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떠나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직장 생활이 지루하고, 10년 후에도 같은 모습일 것 같다는 두려움에,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떠나볼까?’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직장생활 11년 동안 15개국 62개 도시를 여행한 내가, 또 다른 관점을 이야기 하려 한다.
(대만, 태국, 터키,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일본, 중국, 스위스, 베트남, 미국, 캄보디아, 몽골, 영국, 미얀마)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충분히 여행 다닐 수 있어요. 어쩌면 안정적인 이 여행이 더 달콤하고 평온할 수 있어요"
스물넷,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인턴을 할 때의 이야기다.
당시 열이면 아홉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건축 설계하지 마"라고 말할 때 "건축 설계, 해볼 만해요"라고 말하던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님께 “대리님만 설계 해볼 만하다며 장점을 말해 주셨어요. 대리님은 설계가 좋으신가 봐요”라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설계하는 사람들이 단점만 말하니까, 내가 장점도 있다고 말해준 거예요. 단점도 듣고 장점도 들어봐야 결정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 처럼, 다른 관점을 이야기 해 주는 누군가도 필요할 것 같아, 내가 그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되어 보려한다.
취업 후 딱 3년 안에 결혼 자금을 모아 놓고 세계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흥청망청 여행 다니느라 4년이 되어서야 계획했던 결혼 자금이 모였고, '이제 세계 여행을 떠나볼 까?' 하며, 세계 여행 계획서를 작성하여 부모님께 제출했다.
chapter1. 4년간의 직장생활 이야기
chapter2. 1년간의 세계 여행 계획표
chapter3. 세계 여행 후의 인생 계획서
chapter4. 여행 경비 계획서
심사 숙고하여 써 내려간 계획서는 단숨에 반려되었다.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은 네 마음이나, 1년간의 세계여행은 안된다 하셨다.
아빠의 수많은 반대 의견에도 온갖 반론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던 나였지만, 단 한 마디에 무너지고 말았다.
"널 떠나보내고 아빠는 걱정돼서 살 수 없을 것 같아"
나 즐겁고 행복하게 놀자고 부모님 가슴에 못 박을 자신이 없었다.
물론 막상 보내 놓으면 예상 외로 잘 먹고 잘 살고 계실 수 있지만, 혹시나 정말 불행하실까봐 떠날 수 없었다.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겪은 59년생 아빠에게 “아빠는 살며 가장 무섭거나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야?”라고 물었을 때, “너 술먹고 취해서 버스 종점에서 내렸다는 전화 받았을 때”라고 말하던 아빠였다.
인생의 모진 풍파보다 무서운 것이, '아빠가 데리러 가기 전에 혹시나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던 아빠라면, 나를 세계여행 떠나 보내고 정말로 불행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꿈 꿔왔던 세계여행이었기에, 세계여행을 포기하며 한참이나 울었다.
하지만 잃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반려 당했던 독립을 얻어냈고, 길지 않은 여행은 잦은 여행이더라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곤 크나큰 반항심으로 여섯 장의 비행기 표를 연달아 구매했고. 여섯 번째 비행기 표를 소진할 때쯤 생각했다.
'아 세계여행을 떠나지 않길 참 잘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나의 여행이 길고 긴 세계 여행이 아닌 짧은 여행의 반복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나는 평범하고 감사한 일상 속에서 가끔 찾아오는 특별한 하루에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매일이 특별한 하루가 된다면, 이젠 그 특별한 나날들이 일상이 되어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행복했던 나날도 지속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나날들은 평범한 일상이 되어 전과 같은 상황일지라도 기대감과 설렘은 예전만치 못했다.
여행은 여행. 일상은 일상. 휴식은 휴식일 때 가장 좋으며, 그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한 쪽으로 편중되는 순간 이내 질려버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여행이 반복되자 여행에 대한 감흥이 예전만 하지 못했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에 대한 감흥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여섯 장의 비행기 표 중 마지막 표였던 뉴욕을 애증의 여행지라 말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뉴욕이 별로였던 게 아니라, 뉴욕을 여행하는 내 마음이 별로였던 건데 말이다.
“나는 여행이 언제나 좋아. 여행은 언제나 설레. 여행은 항상 좋았어. 여행은 절대 지루해지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더 즐겁게 즐기기 위해, 여행을 일상으로 만들기보단, 평범한 일상 속에 가끔 있는 특별한 날로 만들어야 함을 깨달았다.
직장생활 11년 차.
그동안 나는 15개국 62개 도시를 여행했다.
(대만, 태국, 터키,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일본, 중국, 스위스, 베트남, 미국, 캄보디아, 몽골, 영국, 미얀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사랑의 무한대를 깨닫게 하는 예쁜 아기도 낳았다.
업무 능력을 인정 받아, 입덧이 심해 대중교통 출퇴근이 곤란해지자 임신 10개월 동안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도록 배려도 받았다.
모두 다, 그만두지 않고 젖은 낙옆처럼 딱 붙어 잘 버텨낸 덕분이었다.
현재 육아 휴직중인 내게 친구들은 말한다.
"너는 아빠 말 듣고 세계여행 안 간 게 신의 한 수였어"
"맞아. 나 요즘 너무 좋아. 꼭 돌아오라며 배려해 준 회사에 고맙기도 하고, 돌아갈 회사가 있다는 것도 너무 든든해. 근데 또 세계여행 갔으면 갔다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녀오진 못했기에, 다녀옴에 대한 결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여행을 다니고 있기에, 지금 생활의 평온함과 즐거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떠나는 것이 멋도 아니고 정답도 아니다.
그저 그런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처럼 여행과 일상과 휴식은 분리되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저 그런 나같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직장을 자신있게 그만둘 결단력과 용기는 멋있다.
허나, 끈기있게 다닐 책임감과 인내심 또한 아주 멋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