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없다. 그렇기에 엄청난 애정을 품고 있지도 않는 데다가 친가 쪽엔 오랫동안 마음에 담을 쌓아왔기에 관심 또한 없었다. 다만 오랜만에 본가에서 마주한 할머니의 모습은 왜소하고 눈 밑이 움푹 들어간 힘이 부친 노인의 모습이었다.
나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눈앞에 보이는 김을 바라보았다. 몇 달 전 할머니네 고양이가 보고 싶어 무작정 따라갔던 시골 식탁 위에서 보았던 눅눅한 그 김이 어째서 우리 집에 있는 걸까. 분명 우리 집 김은 늘 바삭거렸고 재밌는 식감이었는데. 시골에서 보았던 김은 누가 봐도 10년은 다 된 반찬통에 기름 잔뜩 묵은 번들대고 풀죽어있는 반찬이었기에 나는 그것에 손대지 않고 밥만 퍼먹으며 빠르게 식사시간을 끝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무정하다 하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추억이 없기에 지금처럼 어쩌다 가진 식사 자리는 내게 불편했던 자리였다.
눅눅한 그것엔 인생이 깃들어있다.
김은 우리에게 일상이었고 치열한 삶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어린 시절 엄마의 눈물이 담긴 <김>은, 그 아픔을 모르던 우리의 식탁에선 전쟁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식탐이 많은 검은 머리 셋에게 그 반찬은 늘 인기스타였으니까. 그러니 그 눅눅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눈을 감았다 뜨면 김은 늘 사라져있었는데.
이 김은 할머니와 함께 따라온 김이었다. 정확하게는 늘 새로운 것을 채워도 노인의 길어지는 식사 시간에 맞춰 열어둔 통안에 공기가 들어와 김을 눅눅하게 만들었다. 결국 눅눅해진 김은 아무도 손대지 않았고 가득 채운 김은 늘 풀이 죽어 있었다. 유일하게 손대던 한 사람은 바로 할머니였다.
최근 당뇨로 인해 할머니가 내려와 엄마와 지내면서 집안 분위기가 무척 달라졌었다. 성미 급한 모습이 줄어든 할머니를 보며 나는 그분이 엄마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어쩌면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이 없는 나의 엄마에게, 엄마인 할머니는 꽤나 어렵고 불편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8명의 형제를 둔 가족이었지만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들은 집에 대한 추억을 만들기도 전에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것이 당연하던 때이기에 그들에게 추억이라 할만한 것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시골에 갔을 때가 기억이 난다. 벌레가 기어들어오는 오래된 건물 아래, 후덥지근한 날씨와 등을 돌린 두 노인의 침묵. 울리지 않는 전화벨. 그 사이로 신나게 웃고 있는 티비 속 남자의 목소리가 이질적이고도 슬프게 느껴지던 건 나뿐이었을까.
바삭대는 가족이 되고 싶어
자녀를 셋이나 뒀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와 장애를 가진 둘째, 그리고 정신적으로 아픔을 갖고 있는 막내를 바라보며 버텨야 하는 엄마를 바라본다. 나는 이미 집을 나왔지만 대단히 엄마에게 자랑할 무언가를 주지 못한, 세상의 시선으로는 실패한 한 사람으로서 남아있었고, 장애를 가진 둘째를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와 방황하는 막내를 들처업은 엄마에게 자녀는 꽤 힘든 짐이었으리라. 그런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반면에 어릴 적 온전한 애정을 받지 못한 분노가 함께 뒤엉켜 있었다.
엄마 또한 그랬겠지. 푸념 섞인 이야기로만 듣는 그녀의 사무친 삶의 애환은 평화로 포장된 가족의 모습에서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공기로 눅눅해진 김에 뚜껑을 덮었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그 풀리지 않은 검은 속내만 입안으로 쑥쑥 넣는 것이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결국 참아서 이뤄낸 것들.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잡느라 본인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표정으로 당신의 주변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형태에 다다른 것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자녀들과 최선을 다했다는 부모의 다툼은 우리 집안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좁힐 수 없는 틈은 결국 애정과 신뢰의 문제였기에사랑 표현을 배우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우리와, 배울 수 없었던 부모 모두 피해자일 뿐이다. 그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관계에 대해 나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사랑하기로 작정했다. 일찍 홀로 서야 했던,힘들고 외로웠을 아이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그녀를 위해. 그리고 그녀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남을 돌볼 수 있는 마음은 결국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가지고 있는 재산에도 영향을 받는다. 다만 행복이 비교에서 출발하는 이상, 그의 여유는 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보다 부족하고 힘들어하는 자를 돕고 나누며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삶을 나만의 것이라 여긴다면 미련한 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누린 것은 결국 우리를 괴롭게 만든, 우리가 생각하는 골칫덩이라고 하는 존재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니까. 세상은 유기체적이고 우리는 그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돕고 공존해야 한다.
여전히 나의 엄마는 김 뚜껑을 열어둔 채로 하염없이 티비를 바라보신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라는 말에 "모두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을 던지시고 방에 들어가셨지만 나의 눈은 여전히 엄마를 향해있다. 안타까운 눈빛과 함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자식의 시선으로. '가족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거야. 그러니 진정한 가족의 평화를 이루고 싶다면 엄마도 행복해야 해.' 가슴속 우글거리는 말들을 삼키며 나는 오늘도 열어둔 김 뚜껑을 닫는다. 언젠가 새 김을 채워놓을 날들을 기다리면서. 그날 동안 나는 울고 싸우며 사랑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