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7
언제부터인가 제목을 짓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제목을 제쳐두고 작업을 하다보면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결과를 맞이했다.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작업은 형태가 없는 것 같았다. 주제와 심상을 구체화하더라도 이름의 간단명료하면서 선명한 이미지를 대체할 수 없었다. 이름에 대한 애증이 깊어갔다. 그러다 이름 자체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이름에 대한 애증을 표현하고 싶다. 이름은 무시하지 못할 힘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부가 설명을 위한 편리한 도구로 이용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물 혹은 현상 사이에 인식을 건드린다. 사실은 흐릿한 잔상과 같은 것을 선명하게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그 선명한 상은 실제 존재하는 것과 항상 동일하진 않다. 이름은 좀 더 본질적인 것을 부여하고자 한다. 무언가의 숙명, 기능, 목적과 같은 것들이 이름에 깃들어있다. 이는 이름이 지니는 언어적인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이 연상시키는 상이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은 사랑스럽지만 밉다. 이름은 함축적 낭만과 경제적 표현의 조화를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름은 규정하고 틀을 짓는다. 다른 것이 될 가능성을 억누르고 실재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나의 사진은 이름에 반항하는 것이다. 이름이 지니는 본질적인 속성에서 벗어나 눈 앞에 존재하는 것에 집중하고자한다. 역설적이게도 실재하는 것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흐릿한 상을 이용해야했다. 선명한 이미지는 이름처럼 통념을 형성한다. 사진 속 빈 의자는 ’누가 앉을까?’라는 기능적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잔상은 그러한 사고를 방해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잔상을 마주하면 우선적으로 피사체가 무엇인지 확인 하려고 한다. 그 부분이 중요하다. 무엇인지 재확인하는 과정이 이름의 베일을 걷는 우선적인 과제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여러 장의 사진을 연결해 서사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이름이 만들어내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행위와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자 했다. 이름은 그것이 대표하는 한 장의 이미지를 만든다. 마치 한 장의 사진이 가지는 함축성과 유사하다. 서사로 주제를 풀어가는 것은 이름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다. 이름이 연상시키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하나의 행위나 상황으로 확장하고 인식에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름에 대한 반항은 이름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에 새겨져있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존재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작업이다. 고정관념과 편향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것이 진정한 이름에 대한 존중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내 작업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