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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Mar 12. 2020

펜데믹에 왜 총알 수요가?  

열악한 공공의료 시스템이 주는 불안이 잠식하는 일상

"미국은 지금부터 시작 같아요."

"확진자가 1,300명이라고요? 13,000명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걸요."

"병원에서 그러더라고요. 각자 알아서 조심하라고."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걱정스러운 얘기들을 쏟아낸다. 미국 생활 10여 년째인 나도 요즘처럼 불안한 한 건 처음이다. 23년 만의 서킷 브레이크 등 주식시장은 바닥을 모르고 급낙중이다. 오랫동안 준비하던 모임이며 콘퍼런스들도 다 취소됐다. 초중고대학들이 문을 닫았다. 대중교통에선 아무도 기침 비슷한 것도 하지 않는다. 항상 넉넉하던 슈퍼마켓 매대가 거짓말처럼 텅 비어 있다. 다들 티 내진 않지만 나처럼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일찌감치 중국인 입국을 금지한 미국


지난달 31일, 보건장관 알렉스 에이자는 14일 이내 중국에서 체류한 모든 외국인 방문자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다. 하루 앞서 미국 국무부는 중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여행 금지령으로 바꿨고 미국 유력 항공사들은 중국 간 운항을 잠정 중단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미국 전파를 막기 위한 '과학적 판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TV에서 보인 이러한 선언 외에 실생활에 느껴지는 변화는 없었다. 중국 출장을 다녀온 회사 동료가 싱가포르를 경유해 아무 문제없이 출근했다는 얘기며 병원 근무자인데 특별 지침 하나 없다는 원망, 열 감지기나 문진 없이 입국했다는 국제공항 상황 등에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동시에 워싱턴 주에서 시작된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이 텍사스, 플로리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각지로 퍼지는 현황을 지켜보아야 했다. 


내가 사는 뉴욕 지역 첫 확진자는 3/1일 발생했다. 이란에 다녀온 30대 여성이고 병원이 아닌 맨해튼에 있는 자택에서 자가 격리 중이라 했다. 출처가 확실했던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3/6일, 플로리다 여행이 이력의 전부였던 50대 변호사가 응급실에 실려와 코로나 확진자로 밝혀지자 상황이 심각해졌다. NYU를 비롯해 뉴욕의 유명 사립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들, 기차를 타고 뉴욕 외곽에서 맨해튼 중심가까지 매일 출퇴근했던 동선들, 그리고 유대인 콘퍼런스와 기도 모임에 활발히 참석했던 이력들이 나오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감염됐는지 가늠이 안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요일인 오늘까지 216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이웃 뉴저지주에선 23명 확진자 중 벌써 사망자가 나왔다. 겨우 하루 100여 명 정도 검사를 했던 결과이다. 뉴욕주는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진단 키드 23,000개를 확보됐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중국인 입국 금지 선언 이후 정부와 지역 사회가 너무 안이했다고 원망한다. 뉴욕지사도 연방 정부를 비난한다. 면피처럼 중국에서의 입국 통제를 선언만 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지역 감염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그 공방조차도 불안하기만 하다. 


공공의료 부재 속의 판데믹(Pandemic)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지구적인 대 유행 전염병이라고 선언된 오늘까지 미국의 일반 병원에서의 혼란도 여전하다. 현재 미국 34개 주가 코로나 관련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이다. 

뉴저지 보건부가 지난달 말 병원에 배포한 기준을 보면, 확진자와 직접 접촉자, 14일 내 바이러스 발생 지역 여행자, 심각한 폐렴 증상의 환자는 지역 보건 부서와 DOH(Department of Health)에 통보된다. 이 두 곳에서 승인이 나면 비로소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에 있는 몇 군데 병원에 문의를 해 본 결과 코로나 환자에 처치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이 없어 보였다. 이번 주부터 연방정부 차원의 코로나 진단이 무료라는 보도가 있어 문의했지만 병원에선 잘못된 소문이라 정정한다. 아직 일반 병원은 진단 키드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구체적인 치료법이나 서포트 등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 19와 관련한 검사와 치료 금액이 불분명하다. 이 새로운 바이러스 진단과 치료 비용에 대해 보험사가 얼마나 커버해 줄지는 각자 가지고 있는 보험의 종류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했다. 아직 보험사에서 코로나 19에 대한 지침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더불어 부르는 게 값일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에서 얼마나 커버가 되는지, 보험이 없으면 얼마나 내야 하는지 아프기 전에, 치료받기 전에 확인해야 한다. 

기존 독감으로 병원에 간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보험 없이 대략 검사비용만 $3,500, 보험이 있는 경우 $1,000-1,500을 지불했다고 한다. 코로나의 경우 키트가 부족으로 진단 자체로 쉽지 않거니와 결과도 약 3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미국 국민의 절반이 무보험 상태인 지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코로나를 의심하며 병원을 찾을지 암담해진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확진자들 대부분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에 더 걱정이 앞선다.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처럼 검사, 확진, 읍압 병실 등을 이용하면 억 단위 영수증이 날아올 것이라 장담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은 100%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해도 결코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최악의 의료보험을 가진 나라에서 전염병은 그래서 더 공포스럽다 싶다. 일반 시민들은 바이러스와의 싸움보다 비용과의 전투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서 말이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현명한 선택"


장을 보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시장이 주민들에게 2주 치 식량을 확보해놓으라 했다고 알려준다. 평소엔 들고 간 장바구니 하나 정도만 채우던 나였지만 왠지 카트 가득 휴지며 물, 캔 제품들을 담아야 할 것 같았다. 생전 안 먹던 제품이라 맛이나 요리 법도 모르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건 나만의 공포가 아닌 것 같다. 아침 일찍 휩쓸고 간 이들이 있었는지 <2개 이상 구입 금지>라고 쓰여 있는 선반들이 썰렁하다. 


연예 가십을 소개하는 TV 프로에선 화장지를 먼저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블랙 프라이 데이보다 더 붐비는 요즘의 대형마트 풍경을 보여준다. 여기에 미 총기협회도 끼어든다. 평소보다 탄약 판매량이 2배로 늘어났다는 기사다. 총기 규제 직전 탄약 판매가 급증한 적은 있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늘어난 경우는 처음이란다. 그리고 놀라운 분석을 붙인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현명한 선택"이라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불안한 이유는 시민들을 보호해줄 울타리에 대한 불신이다 싶었다. 이 팬데믹 사태를 책임지는 보건부 장관은 제약회사 로비스트 출신이다. 그를 임명한 대통령은 중국 봉쇄에 이어 잠시 전 영국을 제외한 유럽인들의 미국 입국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 비상 상황에 골프를 치고 선거 유세를 이어가며 코로나 사태가 야당인 민주당의 음모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 민주당은 대통령이 내놓은 코로나 추경의 3배인 16조를 승인해 줬다. 


전염병은 그간 보지 못했던 미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알던,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미국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더욱 실감한다. 미국은 표면은 선진국이지만 자세히 보면 후진국이란 말을. 그래서 오늘 선언된 펜데믹 시국에 더욱 우리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다. "전염병은 투명성. 공개성 없이는 극복될 수 없다"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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