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Love, Marriage & Divorce> 리뷰
한 번쯤은 기대했습니다.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의 공식 듀엣 활동을 말이죠. 영화 <Boomerang> 사운드트랙에서 최고의 궁합을 보였던 게 무려 20년 전의 일이네요. 그 선연함을 참 오래도 간직했습니다. 베이비페이스는 '90년대를 주름잡은 인물입니다. 마치 한겨울 틀에 찍어 성형된 붕어빵처럼 늘 알차고 고른 결과물을 대량으로 내놓았습니다. 풍매하는 민들레 꽃씨와 같았다고 해야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대중에 스며들어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알엔비(R&B)의 역사를 정의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그의 음악과 연대합니다. 매력적인 중저음을 지닌 토니 브랙스턴은 손꼽히는 그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뷔 시절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발했던 빛은 널리 고르게 퍼졌습니다. 제작자와 보컬리스트로, 레이블 '라페이스(LaFace)'를 대표하는 두 남녀는 그렇게 전설이 되었습니다.
1992년 에디 머피(Eddie Murphy) 주연의 영화 <Boomerang> 사운드트랙은 화려한 참여진으로 구성된 명반. 베이비페이스와 토니 브랙스턴의 "Give U My Heart"가 해당 앨범에 수록되었으며, 빌보드(Billboard) 차트 상위권에 자리매김했다.
▶ 감상하기
Babyface & Toni Braxton - Give You My Heart
그들이 '90년대에 정점을 찍으며 선명한 자화상을 남겼다면, '00년대로 들어서면서 점차 묽어지다가 최근에 이르러 무화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이젠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들 또한 가변적인 인간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별안간 그간의 사유와 정서를 무시하고 옛 영광을 회상하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미련이 남아 돌이킬 수 없는 흔적에 기대어오다가, 문득 그들의 재회 소식만으로도 설렌 이가 분명히 있을 거라 여깁니다. 본 앨범을 대하는 시각은 편파적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서 시작부터 기준을 정해놓고 출발했습니다. 얼마나 향수를 자극하느냐, 혹은 오롯이 복원하느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합니다.
사랑, 결혼, 이혼. 제목부터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인연'으로 엮인 일련의 행위들이죠. 두 사람에게 얼룩진 무늬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제목은 곧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베이비페이스는 트레이시 에드먼즈(Tracey Edmonds)와 결혼해 13년 만에 이혼했고, 토니 브랙스턴은 밴드 민트 컨디션(Mint Condition)의 구성원 케리 루이스(Keri Lewis)와 결혼 후 헤어졌다.
베이비페이스는 애초에 사랑밖에 몰랐습니다. 언제나 사랑을 전제로 자신의 감수성과 자의식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결락의 아픔으로 생긴 상처의 근원을 쫓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두 사람의 묵직한 태도가 더해집니다. 그래서 "Roller Coaster"의 진부한 노랫말로 운을 띄우는 까닭은 명확하고 자연스럽습니다.
"When love is like a roller coaster. Always up and down. When love takes over your emotions. Spins you round and round."
▶ 감상하기
Toni Braxton & Babyface - Roller Coaster
토니 브랙스턴은 오랜 갈증을 해소하듯 그 농도의 짙음을 더합니다. 특히, "Where Did We Go Wrong"에서 들려주는 여린 쇳소리가 도드라집니다. 세월이 빚은 그 낯섦이 나쁘지 않습니다. 희뿌연 수증기처럼 은은하게 뿜어진 서정이 아스라이 퍼집니다. 덕분에 귀가 눅눅해졌습니다. 더불어 갈급했던 "Breathe Again" 속의 애틋한 음성을 실제 다시 마주하니 청량감과 동시에 상념이 아득하게 물결집니다. 참 오랜만에 그녀가 비상했네요.
▶ 감상하기
Toni Braxton & Babyface - Where Did We Go Wrong?
"Breathe Again"은 토니 브랙스턴의 데뷔 앨범에 담긴 히트곡.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랭크됐고 자국 내 '골드(Gold/50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
▶ 감상하기
데뷔 시절 "Best Friend"로부터 느낀 적요함이 "I Wish"로 승계되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두 곡 모두 토니 브랙스턴의 창작물입니다.
데뷔 앨범에 담긴 "Best Friend"와 <Love, Marriage & Divorce>의 수록곡 "I Wish"는 모두 토니 브랙스턴이 작곡했다.
▶ 감상하기
본 앨범의 키워드는 '회귀'입니다. 그 시점은 정확히 '90년대를 가리킵니다. 감성을 농밀하게 엮는 베이비페이스 특유의 능력이 되살아났습니다. "Hurt You", "The D Word"의 구성진 음계와 "Where Did We Go Wrong"의 기타 선율이 확신을 줍니다. 긴 세월 아쉬움의 틈을 촘촘하게 메우니, 공백이란 게 있었는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프로듀서 대릴 시몬스(Daryl Simmons)는 참 반가운 이름입니다. 베이비페이스와 함께 '90년대 달곰한 발라드 제조기로 이름을 알리던 그가, 수록곡 "Reunited"에서 작정한 듯 특유의 작법으로 응수합니다.
대릴 시몬스(Daryl Simmons)는 레이블 '라페이스'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70년대 후반 그룹 맨차일드(Manchild) 시절부터 베이비페이스와 함께한 그는 베이비페이스처럼 달곰한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보이즈투멘(Boyz II Men)의 "End Of The Road", 쟈니 길(Johnny Gill)의 "My, My, My", 알리야(Aaliyah)의 "The One I Gave My Heart To" 등이 있다.
▶ 감상하기
Toni Braxton & Babyface - Reunited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본 앨범 <Love, Marriage, Divorce>가 단순히 '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고 해서 좋은 음반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베이비페이스 특유의 작법과 토니 브랙스턴의 소생,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이 앨범에 도취되기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알엔비 음악을 즐기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배타적 감성이 필요합니다. 상상해볼까요.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합니다. 먼 거리에 있는 상대를 확인하고자 눈을 찡그리고 초점을 잡습니다. 기대와 우려, 그 순간에도 당신은 만감이 교차할 겁니다. 그런데 반갑게도 오랜 세월 보지 못했던 지기(知己)가 서 있네요. 우려의 불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향수에 젖은 당신은 그를 향해 힘차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겁니다. 당신의 입가엔 이미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잔뜩 번지겠군요.
■ Album Info.
- Artist: Toni Braxton & Babyface
- Title: Love, Marriage & Divorce
- Label: Motown
■ Track List
01. Roller Coaster
02. Sweat
03. Hurt You
04. Where Did We Go Wrong?
05. I Hope That You're Okay
06. I Wish
07. Take It Back
08. Reunited
09. I'd Rather Be Broke
10. Heart Attack
11. The D Word
본 내용은 2014년 2월 13일자 리드머(http://board.rhythmer.net)에 개제된 내용을 각색한 글이며, 원작자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