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세계일주 #12] 네팔 여행 ep. 1
[네팔 여행 ep.1] 당신은 도전하게 되어 있다
“인생이 투쟁이며 모험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여러분이 느끼는 냉소와 절망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아주 많다. 이해한다. 하지만 여러분이 겪을 어려움과 좌절이 여러분을 멈춰 세우는 핑곗거리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쉬운 것을 보고 감탄하거나 고귀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인생 최고의 순간은 진정으로 어려운 도전을 이겨냈을 때다.” - 조던 피터슨 인터뷰 中 (중앙SUNDAY 2019.02.09.)
3월의 새벽은 아직 차다. 푸르스름한 빛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새소리가 단잠을 깨운 게 얼마 만이었더라. 이불속에서 더 미적대고 싶다는 생각이 언뜻 스친다. 그동안 100여 나라에 걸친 치열한 모험을 감행해 왔다. 게다가 바로 전 여행한 이란에서 꿈만 같은 추억들을 만들며 원 없이 사막을 헤집고 다녔다. 이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가 지척에 있는 네팔에 왔으니 그 경치 감상하며 간섭 없는 쉼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설핏 잠이 깨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아차, 여긴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다. 시원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자 순간 잠 기운이 싹 달아난다. 온수 샤워 대신 고양이 세수를 하고, 패딩 대신 대충 츄리닝을 걸쳐 입고선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하이퍼 문명사회를 이탈해 흙길을 걷는 자유로움이 내 것이란 사실이 자못 감격스럽다. 한국에서는 무엇 하나 내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통과 의례로 점철된 사회화를 거쳐야만 비로소 자유로운 기분을 잠시 누릴 수 있는 시간제 쿠폰을 발행받는 것만 같았다. 이곳은 다르다. 도피처가 아닌 재생산 기지로서 심신을 이완시켜준다. 익숙했던 자리의 해석들을 떨쳐내고, 새롭게 읽히게 한다. 좁은 비포장길을 달리는 오토바이와 사이클 릭샤, 낡은 자동차들의 얽힌 행렬 속, 소음과 먼지가 묘하게 감상적인 운치를 더한 것도 그렇다. 제법 산화된 기름에 튀긴 모모(네팔식 만두)와 도넛 그리고 찌아(밀크티) 한 잔의 여유는 아침 동네 마실의 동기부여가 된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뭐할까. 딱히 계획은 없다. 그렇지만 운명은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이곳에선 ‘신들의 성지’로 일컫는 히말라야를 배제한 그 어떤 상상도 할 수 없다. 히말라야를 가지 않을 순 있지만,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네팔 여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포카라에서 정적 휴양을 즐기려는 계산은 그렇게 히말라야의 사진을 보는 순간 ‘어디 한 번 사서 고생해볼까’ 동적 도전으로 전환된다. 열정은 항상 그렇다. 부딪혀 보기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다. 아직 등산 장비 하나 없는데, 어디선가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갑자기 히말라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라인홀트 메스너를 나는 잘 모른다. 찾아보니 그가 인류 최초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의 신화를 썼다고 한다. 산악계의 전설로 통하는 게 이해 간다. 그가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 미래를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내가 가진 관점이다. 도전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많은 책임감을 불어주며, 동시에 많은 삶의 기쁨을 안겨준다. 특히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준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 향후 10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그때 나는 그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미지의 영역에 도전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결심이 섰다. 그래,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지금, 저 산 한번 올라가 보자.
혼자 도전하기엔 뭔가 허전하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그 순간이 그리워질 때, 함께한 시간을 얘기할 수 있는 메이트가 필요했다. 낯선 이와 호흡을 맞춰 동행하기엔 준비할 시간이 짧았다. 게다가 코스를 짜 보니 20여 일이 나오는 게 아닌가. 과감한 투자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직을 위해 잠시 일을 쉬고 있는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야, 너, 형이랑 같이 히말라야 올라가 보지 않을래?”
“갑자기? 형 혼자 잘 다녀와. 이직이랑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빠. 난 미국 여행한 걸로 됐어. 그리고 여행 체질도 아니야. 관심 없어.”
“음…. 왕복 비행기 표랑 네팔 여행경비 전부 대줄게.”
“아이 참, 언제까지 가면 돼? 뭐뭐 준비해야 하지? 배낭 하나 새로 사야겠네.”
<히말라야 도서관>의 저자 존 우드가 비영리단체 ‘룸 투 리드(Room to Read)’ 재단을 설립해 히말라야 곳곳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꿈에 도전하려는 많은 사람들을 동기부여시킨 영감을 준 곳, 데이비드 플랫 목사가 그의 저서 <복음이 울다>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비참한 사건들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에 참여하고,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묵상을 심장에 아로새긴 곳, 바로 그 히말라야에 동생을 끌어들이고 있다. 놀랍게도 생애 첫 형제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 오래전, 동생과 함께한 네팔 여행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