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인터뷰]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딸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반올림이 문제제기를 하는 바람에 얼만큼인지는 모르지만 삼성 사업장이 조금은 더 안전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4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황상기 대표는 길었던 그 시간들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오전 그는 삼성전자와의 합의를 약속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삼성전자-반올림 제2차 조정 재개를 위한 중재방식 합의서’였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딸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지 11년 만이다. 유미씨의 죽음은 4년 전 법원에서 산업재해로 최종 인정됐다.
이날은 반올림이 서울 강남구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꼭 1022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거부하고 ‘자체 보상’을 강행한 삼성에 대한 ”억울함이 복받쳐서” 무작정 시작한 농성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반올림은 25일 저녁 문화제를 끝으로 이 농성장을 접기로 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싸움이 이렇게 끝을 맺게 됐다.
″돈 없고, 힘 없고, 가난한 노동자라 해서 작업 현장에서 화학약품에 의해서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를 10년이 넘도록 긴 시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섭섭한 일입니다.” 황 대표는 이날 합의서 서명식에서 결국 눈물을 훔쳤다. 집에서 손으로 직접 꾹꾹 눌러써 온 인사말을 읽어 내려가던 중이었다. 그는 삼성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 유미가 2005년 6월초에 백혈병에 걸렸으니까 거꾸로 계산하면 13년이 넘었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농성장에서 황 대표가 말했다. 속초에서 상고를 다니던 유미씨는 2003년 10월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기흥공장에서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담궜다가 빼는 작업을 했다. ”‘퐁당퐁당 작업’이라고도 하는” 그 작업이다. 누구도 이 작업에 쓰이는 화학물질이 위험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스무살이던 해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던 유미씨는 2007년 3월 황 대표가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유미씨와 같은 조에서 똑같은 작업을 하던 이숙영씨도 2006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2007년 11월20일, 반올림의 전신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삼성과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3년 동안 삼성 직업병 피해 제보가 반올림에 쏟아졌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질병이나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 ‘전 삼성전자 직원‘들이 수두룩했다. 삼성은 꿈쩍하지 않았다. ‘직업병이 아니라고 과학적으로 검증됐다’고 했다. 어떤 화학물질이 쓰였는지 알려달라는 요청은 완강히 거부했다. 삼성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에게는 힘이 있었다. 삼성 직업병을 다룬 영화가 개봉되는 등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법원에서 산업재해 인정 판결이 이어지자 삼성은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거액의 돈을 내밀었다. ‘소송을 취하하고 외부와 접촉하지 않는 조건’이라고 했다. 반올림은 재발방지 대책과 공식적인 사과 및 보상을 요구했다. 삼성은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주장을 언론에 뿌렸다. 거짓말이었다.
정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13년이 넘게 삼성이 문제를 질질 끄는 동안 삼성 사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노동자들이 암에 걸리고 죽고 한 숫자만 상당히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삼성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도 하지 않았고, 처벌도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럼 정부가 왜 있는지, 정부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안 물어볼래야 안 물어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변한 게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고, 황 대표는 생각한다. ‘그래도 13년 동안 조금씩 무언가 바뀌고 있다고 느꼈던 적이 혹시 있느냐’고 묻자 그가 꺼낸 말이다.
″제가 처음에 반올림을 만들고 뉴스에 나갈 때는 삼성 사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각종 암에 걸렸다는 제보가 상당히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삼성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렸다고 반올림에 제보가 들어오는 사람이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삼성 스스로가 얼만큼 신경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 조금은 신경을 썼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황 대표는 반올림 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었다고 했다. 그가 합의문 서명식에서 가장 가장 많이 했던 말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저는 (합의문 서명식) 인사말을 제가 집에서 써가지고 왔는데요. 그 인사말을 읽다가 보니까 우리 유미하고 약속했던 그 생각이 나서 막 눈물이 나서 울었는데요. 유미하고 약속을 지킨다는 그 생각도… 지켰다는 그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났고요. 또 한편에서는 이렇게 13년동안 길게 이어져오면서 반올림을 지원하는 모든 단체들... 여기서 뭐 어느 단체라고 하나 지명을 할수가 없습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그래요. 개인 분들, 또 법률가들, 노동단체 시민단체… 제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반올림을 여태까지 도와주셨기 때문에 반올림은 그 분들의 힘으로 오늘 그 합의서에 서명할 수 있었거든요. 그 분들의 너무 고마운 눈물도 거기에는 섞여 있었습니다.”
농성장 앞을 지나가던 시민들의 작은 응원도 큰 힘이 됐다. 보이지 않는 작은 마음들을, 그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농성장에 있다보면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어떤 분들은 지나가시다가 수고하신다, 고생하신다, 힘 내시라 그러고. 또 어떤 분은 여길 지나가시다가 고생하신다면서 빵 하나, 커피 하나, 과자 한 봉지 사갖고 오셔가지고 이거 드시라고, 힘드신데 이거 드시라고.
이렇게 해주시는 분들이 엄청난 반올림 식구들에게 힘이 되었고 그 분들의 힘이 오늘날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반올림은 그런 분들이 많이 모여서 결성된 단체라고 생각해도 저는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황 대표는 딸 유미씨를 화장해 설악산 울산바위 앞에 뿌렸다. ”거기 가면 바다도 보이고 울산바위도 정면으로 보여요. 유미는 반도체공장에서 지독한 화학약품 냄새를 맡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었잖아요. 그래서 화학약품 냄새 없는 곳에서 지내라고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 뿌려줬어요.” 지난해 한겨레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이제 그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 수 있게 됐다. 병의 원인을 찾아주겠다던 약속도 지켰고, ”여태까지 치료비가 없어서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고 가정이 파탄났던” 다른 피해자 가족들도 이제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희망도 생겼다.
무엇보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는 노동자가 ”좀 줄어들 거라는 그런 기대”도 해볼 수 있게 됐다. 황 대표는 이날 서명식 인사말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산업의학교수님들, 학생여러분들 독성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 노력해주셔서 삼성 직업병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반도체 공장을 포함하여 이 사회도 조금은 더 안전한 사회로 갈거라 생각합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 앞으로도 반올림은 독성화학물질 직업병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허완(허프포스트코리아 뉴스에디터), 사진 : 이윤섭(허프포스트코리아 비디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