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보다 집단을 통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는 이들. 난 그들을 ’군집 속의 개체‘라고 칭한다. ’나‘에 대한 탐구와 고찰이 빈약하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려워 자아를 집단에 의탁하게 된다. 이렇게 표현하니 뭔가 특이한 사람들일 것 같지만, 사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이에 속한다.
그중 정도가 심한 이들은 사람을 만날 때 이런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실례지만 어느 학교 나왔어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솔직히 난 이런 사람들이 불편하다. 극단적으로 어떤 사람이 소속된 집단이나 출신 학교에 대해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다. 나의 관심사는 늘 개개인을 향한다. 상대방이 어느 직장을 다니든, 어떤 학교를 나왔든, 하등 관심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심한 것 아니냐’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졸업한 중고등학교나 대학교가 문을 닫는다고 해도 난 무심할 것이다. 그 시절의 친구들과 옛 추억을 나누며 교류하는 것은 의미 있지만, 잠시 함께 속했던 ‘학교법인’이 사라지는 것이 나와 친구들을 달라지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일면식이 없는 학교 동문이 출세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해도 ‘나’의 존재와는 연관성이 거의 없다. 그들과 나는 서로 다른 개개인일 뿐이다. 그래서 학교 동문이 유명인사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습게 느껴진다.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닐까? 예를 들어 동창이지만 말이 안 통하는 A라는 인물이 있고, 연고는 전혀 없지만 너무나 마음이 잘 통하는 B라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내게는 A보다 B가 훨씬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출신 학교를 따지며 선후배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파벌 문화가 강하다. 그리고 비록 자기 자신은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이들 조차, 이른바 ‘잘나가는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자랑스러워한다. 이것이 자아를 집단과 동일시하는 의탁이며, 그로 인해 파벌이 강화되고 집단이기주의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유독 동갑내기와 집단을 형성하려는 문화도 유사성이 있다. 또래 집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려는 습성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서로 동갑인 것을 확인하면 ‘우리 친구였네? 말 틉시다.‘와 같은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한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작 태어난 날짜가 가깝다는 사실에 마치 수 년을 알고 지낸 사람인 냥 훅 들어오는 이들. 많이 당황스럽다. 성격도 안 맞고 취향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부딪히는데, 동갑이라는 사실 때문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태어난 연도에 따라 선후배, 형과 아우를 칼로 자르듯 구분했던 탓이다. 나이가 같다는 사실은 ’친구‘가 될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열 살 스무 살 차이가 나더라도 서로 마음이 맞고 말이 잘 통하면, 그게 진짜 친구인 것이다.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자꾸만 나를 자신이 속한 어떤 집단으로 유도하는 이들이 있다. 혹은 나와 함께 어떤 집단을 형성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압박일 수도 있다. 집단에 자아를 의탁하지 않은 개개인들이 느슨하게 연결된 사회. 나는 그런 삶을 추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