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엄마들이 출산하고 몸의 변화를 겪는다지만 정말이지 나에게 출산까지의 여정은 너무 가혹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후 바로 플로리다에서 유학생생활을 시작한 우리는 7년간 아이가 없었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남편과 함께 석사를 시작하며 애기는 관심조차 없었지만 남편이 박사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 타주로 이사하기까지도 아이가 계속 없었다는 건 어쩌면 그냥 우리는 아이와 인연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7년간 놀고 공부하고 여행하고 먹고 마시며 둘만의 신나고 재미있는 결혼생활을 즐겼더랬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으니 노산은 철저히 나의 선택이었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생각도 변한다고 했던가. 직장을 잡고 안정적인 생활이 시작되고 나니 비로소 아이가 궁금해졌다. 아이를 가져볼까... 건강과 체력에 대해서는 자신을 넘어 오만했던 나는 그렇게 17주 중기유산을 겪고 겨우겨우 첫째를 임신, 22주 응급자궁무력수술과 6개월의 베드레스트를 경험하게 된다. 침대에 누워있는 삶이란 보이는 것보다 잔인하다. 보이지 않는 새에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는 근육들이 나중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직립보행이 쉽지 않은 상태가 된다. 유전적인 임신당뇨가 나를 괴롭혔고 유산방지 호르몬 주사를 매주 맞으러 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출산당시 에피드릴을 맞고 아무 생각 없이 무근육상태에서 힘을 주던 나의 골반은 출산 후 그야말로 맛이 갔다. 걷을 때마다 마치 골반뼈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신음이 절로 나왔고 수유기간 동안 앉아있는 자세가 나에게 고문이었다. 겨우겨우 몸을 추스르고 2년후 다시 둘째를 가지면서 나는 미리 계획되어 있는 자궁무력방지 시술을 받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출산 때까지. 자동으로 임신당뇨와 호르몬 주사가 따라다녔고 급기야 내 허벅지에 내가 스스로 주삿바늘을 매주 꽂아야 했다. 몸이 더 늙어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두 번째 출산의 하이라이트는 안방 침대에서 둘째가 나온 일이다. 자궁무력 때문에 이미 자궁입구가 벌어져있던 나는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그것도 밤 12시에 진통을 겪게 된다. 진진통인지 가진통인지 따질 새도 없이 둘째는 15분 만에 내 침대에서 나와버렸다. 한국에서 오셨던 친정엄마는 사색이 되어 어느 드라마에서 본 대로 발목을 잡아 거꾸로 들어 엉덩이를 쳤고 둘째는 '으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더 사색이 된 남편은 911 요원과 통화하며 아이를 포대에 싸서 다리 사이에 얌전히 누이라는 소리를 거의 비명에 가깝게 질러댔다. 모든 요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탯줄을 잘랐고 나와 아이는 병원에 실려갔다. 어찌나 신기했던지 병원에 있는 2박 3일 동안 병원 의료진들이 나를 구경하러 병실에 들르곤 했다. '네가 걔라며?' 이런걸 무용담이라고 하는건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보니 간결해진 스토리는 듣는 이의 표정변화를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건 또 무슨 희한한 광경인지. 아직도 농담으로 우리끼리 이야기한다. '여기가 둘째 생가잖아. 생가. 혹시 알아? 둘째가 유명한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찾아올지'
지금도 출산의 순간 예상치 못했던 응급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면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건강은 함부로 자랑하지 않는 거라고 누가 그랬다는데 꼭 나에게 하는 말 같다. 아일 둘 낳는 동안 나의 몸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다. 둘째를 낳고 육아하는 동안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오전 11시가 되었는데 한밤중처럼 힘든 내 몸.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항상 가라앉는 것 같던 컨디션. 출산 후 지독하게 나를 따라다니던 꼬리뼈 통증. 사방에 물어보아 얻은 답들은 주로 에피드릴의 부작용이거나 오래된 베드레스트에서 오는 문제라고 했다. 이유도 정확히 알 수 없이 뭉뚱그려 느끼는 출산 후 몸변화는 내 생활을 망가뜨리기에 충분했다. 한국에 있었으면 산후조리원이라도 갔을 텐데. 엄마가 옆에서 오랫동안 도와줬을 텐데.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는 것이 현실이었다. 미국으로 온 내 선택에 의심과 회의감이 가장 많이 들었던 때가 바로 출산 후였다. 내 몸은 어디 갔나. 그것은 전생이었나. 이제 기억나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건강과 에너지. 억울하기도 했다가 슬프기도 했다가 아이를 보며 줄어들기도 했다가 나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그야말로 널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