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3
몇 해 전,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한 지인이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되었다. 언론은 그의 이름과 얼굴, 과거의 자취까지 낱낱이 드러냈고, 나 역시 ‘동창’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기자의 연락을 받아야 했다. 그는 명백한 살인을 저질렀기에 그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느낀 공포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진실의 무게’보다 ‘진실을 향한 대중의 광기’였다.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정보들까지 소비되는 모습, 그의 지인을 사칭하며 전혀 다른 서사를 덧씌우는 익명의 목소리들, 그리고 누군가의 파멸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듯한 시선들. 이는 가해자 뿐 아니라 피해자의 삶까지도 파편화되어 유희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내가 미디어의 어두운 단면을 처음 직면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 경험은 내가 미디어를 다루는 작가로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정하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것뿐 아니라, 진실조차도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시대. 나는 점차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자극과 조작,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집단적 욕망에 대한 조소를 작업의 언어로 삼기 시작했다.
<미디어에 대한 조소>는 블랙코미디적인 어법으로 풀어낸 사진작업이 될 예정이다. 오브제를 활용해 미디어 환경을 재현하여, 일종의 우화형식을 차용한다. 직설적인 표현 대신 이러한 형태를 선택한 것은 이것이 미디어의 힘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힘없는 광대가 절대 권력자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풍자의 형태를 선택한 것처럼, 미디어도 대항하기 어려운 힘을 지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식은 나의 지속적인 작업 태도인 ‘있는 그대로 보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있는 그대로’란 현실의 피상적 재현이 아니라, 인식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마주하려는 시선을 의미한다. 미디어라는 거대한 장치를 마주할 때, 우리는 이미 그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설계한 틀 안에서 바라본다. 그 왜곡과 개입을 반영하면서도, 실재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가 나의 작업에 자리하고 있다. 이를 위한 방법론적인 장치로서 장노출과 무채색의 배경색을 활용한다. 무채색의 배경은 불필요한 맥락을 제거하고, 오브제와 시선 사이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간극만을 남긴다. 그 위에 장노출로 남긴 잔상은 단일한 이미지가 아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축적된 인식의 단면이다. 그것은 하나의 확정된 실재가 아니라, 감각이 머무르고 흘러가는 자리에 남겨진 불분명하고 유동적인 기억에 가깝다. 이 잔상들은 오히려 선명한 이미지보다 더 많은 질문을 유도하며, 관람자 각자의 내면에서 ‘있는 그대로’ 보려는 시도를 유발한다. 나는 이러한 방식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미디어 환경에서 인식되는 실재의 형태를 시각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 믿는다.
작업의 소재는 미디어를 해체하여 개별 요소에서 선정한다. 미디어를 크게 3가지 카테고리 채널, 메시지, 샌더와 리시버로 분류하고 각각의 카테고리내에서 세분화된 소재를 선택하고자 한다. 예컨대, 채널 세션에서는 알고리즘이 개인을 소외시키고 파편화된 공간에 가두는 현상을 표현할 계획이다. 이처럼 미디어를 여러 세션으로 분해한 후 추후에 종합하고 전시하여 관객이 미디어 환경 속에 직접 들어와 있는 듯한 경험을 연출하고자 한다.
프로젝트 <미디어에 대한 조소>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미디어 환경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촉진하고, 관람자 스스로가 자신이 소비하고 있는 정보의 구조와 방식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단순히 미디어를 풍자하거나 조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디어의 기능과 구조를 해체하여 시각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관람자는 미디어를 ‘보는 자’에서 ‘미디어를 바라보는 자신을 인식하는 자’로 나아가게 된다.
오브제의 우화적 재현과 장노출, 무채색 배경을 활용한 연출은 관람자에게 익숙한 시각 언어와는 다른 긴장감을 제공하며, 실재와 비실재, 재현과 왜곡 사이의 경계를 질문하게 만든다. 이로써 정보 과잉의 시대 속에서 ‘있는 그대로 보기’의 의미를 환기시키며, 감각과 인식의 작용 자체에 대한 성찰을 유도할 수 있다.
또한, 미디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세션별로 나누어 체험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전시는 단순한 이미지 감상이 아닌 ‘미디어 구조에 들어가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는 미디어를 하나의 절대적인 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벗어나, 미디어를 구성하는 권력, 방식, 그리고 우리와의 관계를 질문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작업은 미디어라는 강력한 영향력의 실체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예술적 대응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동시대 관람자들이 보다 비판적이고 주체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실천으로 기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