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주는 게 그렇게 아까워?

나이 먹고 동생이랑 싸운 이야기.

by 호춫추

엊그제 동생과 대화를 하다가 격해지는 마음에 바다 앞으로 걸어갔다. 체력도 안 좋았고 시선 공포증에 두려워 나가길 꺼려하던 내가, 사람이 많은 휴일 저녁시간 때에 눈물을 쏟으며 밤길을 배회할 정도였다.


시작은 별게 아니었다. 웃으면서 동생 입속에 고기를 넣어주고 눈앞에 보이는 과자 하나 집으려고 할 때 '그거 내가 가져온 건데?'라는 동생의 말 한마디였다. 그저 동생에게 '그랬구나. 나 먹어도 돼?' 말하면 되는 거겠지만, 치사하게 느껴져서 '네가 샀어? 네가 산거 아니잖아.'라는 삐딱한 말이 튀어나갔고 동생은 왜 그따위로 말하냐,부터 시작해서 익숙하게 욕설을 나열했다. 결국 나는 터질 것 같은 분노와 슬픔에 외투를 챙겨 입고 나갔다.


동생에게 '내 것도 나눠줬고, 함께 나누기만을 바랐는데. 그게 큰 바람인가'부터 시작해서 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까지, 별별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젠 어린 녀석도 아니고 스물 중반이나 되었는데도 아직까지도 '내 것은 내 것. 가족 것도 내 것'만 말하며 손만 내미는 모습에 억울함이, 최근에 없는 내 생활비를 긁어 돈을 빌려준 기억, 이전에 몇백의 빚을 갚아줬는데 갚지도 않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억울함이 집채만 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미련하게도 그 과자 한 조각 때문에.




내겐 동생이 하나 더 있는데 둘째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런 순간에도 내 감정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전히 혼자라는 생각에 바다를 보고 울면서 습관처럼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신에게 편안한 죽음을 달라고 빌었다. 어릴 때부터 지옥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 자살은 유혹적이면서도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잘못만 생각났다. 자꾸만 과거로 끌려들어 갔다. 부모가 동생을 정서적으로 챙기지 못했다면 내가 그랬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저급한 욕을 부모님 앞에서 내뱉거나 못되게 구는 것들, 남들과 같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날처럼 나를 때리고 칼 든 채로 '정신병자 같은 X'이라는 말도 안 했을 텐데.


왕따와 우울증을 겪던 어린 시절, 난 힘들어서 주변을 돌보지 못했다. 그래도 동생에겐 종종 편지를 쥐여주곤 했는데. 미안함과 사랑한다는 글을 자주 건넸지만 동생에게 그건 김미영 팀장의 스팸과도 같았다. 내 편지는 펼쳐지지도 못한 채 구석에 박혀있거나 바닥에 돌아다니는 것들이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막내의 방황기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첫째였다. 그런 사실이 나를 지금껏 힘들게 했다. 내 화살은 결국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남들보다 내가 제일 우스웠고, 제일 쉬웠기 때문이다. 나만 제정신을 차렸다면, 내가 본보기가 되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그렇게 울며 방황하는 나를 찾는 유일한 사람은 아빠였다. 나는 아빠의 전화를 끊으며 혼자 있고 싶다고 거절했지만 아빠는 평소 성격대로 집요하게 연락을 하고 이 자리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위치를 말씀드리고 옆에 자리를 내드렸다. 눈물을 닦아내고 아무렇지 않게 '이젠 괜찮아요.'라는 내 말에 아버지는 동생의 입장을 대신 설명하시면서 내 손을 잡아주셨다.


"별일 아니야. 그냥 넘어가면 되는 거잖아."

"저도 알아요. 근데 그게 너무 어려워요."


방황하는 막내를 보며 나도 아빠도 방황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동생을 이해하자고 하셨다. '결국엔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라면서 말이다. 나는 최근에 안 사던 로또를 구입했던 말을 꺼내며 '하나님이 이 로또가 당첨되게 해 주셨다면 나 정말 잘 살 수 있는데. 기부도 하고 열심히 살 수 있어요. 아니면 증표라도 보여주시면 좋겠어요. 나를 정말 사랑한다고, 나를 지켜준다는 증거를 보여주시면 좋겠는데. 나 그러면 견딜 수 있어요. 모든 어려움이요. 그것들이 실제로 나타나면 좋겠어요.'라며 울었지만 아빠는 '그래서 내가 왔잖아.' 하시며 웃어 보이셨다.


나는 아빠의 믿음까지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이전엔 생각할 수 없었던 '두려웠던'아빠가 '상냥한'아빠가 된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그 '기다림'이 길어도 기다릴법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그리고 동생에게도. 미래가 보이지 않고 나 자신이 싫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끝은 모르니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며 갈 길을 가야 한다는 것. 성향이 달라 힘들었지만(여전히 그럴 때가 찾아오지만), 결국 함께여서 맞물리는 아빠와 나의 관계처럼 가능한 것들을 보면 말이다. 힘든 때를 지나 결국엔 회복되는 것들을 생각하며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눈물을 삼키고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