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곡성을 나누다
수 많은 컨텐츠들은 상상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해리포터 영화가 나온 후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아닌 해리포터와 엠마 왓슨이 아닌 헤르미온느를 상상할 수 없는 것 처럼. 하지만 곡성은 감독조차도 어떤 메시지를 주는 영화인지 명쾌하게 말하지 않기에, 여러 방향으로 영화를 해석하고 상상하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
영화를 보고 '아 재미있었다' 하고 끝내면 그 영화는 그저 재미있었던 한 편의 영화로 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얘기하며 의견을 나누면 이 영화는 그 사람과 나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영화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곡성은 나에게 있어 참 오래 남을 영화다.
영화 내내 단 30초도 편히 숨 쉴 수가 없었다. 너무 몰입해서 끝난 후에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플 정도였으니. 영화 시작한지 10분 만에 무서워서 팝콘 하나를 그대로 남기고 나간 옆자리 커플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 정도로 긴장하며 볼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
영화 내내 나에게 야생 버섯이 나오는 장면은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았다. 대신 황정민의 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에서 왜 왼쪽으로 달리는지, 왜 일본인과 똑같은 속옷을 입고 있는지, 영화를 보며 내가 본 장면들은 모두 황정민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후기를 올린 누군가는 영화 내내 야생 버섯이 원인일거라 의심했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고 S와 서로의 의견을 물었다. S는 '왜 하필 일본인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위안부 문제로 해석할 수 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을 말했다. 그렇게 보면 각 가정에서 좀비가 된 인물을 위안부에 끌려간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온 가족이 슬퍼하고 고통받고 죽어가고, 당사자는 가족들보다 더 고통스럽게 홀로 죽어가니 말이다.
곡성을 검색하면 수 많은 해석이 나온다. 기독교적인 해석들, 천우희는 누구인가, 장모는 누구인가. 수많은 후기와 해석을 검색하며 내가 보지 못한 장면들을 보게 되고, 영화에 담긴 훨씬 다양하고 많은 의미들을 알게된다. 아, 이렇게도 해석되는구나. 물론 그 후기들이 다 옳은 건 아니겠지만 각자의 해석이 이렇게도 다르다는 건 참 재미있다.
결국 영화는 말한다.
믿는대로 보게 되고,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