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결혼생활

엄마한테 화를 냈다.

by 허솔레미욤

임신 소식을 양가 어른들께 전하니, 양가 어른들은 서로 전화하여 축하 인사를 나누었다.

축하 인사를 나눈 후, 엄마가 시어머니께 '아들이면 좋겠네요'라고 했다.

이유인 즉슨, 아주버님 네는 딸이 하나있으며 둘째는 갖지 않을 생각이신데, 할머니께서는 아들을 기다리실 것 같으니, 내가 아들을 낳아 할머니와 어머님 아버님을 기쁘게 해드렸으면 좋겠다는 뜻의 이야기였다.

시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요즘은 아들 딸 상관 없으며 현재 하나뿐인 손녀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딸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으니 그런 생각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셨다.


시어머니께서 전화 통화 내용을 내게 전하며, 스트레스 같은건 갖지 말고 성별 구별 없이 건강하게만 출산하라 하셨다.


어머님과 통화를 마친 후 바로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가 왜 시어머니께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마음은 이해 하지만, 그런 말은 이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 나는 대를 이어주기 위해 시집을 가서 애기를 가진 것이 아니야."라며 모진말까지 하면서.


그리고 몇주가 지난 오늘

"밥은 잘 먹어? 건강은 괜찮고?"라는 엄마의 질문에 "응 밥 잘 먹고, 요즘 많이 좋아졌어"라고 하니, "효녀네~ 효자야~"라고 하셨다.

"성별은 모르지만, 효도하고 있어"라고 하자 "효자였으면 좋겠네~"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또다시 발끈했다.


내가 그런말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도대체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냐고 하자

"엄마도 널 위해선 딸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근데 그 집안에 아들이 있어야~ 할머니도 좋아하시고..."라고 하는데, 너무나 서운해서 감정이 폭발했다.

내가 예쁨 받았으면 좋겠는 엄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나, 딸가진 부모로 항상 저자세인 게 너무나 속상하고 마음이 쓰인다. 아니 서운하고 기분이 나쁘다.


"내가 무슨 아들 낳아 대 이어주러 시집 왓어? 나는 성별이 뭐든 상관 없다고 했잖아. 내가 그런 말 싫다고 했잖아. 왜 자꾸 하는건데"라며 쏴댔다.

나의 짜증섞인 어조에 깜짝 놀란 엄마가 말을 돌리려 콩이 이야기를 하자, "응 알았어 이따 확인해보고 문자 할게"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화가났다.


신랑에게 연락하여 속상함을 토로하자 "아들이어야 한다고 한 게 아니라, 아들이면 좋겠고 하신거니까, 우리는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 없어요~ 하고 넘기면 될 일이야. 어머니께 화내지 마"라며 나를 토닥였다.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생각해 보니,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자꾸만 작아지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싫은 것 같다.

아들 장가 보낼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딸을 시집 보내는 엄마를 보며, 너무나 속상했다.

나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작아지지 않는데, 도대체 왜 엄마는 내가 딸이라 작아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강하고 정직하게 잘 키워 놓고, 뭘 잘못한 사람 처럼 왜 작아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들 보고는 "며느리네 부모님께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전화해라, 네가 예쁨 받아야 좋지 않겠냐."라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내게는 "매일은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전화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아빠가 옆에서 "무슨 일주일에 한 번이야. 매일 해"라고 하시길래, "아빠는 친할머니한테 전화 매일 했어? 일 주일에 한 번은 했어? 그리고 엄마는 오빠한테도 이런 말 해본 적 있고?"라고 묻자, 엄마 아빠는 한숨을 푹 쉬며 '내가 딸을 이렇게 키우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하셨었다.

아들 장가 보낼 땐 위풍 당당하던 그들이었는데, 딸 시집 보낼 땐 왜 전전긍긍인지 모르겠고, 속상했다.

엄마 아빠가 날 딸로 낳은거잖아. 왜 나한테 그래.


"나는 결혼이 또 다른 가족이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해. 나는 챙기고 신경 써야 할 시댁이 하나 더 생기는거고, 엄마는 사위라는 가족이 생기는거야. 내가 결혼한다고 해서 시댁으로 날 떠나 보내는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나 서운해."라고 하자, "엄마 시대에는 딸은 출가 외인이었어"라고 답했다.

"응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내가 시집 간다고 우리집 일 신경 안 쓸거 아니란 거야."라고 대답했었다.


엄마가 살아온 시대의 가치관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가치관이 다르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데, 사실상 나는 엄마를 이해할 생각이 없었는 듯 하다.

"시대가 바뀌었어. 그러니 엄마도 생각을 좀 바꿔"라는 마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 생각을 이해하려 하기 보단, 내 가치관을 엄마에게 강요했다.

이는 내가 작아지는게 너무나 싫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격지심인지도 모르겠다.


이따 엄마한테 전화해서 화해를 청해야 하는데, 또 재수없에 내 생각만 나열하지 않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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