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것은 기술일까, 노력일까.
기분도 우중충한 하루, 책 한 권 사러 갔다기보다 광화문 교보 인근에 맡겨둔 사진 현상 때문에 나가다. 간밤의 격앙된 대화 탓인지 자고 또 잤다. 오후 5시. 그랬다. 몸은 무겁고 발걸음은 아직 풀리지 않은 엉덩이 근육, 이상근과 소둔근 통증 탓에 자연스럽게 걷지는 못한다. 아무튼.
사진을 찾고 떨리는 마음으로 현상된 결과물을 보니 대체로 실패다. 아마도 디지털카메라를 조작하던 습관 탓인지 미세하게 떨린 사진과 노출이 적절하지 않은 사진, 가뭄에 콩 나듯 "그래, 이 정도면..."하는 사진. 스캔하고 내친김에 필름 하나 더 챙겼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는 지쳐있는 내게 어떤 보상을 해줘야겠다는 생래적 의무감에 빠졌다. 초콜릿 팩토리, 최근 이 곳을 자주 들른다. 이유는 단 하나다. 커피보다는 초콜릿이 좋기 때문에, 커피보다는 1,000원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다. 귀퉁이에 자리한 위치 탓인지, 사람도 꽤 적다.(사람이 적어서 내게는 좋지만 그 업주는 돈이 많은가...)
당분이 머리로 빨려 들어가면서 내 눈의 동공은 역시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렇다. 힘을 얻은 것이다. 깔끔한 카페를 보면서 문득 스친 생각은, 오늘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역시 문고에서 '책'을 읽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라는 결론. 수습? 정론지 기자도 아니며 가상의 공간에 만들어둔 닉네임 탓인지 읽고 생각하는 것은 꽤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내게 읽는다는 것은 생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도심의 문화에서 평생을 살아온 토박이들은 알 길이 없는 지적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부족함, 실제로 현재 내가 또래 '개저씨'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 아님은 잘 알지만 시골 촌놈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켜켜이 쌓여버려서 쉽사리 털어내기 어려운 그런 억압이기도 하다. 쉽게 말하면, 살아남기 위해서 읽는다. 분명 내가 가진 문해력 고군분투기도 조만간 써 내려갈 것 같다만, 아마 그것은 차마 공개하기도 뭣한 부끄러운 기억이기도 하며 동시에 뿌듯한 자존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핸들을 다시 부여잡고 정주행을 해보자.
오늘 구입한 책은 저기 보이는 흑백 사진 속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는 정리에 관한 책이다. 책 제목이 섹시한가? 잘 모르겠다. 적어도 한 눈에 들어오기는 했다. 얼마나 더럽게 살았으면 저런 제목을 뽑을 재간이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책 내용, 거론되는 정리 전문가들은 생각보다 더럽게 살진 않았더라.
1시간 남짓, 쉽게 정리된 책은 잘 읽혔다.
청소, 대개 대한민국 남성은 청소를 안 한다. 아! 물론, 남성이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하는 기간은 있긴 하다. 그것은 성적으로 끊지 않는 유일한 대학, 군대라고... 그렇지. 군대에서 계급을 막론하고 청소를 한다. 병장은 눈으로 청소를 하긴 한다만, 나름 그것도 청소에 없어서는 안될 영역이긴 하다. 그래. 그렇다고 해주자. 지적이 없다면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논리 아래서 말이다.
나름 군대에서 청소를 잘 하는 사병에 속했다. 군복도 아주 깔끔하게 다려서 입기도 했으며 군화도 물광을 내고 다닐 정도였으니. 그러면 뭣 하나. 평생을 청소하지 않고 할머니며 어머니며 하루가 멀다 하고 먼지를 걷어내주셨으니 고작 2년의 세월 가지고서 평생의 습성이 바뀔리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으면 당신의 방을 즉석에서 담아 온라인으로 퍼 날라 보라. 타인의 평가는 원래 냉정하니까.
정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깊이 있게 느낀다. 그러니까 이게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는 이야기다. 주변을 봐도 이성 친구들은 대단하다. 혼자 힘으로 육아를 하면서도 그 힘든 집안의 온 먼지며 갖은 곰팡이를 '올 킬'하고도 저녁에 가족을 위해서 밥을 차린다. 물론 돈 많이 버는 이성 친구의 경우는 이른바 '청소 아줌마'를 부른다. 참 편한 인생이다.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그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덜 쓰고 나머지 부분에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일 하고 논다. 자신이 그만큼 벌어서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데 볼썽사납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아무튼.
예전에는 몰랐는데 거의 두 달 간 허리가 아파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면서 나 또한 우울해지기 시작하더라. 나름 내놓은 대안은 내가 먼저 하자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것이 그렇다. "너 이거 왜 안 하니?"라는 말은 결코 좋은 대화로 가지 않는다. "내가 피곤하니까 덜 피곤한 네가 청소해"라는 말도 썩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못한다. "내가 돈을 벌어오니까 할 일이 없는 네가 살림을 담당하는 것이 옳지 않니"라는 말도 결과는 뻔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야! 내가 더러운거 정말 싫어하는 것 알잖아?"라는 말은 최악이다. 달리 말하면, 너는 왜 나를 존중하지도 않고 배려도 하지 않냐는 말이긴 한데, 문제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 발상이다. 쟁반이나 밥그릇이 날아다닐 집안도 있을 것이고, 육두문자 써가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상대에게 퍼부으며 쾌감을 느끼는 가정에서부터 각양각색일 것 같다.
요즘 내가 깨닫는 것은,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내가 가진 그동안의 선입견을 털어내다보니 남자가 되어서 밥을 하고 반찬을 사고 내 밥은 내가 해서 먹는다는 것 외에는 뭐가 좋은 행동을 했나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친김에 내가 더 꼼꼼하니까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서로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때로는 빈약한 감정으로 근근이 가정을 유지하는 커플일 경우에는 최선이라는 것이 어떤 판단을 내리는데 객관적인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하여 스스로 최선을 다하되 상대에게 내 생각을 폭력적으로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세상, 부부의 룰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청소 책 사진을 올려놓고서 이게 뭣 하는 짓인가.
"정리하기를 좋아한다면 방은 깨끗해진다. 그러나 정리하기를 싫어하면서 집안이 정돈되기를 바라고 안락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중얼거려 보면 의미가 달고도 달다. 내가 그랬다. 왜 더럽지. 왜 안 치우지. 못 살 것 같은데. 이런 말이 쉬지 않고 나왔지만 이 문장을 읽으면서 작은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나도 뭔가 해야겠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정리 전문가의 말은 이렇다.
1. 부부가 물건에 대한 애정은 다름을 원칙으로, 상대의 물건 애착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로 싸움의 근원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동물이니까.
2. 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면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고민해서 지속적으로 버리려고 노력하라.
3. 고민되는 물건이 있으면 내 가슴이 떨리는지 아닌지 되돌아보라. 울림이 적다면 '애정'이 사라진 것이다. 단, 기준을 적어도 '1년'의 주기로 생각하라. 달리 말하면,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버리라는 말.
4. 물건을 좋아하는 정도와 물건의 '양'은 절대로 비례하지 않는다, 이 말은 10명의 전문가의 공통된 주장이어서 계속 곱씹어 보기로 하자.
5. 수납장과 수납함을 과신하지 마라. 수납은 일종의 마술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면 나중에 찾지도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니까 정돈이 아니라 '저장'이 되는 것이다.(해석 보소... 크으...)
6. 바닥에 물건을 놓지 마라. 청소하는 시간이 배로 늘어난다. (이 부분은 정말 정말 그렇다. 밀고 제치고 허리 나갈 위험이 있다)
7. 주방, 싱크대는 수납공간으로 넣어 시각적으로 말끔하게 하라. 천연세제를 이용하여 환경오염도 걱정하자.
8. 추억이 담긴 물품은 수납함에 넣어서 옷장이나 별도의 공간에 둔다.(자주 볼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유)
9. 집이 정리가 되고 깨끗해지면 '금전운'이 오른다.(어느 전문가는 실제로 그렇다고 했다. 아마도 안락함이 남편의 업무 효율을 올린 주된 이유라고 생각해 본다)
10. 정말로 소중한 것은 의외로 적다.
11. 정리를 하는 사람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책의 사례 주인공은 하나 같이 남편이나 아내에게 정리하라고, 왜 버리지 않냐고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가슴에 새겨야 할 부분이다)
12. 지친 마음과 내일을 준비할 에너지는 집이라는 공간이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 잘 자면 모든 일이 수월해진다.(틀린 말이 아니다)
책을 다 읽고서 먼저 볼펜과 형광펜 같은 문구류를 정리했다. 고아원이나 관련 시설에 아직도 멀쩡한 필기류를 보내려고 한다. 새 것도 있다. 무한도전 마크가 들어간 빈 노트도 있다. 책들도 선별해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휴지통으로 보내고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것보다 백배 천배 더 나은 길이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버리는 일이 즐거울, 즐거운 일이 되어버린 셈이다. 책이 주는 효용이 이런 것이지만, 역시 내가 절박하고 변하려고 마음먹을 때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오늘의 교훈이기도 하다.
+ 일본 정리 전문가, 구라타 마키코의 블로그 소개하고 이만 줄이기로 한다.
http://kurashimania.blog.fc2.com
눈으로 즐겁고 어떤 동기부여의 힘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