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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프포스트코리아 Jul 27. 2018

노회찬 의원이 21년 전에 쓴 베스트셀러를 읽어봤다

이미 절판된 책을 중고서점에서 찾았다.

노회찬 의원이 7월 23일 사망한 후,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은 그가 남긴 어록과 영상을 다시 찾아보고 있다. 노회찬 의원이 정계에 입문해 지금까지 활동하며 남겼던 기록을 되돌아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가운데 노회찬 의원에 대한 뜻밖의 이력을 발견한 사례도 있다. 노동운동가였던 그가 한때 ‘매일노동뉴스’란 매체를 창간한 언론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책의 작가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23일, ‘노컷뉴스’는 과거에 보도된 내용을 통해 지난 1997년 4월, 당시 노회찬 작가가 쓴 책이 ‘인문분야’ 베스트셀러 9위에 오른 바 있다고 전했다. 당시 10위안의 책들 중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도 있었다.


1958년생인 노회찬 의원은 1997년, 만으로 38세였다. 당시’매일노동뉴스’의 발행인이었던 그는 어떤 내용의 책을 쓴 걸까? 노동문제 혹은 정치와 사회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목은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 제목의 분위기에서 알 수 있듯이 딱딱한 역사교양서도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가운데 대중들이 호기심을 느낄만한 내용들을 뽑아서 정리한 것이다.

“세종 대왕의 두 번째 며느리는 레즈비언이었다”거나 “연산군은 이동식 러브호텔을 만들었다”거나, “38명의 고관을 정부로 삼았던 어느 관료의 딸 이야기”라던가, 야사와 정사의 사이에 걸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조선시대 임금이 선물로 받은 코끼리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임진왜란 때 흑인 병사가 참전했다는 기록을 파헤치기도 했다. 21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알려진 내용도 있지만, 21년 전인 그때는 상당히 신선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38세의 노회찬 작가는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히 설명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한국 노동 정책 정보 센터’ 대표로 있으며, ‘매일 노동 뉴스’ 발행인으로 있다.”

책 머리말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왕조실록’은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략.... 오늘날 대통령은 조선시대의 왕보다 권한이 더 작고 재임기간도 더 짧다. 그래서 정권도 몇 차례 바뀌었지만, 우리에겐 실록도 없고 사관도 없다. 말하자면 이 시대에는 블랙박스가 없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리니 의혹이니 특별 검사제 도입이니 하는 소리가 높다. 또한 청문회가 열리고 전직 대통령이 구속까지 되는 사태가 일어나지만, 진실이 밝혀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혼란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블랙 박스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 중략...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고 사초를 작성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는 비리니 국정조사니 하여 사회전체가 떠들썩해지는 혼란을 피하고 차분히 진실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관이 지키고 서 있다면, 의혹을 살 일은 처음부터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역대 정치사의 많은 잘못들은, 국민은 물론 역사마저도 속일 수 있다는 만용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이 과거에 쓴 책은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만이 아니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 ‘한겨레’와 나눈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노동자의 길’, ’87,88 정치위기와 노동운동’, ‘노동자와 노동절’이란 책도 섰다. 이 인터뷰에서 그가 한 이야기는 책의 머리말과 통하는 내용이지만, 동시에 전직 대통령 2명이 감옥에 있는 현재와도 통한다.

“전직 대통령 2명이 감옥에 있고, 현직 대통령이 ‘한보사태’의 회오리 속에 태풍의 눈처럼 도사리고 앉았지만, 우리는 계속 의혹과 혼란에 파묻혀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고 있다....중략.... 엄정하고 투명한 역사기록의 정신 앞에서는 그 어떤 권력도 힘을 잃었다.”

현재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은 절판된 상태다. 절판된 책을 찾은 곳은 한 온라인서점이 운영하는 중고서점매장이었다. 21년 후인 지금 다시 출판되어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을 듯 보인다.


글: 강병진 허프포스트코리아 뉴스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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