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었을까? 유난히 신경이 날카로워진 날이었다. 출근 시간대보다는 조금 낫지만, 여전히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안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서 있었다. 별 의미 없는 잡념을 하나씩 떼어내며 차분히 나를 가라앉히는 중이었다.
쿵!
무언가가 강하게 어깨를 밀쳤다. 내 안의 명상가는 삽시간에 달아나 버렸다.
‘무슨 일이지?’
주변을 살펴보니, 내가 서 있던 자리 앞 편에 빈 자리가 나 있었다.
'럭비 선수인가?'
누군가 승객들의 스크럼을 유유히 헤치며 달려 나오더니 빈 자리에 터치 다운했다. 꽤 멀리서부터 수비수들을 밀쳐내며 헤집고 들어온 듯하다. 주위의 사람들도 득점을 내어 준 탓인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터치 다운 히어로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헬멧을 벗자 중장년 여성임이 밝혀졌고, 럭비공은 이내 핸드백으로 변신해 있었다.
자리에 앉은 그는 자기가 밀쳐낸 사람들에게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듯 의기양양한 표정인 걸 보니, 득점에 성공한 건 확실하다.
아마 그도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똑같은 불쾌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밀쳐지며 살았기 때문에 ‘먼저 남을 밀쳐야’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했을 터. 그렇게 불쾌감은 다음 세대로 또 대물림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두어 역이나 지났을까? 그는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일어서더니 내릴 역을 놓쳤다고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고작 두 정류장을 가는 동안 앉기 위해 그렇게 밀쳐냈던 것이며, 그 후유증으로 정작 내려야 할 역에선 도착한 것도 모르고 지나치고 말았다. 그는 터치 다운에 성공했으나, 경기에서는 졌다.
사람들은 늘상 이런 식이다. 서로를 밀쳐내는 경쟁에 정신이 팔려 진짜 목적은 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