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포 세대’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현실이 녹록지 않은 청년들이 아예 ‘결혼을 포기’하고 산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신조어다.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기는 하나, 비혼율 증가 추세 자체를 ‘결포’로만 엮어버리면 내적 지향성에 따른 비혼 담론이 약화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적극적 선택에 의한 비혼에 대해서는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가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비혼’은 이해의 영역인 반면, ‘결포’는 동정의 영역이다. 같은 지향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그것을 선점한 자들이 포기한 자들에게 던지는 동정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관점일 뿐이다. 이해의 영역에서 담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사회는 요원하다고 본다.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 것은 물론이다.
경제적 사유로 인한 포기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에 의한 비혼은 아직도 사회적 논의의 중심 주제에서 비켜 있다. 더 나아가 결혼제도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특이한 이단아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 결합이 기성 가족 구성원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일까?
해외 일부 국가들에선 남녀 간의 일대일 결합 외에도 다른 형태의 가족 구성을 인정하는 제도가 존재한다. 동성 간의 결합,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독거노인과 반려인 등등 다양한 방식의 가족 구성을 인정하는 법이다. 남녀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동등하게 ‘한 가정’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함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신생아들의 절반 정도가 비혼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1960년대 말부터 권위주의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분위기가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제도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내가 처음 결혼제도에 대해 물음표를 떠올린 것은 고등학생 때였으나, 당시엔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자칫 패륜아처럼 비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소신을 막아섰었다. 이마저도 프랑스에 비하면 30년 가까이 늦은 담론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국내에서는 이제야 작은 움직임들이 일고 법적인 검토도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언제 입법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농경사회로부터 시작된 현재의 결혼제도에 맹목적으로 편입해야 하는 분위기는 미약하나마 변해가고 있다.
결혼이 반드시 한 가지 형태일 필요는 없다. 사적인 관계보다 좀 더 강한 결속, 혹은 느슨한 연대를 위한 결혼도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만일 결혼을 한다면 아내와 각방을 쓰는 라이프 스타일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정서적·경제적으로 연대하는 삶의 파트너이되, 개인의 생활공간은 적정 수준으로 분리하는 형태의 결혼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회사 동료였던 한 여성은 ‘아예 옆집에서 따로 거주하는 결혼’을 생각해 봤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게 무슨 결혼이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백 수천 년 동안 형성된 고전적 형태의 결혼 풍습에 사고의 범위도 갇혀버린 것인지 모른다. 결혼한 사람끼리는 잠이 들어 있을 때도 항상 ‘밀착’해야 한다는 강박적 관습이 스며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 성향이 조금은 독특한 편일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왜 커플이 되지 못해서 저렇게 안달이지?’라는 생각을 많이 가졌었다. 특히 대학생 때는 다들 커플이 되는 것이 지상 과제인 것처럼 보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도 솔로인 친구들은 패배자를 격려하듯이 서로에게 소주를 따라 주며 마음을 달랬다. 온전히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연애를 안 하는 게 왜 패배자인 것일까?
외롭기 때문에 연애하고 결혼을 한다는 얘기들도 많이 한다. 사실 내게는 솔로일 때나 커플일 때나 외로움의 강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연애 중에 외로움을 크게 느낀 적도 종종 있었다. 단순히 ‘옆에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느끼는 외로움과 자신의 존재와 세계가 위축되어 느끼는 외로움은 다른 성질의 것이니 말이다.
결혼에 대한 개인적 감흥은 이보다 훨씬 더했다. 결혼이 왜 인생의 당연한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학창시절 장기자랑 시간에 누가 발을 빼면 ‘노래를 못하면 장가(시집)를 못 가요’라는 주술적 가사를 합창하기도 했다. 그게 왜 저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건네는 축하 인사는 예의상 시늉에 가까운 적이 많았다. 모두 다 결혼을 축하하고 자랑하기에 마지못해 분위기에 맞춰야 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결혼을 왜 안 했는지’는 물어보면서 ‘결혼을 왜 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묻지 않는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결혼 빨리하셔야죠?’라는 말도 종종 건넨다.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말이지만 인사치레처럼 웃으며 받아쳐야 했다. 결혼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냥 한 번 갔다 올까? 그러면 사람들이 더는 결혼하라는 얘기 안 하겠지?’라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요즘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 이력서에는 ‘미혼/기혼’ 표기란도 존재했다. ‘미혼’이란 단어에 동그라미를 칠 때마다 내키지 않았다. ‘미혼(未婚)’이란 ‘아직 결혼하지 않음’이기에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압박을 내포한다. 15년여 전에 대체할 표현을 생각하다가 ‘비혼(非婚)’이란 표기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미혼’의 오타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다행히 언젠가부터 ‘비혼’이란 표현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오해는 줄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물론 아직은 소수에 속한다. 중요한 사실은 ‘비혼’이 ‘결혼 포기’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다. 포기한 것도 아니고, 아직 못 한 것도 아니며, 절대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닌, 단지 그냥 ‘안 한 상태’를 지칭하는 가치중립적인 단어일 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비혼자 중 상당수는 기존의 결혼제도가 아닌, 앞서 말한 느슨한 형태의 이성 간 결합을 비롯해 새로운 방식의 가족 결합을 탐색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의 결혼은 여전히 ‘양가(兩家)의 밀착된 결합’을 요구하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정형화된 결혼 풍습에서 벗어나고, 경제적 사유로 인한 결포 진단을 논외로 해야 비혼을 ‘비혼’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다. 그래야 서로가 대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