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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빈 Jun 03. 2024

시간이 흐르는 빵집

매일 아침 언제나 그자리에서

요즘 주말 아침 루틴이 생겼다. 나와 남자친구는 토요일 11시 30분이면 동네 빵집에 간다. 하루 전 게시되는 매장 카카오톡 프로필에 빵이 나오는 시간과 메뉴를 미리 확인했기에 빵집에 헛걸음할 일도 없다. 시간 맞춰 도착하면 가게 안은 벌써 냄새로 가득하다.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와 뜨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빵들이 트레이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노릇노릇한 빵의 표면과 먹어보지 않아도 쫄깃한 식감이 예상되어 군침이 돈다.메뉴 이름도 어렵지 않고 직관적이다. 올리브가 아낌없이 들어간 '쫄깃한 올리브', 알록달록한 야채를 오븐에 구워 만든 '두 번 구운 야채빵', 실한 공주 알밤이 알차게 들어간 '알밤 식빵'. 아직 못 먹어본 빵들이 많기에 이곳이 질리려면 한참 멀었다.


조리 시간이 조금 남은 메뉴가 있어 미리 예약을 걸어두었다. 벌써 앞선 손님의 이름들이 화이트보드에 적혀있었다. 대기 시간이 있더라도 지루하지 않다. 한적한 빵집 주변 동네를 한 두 바퀴 돌거나 매장 앞 벤치에서 솔솔 풍겨오는 빵냄새를 맡다 보면 어느새 빵이 나올 시간. 사장님은 포장하는 손님들에겐 빵을 컷팅해 갈 건지 항상 물어봐주신다. 사실 별것 아닌 확인사항인데 먹기 좋게 미리 잘라주시려는 사장님의 배려에 유독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매장에서 만든 피클을 서비스로 담아주시는데 소스 형태라 콕 찍어먹기에도 좋다. 빵을 다 먹는 마지막 순간까지 느끼함마저 잡아주는 톡톡한 역할을 한다. 종이 포장에 쌓인 빵들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향이 난다. 집에 오자마자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커피를 내렸다. 정성으로 만든 빵을 아무 그릇에 담아 먹고 싶지 않았다. 깔끔하고 예쁜 접시에 빵을 옮겨담으면 이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진심으로 무장된 루틴들은 다정한 하루를 보낼 용기를 준다.




어느 책에서 '동네 빵집은 복지다'라는 문장을 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늘 같은 자리에서 빵 냄새를 풍기는 빵집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새로운 매장이 생겼다가도 금세 사라지고 마는 요즘의 현상과는 다르다. 꾸준히 자리를 지킨 동네 빵집은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 동네 빵집 또한 커뮤니티 기능을 한다면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과 부모들의 역할이 큰 것 같다. 매장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 빵집 간판 캐릭터 그림들이 걸려있는데 어쩐지 투박한 그림솜씨여서 사장님께 여쭤봤다.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가끔 그림을 그려 갖다 준다고 했다. 1년에 한 번씩 벽면의 그림들이 새로 교체될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추억을 쌓는 중이다. 동네 빵집 같은 곳들이 더 많아진다면 이 아이들은 자신이 자란 동네에서 부모님, 친구들과 더욱 긴밀한 연결감을 느끼고 소중한 추억들이 소복하게 쌓일 거다.


동네 빵집 단골이 되면서 내가 왜 이곳을 자주 찾게 되는지 알았다. 빵을 처음 맛보고 개인적 차원의 만족감은 이제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커졌다. 부모님이 집에 방문했을 때 네에 아주 맛있는 빵집을 발견했다며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소재가 하나 더 생겼다. 오랜 친구를 초대했을 때 내가 느꼈던 행복의 맛을 선물하는 반가움의 표현 방식이 하나 더 늘었다. 개인의 만족감에서 확장되어 함께 공유하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빵집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가는 대화의 내용은 여느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느껴지는 건조함과는 다르게 스며드는 이야기가 있다. 빵집 사장님은 아빠와 손잡고 방문한 아이를 보며 벌써 이렇게 컸다며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엄마들의 고민을 기억하며 안부를 묻는다. 단절되지 않는 이야기가 오고 가며 동네 빵집의 시간도 그곳에서 함께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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