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백련사 템플스테이
눈 내린 길 위로 또 눈이 쌓이던 날, 가평 백련사에 갔다.
서울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눈발이 굵어졌다. 우산을 깜빡해 후회했지만 기차에서 버스로, 사찰 셔틀로 열심히 갈아타느라 눈 맞을 일은 별로 없었다. 낮은 건물 위, 저 너머 지붕 위로 눈 쌓이는 풍경이 훤히 보였다.
백련사 1박 템플스테이 신청 인원은 나와 남편 둘 뿐이었다. 이 정도면 취소될 법도 했는데 휴식만 취하는 일정이라 운영에는 문제가 없었나 보다. 숙소 건물을 통째로 빌린듯한 기분으로 1층 방문을 열었다.
폭이 좁아서 쪽마루인가 싶은 곳 아래에 신발을 벗어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안에 들여놓고 싶을 정도로 날이 추웠는데, 안감이 따뜻한 방한 부츠를 신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서 체조를 해도 충분히 넓은 바닥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방바닥은 실내 온도를 조절하지 않아도 될 만큼 뜨끈뜨끈했다.
신고 온 양말을 벗어버릴 만큼 바닥 열기가 발바닥에 스며들었다. 옛날 우리 할머니 집에 깔아 둔 두툼한 이불 아래 몸을 비집고 들어가면 저릿할 정도로 따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과 나는 냅다 바닥에 누웠다. 서울 근교라도 두 시간을 달려왔으니 눈꺼풀이 절로 감겼다.
사찰에서의 시간은 느긋하지만 성실하게 흐른다. 우리에겐 두둑한 과자와 '책 한 권 읽기'라는 미션이 있었다. 에세이나 소설을 읽을까 싶었지만 들고 간 책은 남편이 사준 '부동산 투자수업 기초편'. 속세를 벗어나 가장 속세스러운(?) 책을 읽는 것이 좀 웃기기도 했지만 이날 남편과 가장 많이 나눈 대화 주제가 '집'이었다. 행복 회로를 돌리면서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눴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머릿속에 숫자가 둥둥 떠다녀서 나중엔 그냥 훑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다.
저녁 공양 전까지 책을 읽다가 지루해질 때면 잠시 누워 있기를 반복했다. 둘이 있다 보니 적막도 일종의 대화였다. 그마저도 심심해지면 산책하러 밖으로 나갔다. 사찰 식사 시간은 저녁 5시, 아침 6시, 점심 11시 반으로 속세보다 빠르다. 정해진 시간보다 너무 늦게 공양간에 도착하면 다음 공양을 기약해야 한다.
정확히 5시에 공양간에 도착해 접시에 밥과 반찬을 골고루 담았다. '반찬 몇 가지뿐'이라고 하기에는 그 노고가 얼마나 클지 잘 안다. 사찰 밥은 '이제 막 만든' 손길이 느껴져서 좋다. 저녁 공양 메뉴는 나물 몇 가지에 감자조림, 두부 구이였다. 막 끓여낸 된장국에는 깊고 구수한 향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책을 마저 다 읽었다. 밤에 별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날이 흐렸다. 저녁 산책 때 눈 밟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쉼의 방식은 자유지만, 멍하니 쇼츠나 유튜브를 보는 내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곳의 고요한 풍경을 해치는 기분이랄까. 차라리 방바닥에 엎드려서 쿠크다스와 초코하임을 꺼내 먹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웠다.
아침 공양 시간(6시)을 고려했을 때 10시엔 잠이 들어야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밥을 먹으려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일도 속세에선 하기 힘든 경험이다. 방 불을 끄니 작은 빛조차 들어오지 않아 자연스럽게 취침을 위한 공간으로 바뀐다. 깜깜한 방 따끈한 이불 아래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창 밖에는 계속 눈이 내렸고 작은 고요를 배경 삼아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