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엄마가 날 좋아하면 좋겠어."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며

by 호춫추

영화 <레이디버드>에서 나온 대사 중 한 마디다. 이전부터 보기 위해 마음먹고 있었던 영화였는데 우연찮게 기회가 돼서 감상하게 되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딸의 성장과정과 엄마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딸 '크리스틴'과 엄마 '매리언'이 서로 마주 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서로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고는 다음 씬에서 투닥거림이 이어졌지만 말이다.



엄마는 옷 정리 제대로 안 하고 잠자리에 든 적 없어? 엄마가 혼내지 않길 바란 적 없어?

- 우리 엄마는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였어.



좋아하는 사람과 입맞춤을 한 뒤 기분 좋게 돌아온 '레이디버드(크리스틴)'에게 엄마 매리언은 곧장 방안으로 달려가 늦게 들어온 것과 허물처럼 벗어둔 옷가지를 보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게다가 약속까지 했으면서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부르는 게 아닌, '크리스틴'이라고 부르는 엄마를 향해 한 말은 결국, 엄마의 상처를 꺼내게 만든다.


그녀가 그녀 자신의 이름을 레이디 버드라고 부르는 장면에선 마치 내 어린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가 우리 엄마가 아닌 '상냥한 부자 엄마'가 와서 나를 데려가길 바랐던 철없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말이다. 크리스틴도 그런 기분이었을까.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밉고, 내가 나였으면서도 내가 아니었으면 하는 그런 사춘기의 감정들 말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합창단 코러스 부분에 적힌 자신의 이름에 줄을 그으며 '직접' 지은 이름을 적어놓는다. "레이디 버드." 신청서에도 그러했듯이.






영화는 10대들이 느끼고 경험할 만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친구와의 관계, 진로에 대한 고민, 성에 대한 것들.. 무엇보다 나는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는 레이디 버드의 행동에 주목했다. 그녀는 내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확고하게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똑똑하고 도전적인 아이였다. 엄마와의 관계 문제에서도 그녀는 솔직하게 화두를 던진다.


힘들면 앉을까.
- 안 힘들어.
발을 질질 끌길래 힘든 줄 알았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 그냥 똑바로 걸으라고 하면 되잖아.
힘든 줄 알았다니까?
- 돌려서 말하지 마.


레이디 버드의 걸음걸이가 신경 쓰였던 모양인지 매리언은 한소리를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옷에 시선을 둔다. 기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면서도 곧장 딸애 취향에 맞는 예쁜 옷을 골라 내보인다. 그러고는"예쁘다" 말을 하며 좋아하는 딸의 모습에 집에 돌아와 옷을 수선해 방에 가져다 걸어놓는다. 잠든 레이디 버드의 옆에 아무렇게 던져진 옷가지를 조용히 집어 들면서. 늘 잔소리를 해왔지만 묵묵히 뒤에서 그녀를 지키는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레이디 버드와 남자친구(였던) 대니.
집에 가야 해?
-우리 엄마는 항상 화나있어.
어차피 혼날 테니까 늦게 가도 상관없어.

엄마가 엄하시구나.
-날 엄청 사랑하지.


'엄마를 닮아 수학을 못하는' 그녀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다만 애정표현에 있어서 엄마를 볼 때마다 늘 남에게만 친절한 모습에(옷을 고르던 매장에서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안부를 묻거나 병원에서 동료의 아이 선물을 주는 상냥한 엄마 매리언.) 그녀는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는 엄마와 내가 보는 나의 엄마. 다정함을 바랐던 그 시절 나처럼 말이다.


예쁘게 봐줬으면 좋겠어.
- 미안. 사실대로 말했는데. 거짓말하라는 거야?
아니, 내 말은 그냥 엄마가 날 좋아하면 좋겠어.
- 당연히 널 사랑하지.
그런데 날 좋아해?
-난 네가 가능한 한 최고의 모습을 보며 주면 좋겠어.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레이디 버드의 말에 나 또한 묻어둔 내 감정이 천천히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나무라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하길 늘 말씀하셨다. 무신경해 보였지만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안다. 다만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박감과 짐을, 부모님이 말하지 않아도 어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처럼 나 또한 최선을 다하는 어린이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부끄럽게도 그 시절 나는, 나를 파괴하는 쪽을 택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게 짐을 덜어주지 못한, 이해해 주지 못한 부모님을 탓하며. 그러나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 짐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도 않은 그것은, 그저 나의 '상처'였다.


관계라는 것은 시냅스처럼 복잡하고 정교하게 얽혀있다. (일방적인 폭력을 제외한) 모든 싸움엔 서로의 잘못이 뒤섞여있다. 나의 상처는 어린 시절 나를 이집 저집 맡겨두며 버려둔 기분을 느끼게 했던 엄마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상처였다.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우리가 각자 어루만지고, 달래고, 이해해야 할 무언가의 뜨거운 감정. 애달프고 사랑이 필요한 이름 없는 '무엇'이었다.


영화는 결국 레이디버드가 '크리스틴'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펜으로 적으며 마무리가 된다. 그건 자아 확립과 함께 엄마와의 관계를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한줄기 빛으로 보였다. 앞으로도 어려움은 반복되겠지만 여전히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크리스틴은 더 확실히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그 부분에 공감하며 다시 한번 사랑을 곱씹어 보게 됐다. 어린 나는 몰랐던, 기억지 못하지만 받았던 사랑을 누군가에게 주고 되새기면서 더 깊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