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학교’에 진심입니다

[7년 세계일주 #13] 네팔 여행 ep. 2

by 시크seek

[7년 세계일주 #13] 네팔 여행 ep.2 ‘방과 후 학교’에 진심입니다


카트만두를 가로지르는 성스러운 강 바그마티(Bagmati)는 네팔인들에게 영적 안식처다. 살아생전엔 정결하게 몸을 씻고, 죽어서는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에서 노천 화장 의식(나하 서스칼)을 통해 이곳에 재로 뿌려지길 원한다. 윤회의 고리를 끊고, 영생의 길로 인도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상과 작별하는 이는 24시간 내에 물을 만나야 한다’는 힌두교 신앙은 항구적 낙원을 약속한 바그마티강을 더욱 신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 주변으로 삶의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고단한 영혼들을 품고 있는 이 강은 우울한 잿빛으로 물들어 있다. 난개발로 인해 각종 쓰레기와 침출수 그리고 오물 등이 한꺼번에 뒤섞여 흘러 그들이 생과 사의 근원처로 삼던 바그마티강은 이제 코를 막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가야 할 만큼 오염되어 있었다. 개도국으로서 시대정신이 개발 프레임에 더 우호적이기에 환경 보호는 뒷전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다. 인간의 존엄성마저 보장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네팔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바그마티강 가로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타파탈리' 빈민촌을 알게 된 것이다. 300여 가구가 말 그대로 폐자재로 움막을 짓고 살아가는 이곳은 정부에 의해 철거당해야만 했던 아픔이 있다. 욕망조차 거세당한 듯 이런 처사에도 인권투쟁은커녕 군말 한 번 하지 않은 이들은 시간을 두고 하나둘 다시 모여들었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온기를 의지하며 다시 부락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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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탈리 빈민촌에서 만난 이들.

한 남자를 만났다. 홀로 다니는 낯선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그는 자신의 집으로 안내하며 멋쩍게 미소 짓는다. 그러다 전기조차 끌어 쓸 수 없어 밤이면 추위와 어둠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매일 동이 트자마자 강 너머 번잡한 도심에 품을 팔러 아기 볼에 입맞춤하고 출근한단다. 가족을 위해서는 감히 아파서도 안 되는 곤죽이 된 운명을 온몸으로 부딪치고 있다. 그는 내게 튀긴 모모(네팔식 만두)를 건네며 ‘언젠가는 볕 들 날이 오지 않겠냐’는 아주 작은 기적을 노래했고, 나는 그에게 있어서만큼은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인생 역전 클리셰가 수명을 다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긍휼의 마음으로 다가선 걸음인데 이 마음이 얼마나 어쭙잖았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황량한 강바람이 뺨을 훑고 가는 타파탈리 움막촌은 세상의 기억으로부터 소실되어 버린 이들의 음침한 수용소 같다. 그러나 이곳의 반전은 마을 끝, 파란 천막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자의 집에서 나와 발걸음을 돌리자 곧 ‘방과 후 학교’가 나왔다. 사교육은 물론 공교육의 혜택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공부하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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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탈리 빈민촌 방과 후 학교.

이곳에 가슴 뛰는 꿈이 있다. 콧등 시린 감동이 있다. 오후가 되면 교육 혜택이 부실한 50여 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망울로 천막에 모여든다. 강제적인 것도, 특별한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다. 이곳에선 가난하다고 소외당하고, 열등감을 느끼며, 멸시받을 일이 없다. 존재적 환대의 가치가 깊이 서려 있다. 서로를 소중히 아끼는 마음이 그득하다. 어쩌면 이 아이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건 가난이 아닌 가난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아닐까.


아이들 속에 제법 몸집이 커 보이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다. 중학생들이다. 이들은 선배들이 따로 지도한다. 가르치는 이나 배우는 이의 태도가 자못 진지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초라한 움막촌에 임시로 세운 방과 후 학교지만, 이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머리 위에 신의 은총 가득한 하늘빛이 임하기를 바라며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 그들의 삶의 무게를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다만 환경에 굴하지 않는 열정에 찬사를 보낼 뿐이다.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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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열심이 아이들. 외부 봉사단체들과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지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안나푸르나 서킷+ABC 트레킹’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20일, 짧지 않은 여정이다. 기왕 도전하는 것 ‘젊음과 열정만으로 성공할 순 없지만, 젊음과 열정이 있기에 포기할 수 없다’는 심장에 아로새긴 젊은 날의 신념을 이루고자 스케일을 키웠다. 설악산 아니 관악산 한 번 올라간 적 없는 나다. 그러나 가슴속에 원대한 꿈을 꾼다. 5416m는 인생의 지계석을 옮기는 경험이 될 것이다. 잊고 지낸 소중한 것을 다시 심장에 아로새기는 여정이 될 거란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여기에 덧대 트레킹이 끝난 후 어떻게 이곳 아이들의 마음을 안아 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일주일 후, 동생이 카트만두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 보이는 녀석의 실루엣만큼이나 챙겨 온 오징어 젓갈 두 통과 라면 한 박스가 반갑기 그지없다. 히말라야에서 생존 식량이다. 카트만두 숙소에 여장을 푼 뒤 다음 날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방과 후 학교 방문이었다. 동생 역시 이곳 아이들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매력에 마음을 뺏긴 눈치다.


“어때? 히말라야를 그냥 오르기보단 뭔가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근데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그러게, 고민해 보자. 분명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두 남자는 한동안 말없이 아이들을 바라봤다. 경쟁 사회에 치인 영혼은 어쩌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방법을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그 실마리를 잡기 위해 조금 더 세심해지기로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손해 보기는 싫다며, 조금 비겁해도 이기적이어야 편해지는 거라며 바둥대던 날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건조하게 셈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멋진 호흡과 프로젝트를 완성해내는 성취야말로 나를 발견해가는 짜릿한 감동이자 삶을 추동하는 행복 아닐까.


별것 아니다. 다만 우리 두 사람의 진심과 최선을 담아보기로 한다. 우선 20일 동안의 트레킹과 10일 동안의 포카라 및 카트만두 여행에서 경비를 최대한 아끼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텐트에서 자며, 할 수 있는 한 라면을 먹는다. 몇 곳에 글을 써서 받는 원고료를 더하고, 그렇게 모은 작은 마음으로 방과 후 학교에 위생용품과 학용품을 기부하는 것이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실행할 일만 남았다. 풍찬노숙은 나의 특기다. 세계 일주 때 광야에서 경험한 날 것 그대로의 고생은 바로 이 순간의 도전을 위한 최적의 복선이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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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그린 아이들의 솜씨. 한쪽에서는 기타를 배우는 아이도 있었다.

며칠 동안 네팔 현지 적응을 마친 뒤, 카트만두 시내에서 트레킹을 위한 몇 가지 등산용품을 구입해 얼추 구색을 갖췄다. 꼼꼼하지 못한 걸 아마추어란 핑계로 넘어갈 수 없는 동네다. 그러나 완벽한 준비를 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해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충족하고, 남은 충분조건은 열정으로 채우기로 한다. 부족함 속에서도 꿈을 찾는 것, 나의 낭만은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카트만두를 떠나기 전날, 방과 후 학교 교사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녀와서 꼭 다시 방문할게요. 이곳은 저를 성찰하게 하고, 제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곳입니다.”

“우리도 히말라야를 가 본 적이 없어요. 몸 건강히 다녀오길 바랍니다. 신이 당신들을 축복할 겁니다.”


이상한 일이다. 바그마티강은 여전히 오·폐수로 인해 여기저기 거품이 일었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그런데도 자꾸 오고 싶어지는 마음이 차올랐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주소지가 불분명한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고, 움막촌은 곧 어둠 속으로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다시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 마음은 이미 히말라야 하늘길을 걷고 있었다. 다짐만은 고(故) 박영석, 엄홍길 대원 못지않다.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호기심에 하나 챙긴 비닐 우유의 맛이 생각보다 고소했다.


* 오래전, 동생과 함께한 네팔 여행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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