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가설들이 제기됐다가 사라졌다.
1925년 4월18일 일본의 화물선 ‘리히후쿠마루호’가 함부르크로 향하던 중 버뮤다 섬 근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선원들의 시신은커녕 선체의 파편조차 찾지 못했다. 1945년 12월 5일에는 미 해군 폭격기 5대가 이 근방에서 행방불명됐다. 사라진 비행기를 찾기 위해 나선 다른 비행기들도 똑같이 사라졌다. 1973년엔 2만톤급 노르웨이 화물선 아니타호가 선원 32명과 함께 사라졌다.
‘버뮤다 삼각지대(Bermuda Triangle)’는 미국 남부에 위치한 플로리다 해협과 버뮤다섬, 푸에르토리코(혹은 아조레스 제도)를 잇는 삼각형 범위 안의 해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500년간 이 지역에서 일어난 선박과 항공기 실종 사고는 수백 건에 이른다.
수많은 가설들이 제기됐다가 사라졌다.
.외계인들이 연구를 위해 인간을 납치했다.
.일부 지자기성 폭풍이 조종사들의 항법 시스템을 교란시켰다.
.아틀란티스 대륙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자리이고, 당시 뛰어난 과학기술로 개발된 에너지 발생장치가 아직도 작동하고 있어 물체를 소멸시켰다.
.강한 소용돌이가 희생자들을 다른 차원으로 밀어넣었다.
최근 기존 가설 중 하나가 힘을 얻고 있다. 흉포한 파도 탓에 배들이 침몰했다는 가설이다. BBC 채널5는 최근 영국 과학자들과 함께 파도설을 포함해 여러 가설들을 검증한 3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영국 사우스 햄튼 대학의 기술자들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실종된 배들의 모형을 제작해 파도 실험을 했다. 거대한 파도가 모형 배를 덮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했더니 큰 배일수록 파도에 부딪히면 빠르게 가라앉았다. 거대한 파도가 일었을 때 배가 클수록 물 위에 떠 있기 힘들다는 점도 확인했다. 작은 배들은 파도를 뒤집어 쓰기도 하지만, 정면으로 파도를 맞아 타고 넘어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우스햄튼 대학의 해양학자이자 연구팀의 과학자 중 한명인 사이먼 박셀은 라이브 사이언스에 ”이 지역이 흉포한 파도가 발생할 경향성이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며 ”하지만 여러 폭풍이 몰려오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국립해양대기청에 따르면, 흉포한 파도(rogue wave)는 매우 가파르고 높다. ‘물로 만든 벽’(walls of water)이라고도 불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단 앞 바다도 이런 파도가 자주 생긴다. 남대서양과 인도양, 남극해의 폭풍이 일으킨 파도가 모이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박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앞 바다에서 수년 간 대형 컨테이너 선박과 유조선이 (버뮤다 삼각지대에서와) 비슷하게 실종됐다”고 말했다.
버뮤다 삼각지대도 멕시코, 적도, 대서양 먼 바다에서 폭풍이 만든 파도가 모여든다. 각각의 파도가 10m 높이에 이를 수 있다면, 이들이 만나 순식간에 30m 이상의 높이를 가진 파도가 될 수 있다.
자기 이상설에 대해 박셀은 ”그런 건 없다”고 단언했다. 자기 이상 지역이 없는 건 아니다. 지구의 맨틀이 지각 아래로 움직이는 지역에서 자기 이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기 이상 지역은 1600km 떨어진 브라질 해안가에 있다.
사건의 주범이 심해저의 메탄층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견해는 꽤 진지하게 검증됐다.
한겨레에 따르면 1998년 지구의 구조와 진화를 밝혀내기 위해 전세계 과학자들과 연구기관이 모여 심해굴착계획(Ocean Drilling Program, ODP)사업에 착수했는데, 버뮤다 심해저에 메탄하이드레이트 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지역의 하이드레이트 층이 갑자기 붕괴된다면 가스가 포함된 저밀도의 진흙이 분출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물의 밀도가 낮아져 배가 침몰할 수도 있다고 한다.
2010년 8월 호주 멜버른에 있는 모내시 대학의 조세프 모니건 교수는 ‘미국물리학저널’에 버뮤다 삼각지대의 선박·항공기 실종 원인은 메탄가스로 인한 자연현상 때문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해저의 갈라진 틈에서 거대한 메탄거품이 대량으로 발생하면, 선박이 부력을 잃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고 주장했다.
항공기 실종에 대해서도 메탄거품의 크기와 밀도가 충분히 크다면,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가 하늘에 떠 있는 항공기를 덮칠 수 있고, 항공기는 엔진에 불이 붙어 추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살은 메탄거품설도 부인했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어떠한 실험도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메탄거품이 생길 수 있는 장소는 이곳 말고도 많다”고 말했다.
보살은 이 지역 실종 사건의 대부분이 인간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이름이 생긴 계기가 된 ’1945년 미 해군 폭격기 실종 사건’에 대해 ”아마 승무원들이 길을 잃었고, (헤매다)연료가 떨어져 추락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보살은 ”미국 개인 소유 선박의 약 3분의 1이 버뮤다 삼각 지대의 주와 섬에 있다. 2016년 해양경찰청 자료를 보면 이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의 82%가 정식 훈련을 받지 않았거나 바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관련된 사고다”라고 말했다.
″미국 전체 보트 이용 인구의 3분의 1을 버뮤다 삼각 지대에 버리는 거죠. 그리고는 ‘미스터리한 실종’이라고 부릅니다.”(사이먼 박셀, 라이브 사이언스)
보살은 ”이곳에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데 허가증이나 라디오 또는 내비게이션 지도와 같은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며 ”바다에서 일하는 동안 도로용 지도로 길을 찾는 사람들과 종종 마주쳤다. 의사소통 수단으로 휴대전화를 쓰더라. 바다로 30마일(48km)만 나가면 신호가 잡히지 않는데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버뮤다 삼각지대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흉포한 파도는 다른 장소에도 많다. 메탄거품도 마찬가지다. 경험 없는 아마추어들의 항해를 열심히 좇다보면, 불가사의한 실종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사이먼 박셀, 라이브 사이언스)
글 : 김원철(허프포스트코리아 뉴스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