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컬러 진단이 내게 말해준 것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난 파란색 옷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실제로 청바지 몇 벌을 제외하면 블루 계열의 옷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파란색 옷이 생겼더라도 한두 번 입으면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다. 파란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피부는 쿨톤인데, 왜 블루가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입는 옷들은 무채색으로 채워졌다. 블랙과 화이트 계열은 무난하기도 할뿐더러, 어지간해선 촌스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퍼스널 컬러 전문가인 지인에게 무료로 진단을 받게 되었다. 왜 파란색이 어울리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어쩌면 웜톤 피부인데, 여태까지 쿨톤으로 착각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도 품었다.
진단은 단순한 방법으로 진행됐지만, 색상 변화에 따른 피부톤의 변화는 상당히 드라마틱했다. 갖가지 색상의 천을 하나씩 넘길 뿐인데, 그때마다 혈색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물론 피부가 칙칙해 보이는 순간은 웜톤 색상을 덧대었을 때였다. 특히 나와 최악의 조합이라는 와인 색이 나왔을 때는 거울을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온갖 잡티가 두드러졌다.
자, 일단 쿨톤인 것은 재확인했다. 굳이 진단까지 하지 않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제 오늘의 핵심 주제인 ‘블루’를 테스트할 차례다. 나는 “분명히 파란색은 이상하게 안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인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파란색 천을 내 어깨에 대었다.
거울을 확인한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안에는 앞에서 테스트한 수십 가지 색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하고 밝은 피부톤을 가진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거죠?”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에게 지인은 차분하게 설명을 곁들였다.
“지금 이 색깔은 스카이블루예요. 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랍니다. 다만 너무 진하게 처리된 파란색이 안 어울릴 뿐이에요.”
그랬었다. 채도가 낮고 명도가 높은 파란색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남자 옷으로는 스카이블루가 흔치 않은 색깔이기도 하지만, 흰색이 아닐 바에야 오염에 강한 짙은 색을 골랐었으니 말이다. 남색이나 진청 계열의 옷을 몇 번 입어보고는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블루’ 전체를 등지고 말았던 것이다.
수천 개의 색깔 중에서 두세 가지만 걸러내면 충분했는데, 일종의 분석단위 오류로 인해 수십 종류의 블루와 거리를 두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최상의 퍼스널 컬러인 스카이블루를 십수 년 동안 외면했으니 패션 측면에서 어마어마한 기회비용을 상실한 것이다.
테이블에 펼쳐진 수백 개의 형형색색 천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미세한 명도와 채도 차이, 색온도와 색조, 거기에 천의 질감까지 더하면 색깔이란 수천수만 가지로도 분류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사유의 습관을 다시 점검해 보게 되었다. 색깔의 단위를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이상적인 컬러를 놓쳐버린 것처럼, 또 다른 영역에서는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와중에, 어떤 지인은 MBTI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거기엔 고작 16개의 유형이 있을 따름이다. 우리의 습관은 늘 이런 식이었기에 선입견에 쉽게 빠지고 만다. 고작 피부톤에 어울리는 색을 찾는데도 수백 개의 선택지가 존재하는데, 사람의 성향을 고작 16개의 유형으로 감히 규정하려고 달려든다. 4개의 혈액형으로 성격을 단순화하려던 시도와 비교하면 그나마 좀 낫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름을 붙인 색깔이 수백 개에 달하는 것이지, 명명할 수 없는 색상 수까지 헤아리자면 사실상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사람의 성향은 그보다 더하여, 각각의 개인들이 고유한 색상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비슷한 성향처럼 보이더라도, 그 명도와 채도는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이라면 인간의 성향도 80억 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잘 몇 개의 유형으로 사람을 규정하려고 애쓴다. 또한 한 두 사람의 일탈이나 단점 때문에,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전체를 매도하기도 한다.
단순화의 유혹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판단을 끝내면, 사람들을 파악하는 데 있어 에너지를 덜 쏟아도 되기 때문이다. 스카이블루와 네이비의 차이점을 따지기보다는 ‘블루’를 제거해 버리면 사유와 고민의 폭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패션 세계에서 블루 전체가 제거됐듯이,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특정 유형 전체가 제거될 것이다.
스카이블루를 바라보며 다시금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등졌던 어떤 무리들 속에, 최고의 이상형이 존재했었으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