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보이는 것
어렸을 때, 교실에서 뿔테안경을 주운 적이 있다.
그날 반나절 동안은 안경의 주인을 찾아주려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래서 언젠가 주인이 발견할 수 있도록 안경을 쓰고 다녔다.
생각보다 거추장스러웠다.
콧방울이 간지러워서 계속 신경 쓰였다.
평소에 안경을 쓸 일이 없던지라 안경알은 분리해서 보관해 뒀는데,
괜스레 멋을 낸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부끄러움이 지나가고 내가 보이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상상했다.
무언가 지적인 이미지와 오타쿠적 아우라가 그 모습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점차 콧방울이 간지러운 것도 잊혔다.
왜인지 집중도 더 잘됐다.
그렇게 몇 주 간 안경을 쓰고 학교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스트레오타입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이름들은, 어쩌면 기능보다 사회문화적으로 부여된 의미가 앞서기도 한다.
특히 의류가 그렇다.
누군가의 패션을 보고 그 사람의 이후 일정이나 상황을 추론한다.
때로는 성격까지 유추한다.
맞을 수도 있지만,
경험상 틀린 경우도 꽤 많다.
이것은 비단 타인의 편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경험한 것처럼 스트레오타입은 개인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보이는 것처럼, 보는 사람의 기대에 어울리는 행동을 선택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맞는 옷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브제로 선택한 안경에 대한 스트레오타입이 문제가 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있더라도 사소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트레오타입을 벗겨내는 행위에 있다.
습관적인 편견을 경계하는 것이다.
편견은
오해에 대한 모든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경제적인 행위인가.
사회와 문화를 구성하게 하는 거대한 동력인가.
혹은 거부할 수 없는 진화론적인 힘에 의해 작동하는 것인가.
한 번쯤 그 힘에 반항하여 이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용납될 수 있을까.
<안경>
By 휘립
2025. Digital Photography
돌과 안경
<안경>
By 휘립
2025. Digital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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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By 휘립
2025. Digital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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