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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Jun 05. 2020

숨을 쉴 수 없는 미국  

티핑포인트, 조지 플로이드 

그가 마지막 숨질 때 했던 말은 '엄마'였다. "엄마, 엄마, 난 끝났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키 2미터의 거구인 그는 풋볼 선수를 했다. 식당 겸 나이트클럽에서 경비원으로 일했지만 팬더믹으로 문을 닫았다. 직장을 잃은 지 석 달째 되는 날 담배를 사고 지불한 20불 지폐가 가짜라고 신고돼 경찰이 출동한다.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에 의해 8분 46초 동안 목이 눌려져 숨을 거둘 때까지. 


조지 플로이드, 마흔여섯, 흑인 남자. 자신의 목을 누르는 경찰에게 여러 차례 숨이 막힌다고 애원했지만 무시됐다. 지켜보던 시민들의 항의도 무시됐다. 거구의 남자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엄마를 부르며 눈을 감았다.  앰뷸런스로 축 눌어진 남자를 옮겨 실은 건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난 후. 연행에서 죽음에 이른 순간은 상점 cctv와 길거리 시민들의 핸드폰에 그대로 녹화돼 세상 모두가 목격자가 됐다. 미국 경찰의 무소불위 공권력의 다음 순서가 자신일 수 있다는 공포와 분노가 미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다음은 나인가? 


이 사건이 발생하기 3주 전, 법정에 제출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 하나가 뉴스를 장식했다. 지난 2월 조지아에서 발생한 25살 흑인 청년이 사망한 당시 자신의 트럭을 보여주는 증거자료였다. 청년의 가족은 그가 평소처럼 조깅을 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인 백인 아버지와 아들은 청년을 절도 용의자로 생각해 총을 쏜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평소 백인 우월주의자로 의심을 받던 두 부자는 자신의 트럭에 우월주의자의 상징인 '남부군 국기'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한다. 그래서 당시 자신을 뒤따라오던 친구의 트럭에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한 것이다. 그러나 영상 속엔 남부군 국기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이 녹음돼 있었다. 운동복 차림의 비무장 흑인 청년은 트럭을 피해 조깅을 계속하려 했고 집요하게 청년을 쫓던 부자는 트럭에서 총을 쏘아 달리던 흑인을 쓰러뜨렸건 것. 

사망사고임에도 당시 2주 넘게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졌고 이 장면을 목격하고도 침묵했던 블랙박스의 주인도 공범으로 함께 구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커가던 중이었다.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하던 날, 뉴욕 경찰은 한 여성에게 신고 전화를 받았다. 

"자전거 헬멧을 쓰고 있는 흑인이 나와 내 개를 위협하고 있어. 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빨리 경찰을 보내줘." 


흥분한 여성이 지칭한 흑인은 맨해튼 센트럴파크 안 버드와칭 포인트에서 새를 관찰하던 크리스 쿠퍼라는 남성이었다. 그는 주변을 마구 뛰어다니는 개를 발견하고 개 주인에게 목줄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정중하고 합법적인 요구였다. 그러나 여성은 목줄 대신 경찰에 전화를 한다. 흑인 남성이 자신과 개를 위협한다며.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하는 여성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여성이 자신의 개의 목줄을 맬 때까지 그 과정을 녹화됐다. 그리고 경찰이 오기 전 자리를 떠난다. 그러나 오빠의 얘기를 들은 여동생이 자신의 SNS 계정에 그 영상을 올리면서 일파만파가 됐다. 흑인 남성에 대한 백인 여성의 편견과 거짓말에 개 학대 논란까지 보태져 백인 여성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 것. 프랭클린 템플턴이란 회사의 부사장이었던 여성은 문제가 된 다음 날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다. 2년 전 입양했던 그녀의 개도 입양기관이 다시 거두어 가기에 이른다. 해피앤딩 일 수 있는 센트럴파크의 사건은 리버럴하고 포용적인 뉴욕의 맨해튼 한복판에서 벌어져서 더욱 충격적이다. 그 흑인 남성이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트가 아니었다면,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센트럴파크 조류 관찰 모임의 모임의 보드멤버가 아니었다면 그도 앞의 다른 흑인 남자들과 같은 운명일 수 있었을 거라는 합리적 두려움이다. 


미국 땅에 살고 있는 흑인들이 받는 일상의 위협과 선입견은 오래된 인습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 후 그 정도는 더 심해지고


달라진 현상이 되고 있다. 그 전까진 절대 공공연히 인종차별적 언사를 할 수 없었기에. 


조지 플로이드의 억울한 죽음에 모두 분노하고 있다. 거기에 다음이 나일 수 있다는 공포가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다. 


그래서 거리에 나선 이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음은 나인가


팬더믹보다 더 공포스런 현실


흑인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한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유모차를 몰고 온 젊은 엄마도 있었고 골판지를 뒤집어 자신의 심정을 적어 온 젊은이들도 있었다. 다들 집에서 얼마나 슬프고 답답했을까 싶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인 1000여 명이 이웃들은 조용하지만 비장하게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했다. 팬더믹 와중에 이 정도의 사람들이 모이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사회의 현실에 분노했다. 


I can't breathe' 조지 플로이드가 절규했던 그 말이 특히 우리 동네에선 특히나 낯설지 않다. 그리 멀지 않은 뉴욕시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에릭 가너라는 흑인이 숨지기 전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2014년, 그러니까 6년 전 뉴욕서 죽어간 이와 2020년 미네소타에서 죽은 이가 같은 애원을 하다 죽은 거다. 에릭 가너는 거리에서 까치 담배를 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쓰러져 목이 눌려졌다. 숨울 쉬지 못하겠다는 말을 열 번 넘게 했지만 경찰의 제압은 계속됐고 결국 그 자리에서 숨진다. 그와 닮았던 딸을 버니 샌더스 대선 광고에서 보았었다. 한 해 후 그녀도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에닉 가너의 사망도 전국적인 추모와 분노가 일었음에도 경찰은 사건 발생 5년 만인 작년에야 비로소 파면됐다. 그동안 내근직으로 여전히 NYPD로 근무했다고 한다. 


통행금지와 전 세계적인 시위의 원인이 된 미네소타 경찰은 뉴욕과 달리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3일 오후,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였던 에이크 클로 버샤 상원의원이 트윗을 올린다. 조지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경관을 3급에서 2급 살인으로 격상한다는 발표와 나머지 3명의 경관들도 기소한다는 내용이다. 2급 살인의 경우 최대 40년형까지 가능하다. 그 발표에 덧붙여 그녀는 말했다. 이것은 정의를 향한 중요한 한걸음이라고. 여론이 그들의 범죄를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이다. 


한 주 전만 해도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였다. 100,000명이 사망했지만 그래프는 꺾일 줄 모른다. 하지만 인종차별이라는 더 큰 문제가 전염병을 앞도 한다. 더 큰 쓰나미로 팬더믹은 잠시 뉴스에서 가려졌다. 하지만 2주 후 더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다. 세계 최악의 의료보험과 세계 최악의 인종차별이 동시에 나타났다. 화산처럼 터져 나온 미국의 민 모습에 미국인들의 분노와 자괴감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정치는 부재를 넘어 사람들 감성에 휘발유를 뿌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시위의 배후를 극좌 '안티파'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시위의 진정한 배후는 분노하는 모든 이들이라는 것을. 누군가 말했다. 


"COVID-19와 인종차별-20, 백인들이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두 가지 치명적인 재앙이 현실이다."


그 '백인'들이 이 분노의 진정한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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