년간 한 50권쯤 읽은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도서관에서 빌려서도 많이 읽긴 했는데 읽고 좋은 책은 사기로 했다. 책을 사는 게 취미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서현 알라딘 중고서적을 많이 갔다.
3.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 외로웠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좋긴 한데, 그럼에도 어른의 대화가 없는 삶은 상당히 외로웠다. 특히 21년 올해는 어린이집과 학교가 정상적인 등교를 하면서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나면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고 하루 종일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 소통의 결핍과 갈증을 느끼게 했다. 퇴근하고 온 아내는 피곤해했고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맘에 안드는 집안 청소를 하는 등 와서도 바빴다. 하루종일 퇴근하길 기다리는 나에게 할당되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출근을 했다면 회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같이 점심 먹으면서 그런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을 텐데. 엄마였다면 아이 친구 엄마들과 어울려서 외로움을 덜 느꼈을 것이다. 이 외로움은 육아를 하는 아빠가 겪게 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4. 뭐라도 해야겠기에 도서관에서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20년에는 코로나가 너무 무서웠고, 아이들도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시간이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21년이 되었고 집에만 있어서 지쳐버렸던 나는 뭐라도 하고 싶었다.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강의를 들었다. '예산을 알아야 민주주의가 보인다'. 일주일에 한 번 가서 강의 듣고 질문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소중했다. 그래서 이후에 수지시민 정치학교라는 강좌를 또 들었다. 거기서도 매주 사회 이슈에 대한 강의를 듣고 토론했다. 그 곳에서 참 말 많이 한 것 같다.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소중했다. 매주 강의일이 기다려졌다.
5. 삶의 활력소가 된 신문스크랩 봉사
강좌를 듣는 것보다 더 좋았던 건 신문스크랩 봉사, 처음 모집공고를 보았을 때는 6개월 이상이라고 되어 있어서 복직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지나가다가 3개월만 해도 되냐 물어보니 된다고 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신문읽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요즘 신문을 보면 기분 나쁘고 관점을 납득할 수 없는 기사들이 많아서 답답하던 차에 같이 읽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쌓인 신문중에 선택해서 읽고 그 중 좋은 기사를 추려서 설명하고 의견을 나누는 순간이 굉장히 좋았다. 몰랐던 걸 알게 된 것도 많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도 좋았고, 기사에서 연상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다. 여전히 대화가 부족한 나는 내 이야기를 꽤 많이 했다. 혼자 머릿속으로만 나누던 대화를 반응이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느낌이 좋았다.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하는 신문 스크랩은 금요일 오전에 하는 지라 쉽게 접근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된다면 누구라도 추천하고 싶다.
6.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요리를 하나씩 해보게 되었다. 처음엔 국을 끓여보기 시작했다. 시금치 된장국, 미역국, 콩나물국, 소고기 무국. 백종원 레시피를 보면서 하나 하나 따라하니 그럴듯한 맛이 나왔고 뭔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하나씩 새로운 걸 도전했다. 내가 좋아하는 닭도리탕, 삼겹살, 감자짜글이, 꽁치조림, 무생채 등.
디저트도 해봤는데 티라미수는 여러번의 실패 끝에 먹을만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자주 만들었고 처가와 본가 어르신 생일 때 가져가서 큰 환호를 받았다.
그릭요거트를 만들었고, 파베 초콜릿도 만들어 보았다.
요리를 하면서 배운 건, 장보는 것도 일이었다. 매일 슈퍼에 가야했고, 매일 뭘 할까 고민해야 했다. 이것도 일이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정말 많이 했다. 매일매일이 설거지의 연속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세 번 했다. 밥 한 번 차리는데 왜 이렇게 많은 그릇이 필요한 걸까. 가능하면 그릇을 안쓰려고 노력했다.
7. 엄마들 사이에서 느끼는 뻘쭘함과 외로움
작년에는 큰 아이가 학교를 갈 때 바래다 주었고 올 때도 마중을 나갔다. 1학년 부모들은 다 그런 것 같았다. 물론 99퍼센트 엄마가 온다. 엄마들은 하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면서도 아는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학교 끝난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 때도 같이 친교를 나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애매하게 서성인 것 같다. 특히, 작년에 큰아이와 같은 반 아이들이 다 같이 한 놀이터에서 어울려 놀 던 때가 있었는데 혼자 남자인 나는 참 뻘쭘했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안면을 트게된 몇몇 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고 아이가 놀기를 마칠 때까지 늘 불편했다. 이 어색함과 뻘쭘함 역시 아빠 육아의 큰 장애물이다.
8. 학교도 학원도 아빠는 불편해
학교도, 영어학원도, 태권도도, 눈높이도 모두 엄마를 찾았다. 나랑은 뭔가 소통이 잘 안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내가 꼼꼼히 잘 챙기지 못하기도 한 것 같다. 연락은 일하러 나간 엄마에게 가기 일 수 였다. 학교의 알림 문자도 엄마에게 간다. 학교 입학때부터 원래 설정이 그렇게 되어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년만 내가 담당을 하려고 하니 뭐가 자꾸 엇갈리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고, 상대편도 아빠보다는 엄마를 편하게 생각하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 어린이집도 엄마랑 더 편하게 소통하는 것 같다. 내가 무뚝뚝한 타입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상대방도 나도 편하게 아이와 관련된 내용을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다.
9. 돈이 없으면 못하는 육아휴직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도 그렇고 하는 와중에도 그렇고 끝날 때까지 돈이 참 많이 들었다. 휴직 전에 일년 치 연봉의 70퍼센트 정도를 모아놨는데, 여기에 나라에서 주는 육아휴직 수당과, 아내가 뛰쳐 나가서 취직해서 벌어온 월급까지, 모든 돈을 다 쏟아부었다. 그래서 궁핍하게 살지는 않고 평소처럼 살았고, 사실 더 즐기며 산 것 같다. 건조기를 샀고, 디지털 피아노도 샀다. 봄에 제주도 여행도 2주씩이나 다녀왔다. 어느 정도 할 거 다하면서 살았다.
10. 내 삶은 리프레시 되었는가? 쉬었는가 아니면 일했는가?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순간에 막 육아휴직을 끝내고 돌아온 후임자에게서 리셋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리셋까지는 모르겠지만(그는 2년을 했으니 그럴만하다) 리프레시는 된 것 같다. 1년전 찌든 몸과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에 쌓인 독이 좀 녹아내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 것도 못하겠다는 무기력감은 적어졌고 이제 뭘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정말 멈춤이 필요한 것 같다.
11. 휴직을 끝내고 해외로 가자.
휴직은 종료되었고 다음달에는 해외로 다시 파견을 나간다. 휴직 기간중 공모 나온 것을 보고 지원했다. 여러 국가중에서 아이들이 잘 살 수 있을만한 곳을 지원했고 그래도 지원한 곳에 가게 되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나라이고 역사와 전통이 있는 나라이고 관광지도 많은 곳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즐기면서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