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근육통, 하루는 성장통

by 후이빈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육 개월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더이상 계단을 오르내릴 떄 꼬리뼈에 통증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기했다. 이것이 운동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출산 후 시간이 지나서 그런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필라테스덕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내 몸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점심이 지나도 더이상 소파에 꼬꾸라지지 않기 시작했고 온갖 잡귀가 붙어 있나 싶을 정도로 찌뿌둥하던 목과 어깨가 풀리기 시작했으며, 꼬리뼈가 아프지 않으니 걷는 것이 더이상 전처럼 괴롭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깨달은 사실은 몸과 정신은 확실히 그것도 아주 긴밀하게, 실타래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몸상태가 좋아질 수록 내 마음의 색깔도 밝아졌다. 밖에 보이는 햇살이 기분좋아졌고 내 아이들의 웃음이 사랑스러워졌다. 기저귀가 많이 나와도 짜증이 덜 나고, 남편이 쉬는 날에 어딘가 놀러가고 싶어졌다. 마치 잃어버렸던 소중한 정신의 조각을 다시 찾아 가진 그런 기분. 다시 꼭 맞게 맞춘 기분이랄까.


낯설기만 했던 영어큐잉과 용어들도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다들 오른팔을 움직이는데 나만 왼팔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실수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도, 쪽팔리지도 않을 만큼 수업이 익숙해졌다. 자주 보는 회원인만큼 내 얼굴을 기억해주는 강사들이 생겼고 가끔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강사들은 그야말로 나이도 경력도 배경도 다양했다. 이민1세대 한국엄마를 둔 혼혈 30대 선생님은 한국말을 모르고 성인이 된 지금을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체조를 하는 딸때문에 미국 이곳저곳을 비행기로 차로 다녀야 하는 선생님은 다양한 기구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댄서출신 선생님은 몸의 밸런스를 잡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고 클래식한 방법을 배우신 선생님은 동작을 관통하는 기본원리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강사들의 태도는 '최대한 즐기라'는 것이었다. 몸의 여기저기가 아파서 운동하는 사람들이지만 하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즐기라'고 했다. 그래 이왕 하는거 즐기자. 운동이 끝난 다음 날은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근육통이 심한 날도 있었는데 근육통이 풀릴 때쯤 다시 수업을 듣고 다른 근육통이 생겼다. 가끔 나는 근육통을 즐기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육통의 레벨과 만족도를 연결지어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은 그 만족도란 내 몸에서 만드는 도파민의 물결이었지만.


코로나가 터졌을 때 나는 필라테스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무제한 레슨도 모자라 개인 수업을 들으러 다녔고 아기를 키우며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필라테스가 좋은 운동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스튜디오들이 문을 닫았고 당황한 나는 온라인에서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기구가 없는 나는 매트를 깔고 하는 매트 필라테스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곧 빠져들었다. 거실에 줌을 켜고 한쪽에 아기에게 장난감을 주며 수업을 들었다. 어떻게든 해야 했고 어떻게든 수업을 찾아 들었다. 오히려 코로나로 아이들과 집에 갇히게 된 상황이 나를 더 의욕적으로 만들었던 것같다. 24시간 함께 하는 아이들을 위해 집에서 액티비티를 해야했다. 그림 그리고 뭔가를 만들고 또 던지며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하루 종일 만두를 빚고, 또 다른 날은 케익을 함께 만들었다. 토마토와 고추를 같이 심었고 재택하는 남편과 매일 동네를 걸었다. 남편이 집에 있어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일순위로 확보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 힘으로 아이들에게 낼 화를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를 이렇게 길게 좋아서 배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필라테스는 나에겐 남다른 의미였다. 나의 상황과 조건이 운동을 계속 할 수 있게 기여한 것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성장하듯 나의 필라테스에 대한 열정도 함께 성장했다. 줌수업중에 종종 다리에 쥐가 나서 화면에서 사라졌다 등장하는 나를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모른척 해 주었다. 그런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므로. 그러다 내가 잘하는 동작이 생기면 내 모습을 전체스크린으로 고정해서 수업을 같이 듣는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런 날은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칭찬받은 학생이 으례히 그렇듯 남편에게 자랑을 하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도넛이며 아이스크림을 서비스로 제공해주었다.

자연스럽게 아주 천천히 필라테스는 이제 내 삶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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