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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선생 Apr 27. 2019

상식의 가드(Guard)를 올리자.

#020





 학원에서 상담을 전담하는 사람들(이하, 상담실장)은 대부분 강사로서의 경력이 없다. (강사 경력을 바탕으로 요즘 말하는 '코디'나 '입시 컨설턴트'로 전향한 경우나 대형학원의 상담팀의 팀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유는 명확하다. 강사 월급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결국, 상담실장은 본인의 경험에 근거하여 상담을 하기보다는 필요한 내용을 교육받아 숙지하고 매뉴얼에 맞게 상담을 하게 된다. 간혹, 중, 소학원의 경우 원장의 부인 혹은 남편이 상담을 하거나, 해당 학원을 통해 좋은 실적을 낸 학생의 엄마가 부업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당신이 만나는 대부분의 상담실장은 해당 과목에 대한 전문지식과 티칭의 경험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한 구직사이트의 학원 상담직원 채용공고, 조건에서 '경력/학력 무관'을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니, 지금까지 뭐 하셨어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자존에 상처를 주는 말인데, 왜 엄마들은 그런 말을 듣고 더 불안해하며 코를 꿰이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고등학교 2~3학년의 아이를 둔 학부모가 듣는다면 그러려니 할 텐데,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더 겪는 일이니 참으로 한탄할 일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생이나 중학생들은 아직 3~6년의 시간이 남아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과를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재수 기간 8~9개월(정시 합격자 발표 후 ~ 수능일까지의 기간) 동안에도 성적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 실장은 지금까지의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아이의 능력을 넘어선 학습도 서슴없이 권유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는 자식이 잘 될 수 없다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모르면 눈뜨고 코 베이는 거다. 가르쳐 본 적은 없지만 지갑을 열도록 하는 스킬만큼은 아주 뛰어나다. 적어도 스스로 문을 열고 찾아온 엄마들에게는.


 엄마들이 쉽게 설득당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다. 그중 첫째는 학원에 들어서기 전 스스로 내려버린 상식의 가드(Guard)이다. '나는 잘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학원 문턱을 넘어서니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인 것이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세월이 흘렀기에 자세히는 모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공부에 대한 '상식'분명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잘 모르는데 다음 학년 선행학습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기본 문제도 잘 못 푸는 것 같은데 어려운 심화 문제를 어떻게 풀지?'라고 생각해 본 그런 것 말이다. 어떻게 중, 고등학교 시절 직접 경험하고도 "하나도 모른다."라고 할 수 있는가. 같은 기간을 사회생활로 치면 최소 대리급의 경험을 한 셈이다. 대학생활까지 포함하면 직급은 더 올라간다. 그 정도의 경력이라면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쉽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누가 물으면 '좀 안다.'라고 말하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는 과도한 욕심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부족한 만 못한 법. 오르고자 하는 욕심이 크다 보니 내 아이가 어떤 상황인지 잘 내려다보지는 않는다. 실력 좋은 다른 집 아이가 뭘 하는지, 어 정도로 하는지 위만 쳐다보고 내 아이랑 비교한 뒤 불안해한다. 결국, 상담실장의 말에 쉽게 설득당한다.


 어떤 산업이든 그 활동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제조업에서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교육은 다르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소비자에게 맞지 않으면 역효과가 난다. 예를 들면, 곱셈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옆집 아이가 나눗셈을 한다고.) 나눗셈을 급하게 가르치거나, 보통의 아이에게 남들이 한다고 경시대회 수준의 문제를 공부시키는 그런 것들 말이다. 수업의 자체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독인 셈이다. 이런 상황은 '미리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다 보면 쉬운 것은 그냥 된다.'라는 명확한 기준도 없는 말을 맹신하는 것과 잘 맞아떨어진다. 결국, '고등수학을 하다 보면 중학교 수학은 쉽게 해결된다.'라는 등의 말로 더 구체화되어 전국을 사교육 시장에서 사용된다. 전문가들이 "수학은 위계가 있는 학문이니 기초가 중요하다."라고 아무리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사교육이 학생을 더 위할 것 같은가 수익의 극대화를 더 꾀할 것 같은가. 만일, 사교육에 종사하는 누군가가 자신의 수익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고 대안을 제시한다면 올렸던 가드를 조금 내리고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전국의 모든 사교육 업체와 종사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산업이 움직이는 큰 방향은 정해진 것이고 그 방향이 내 아이가 가야 할 방향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바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서비스는 남들이 간다고 따라가서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아이에게는 옥이라도 내 아이에게는 그저 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부모의 관심과 노력이 적어도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최소한의 가드(Guard)는 올리고 사교육의 문턱을 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가드는 내 아이의 상태를 먼저 파악하고, 경험에서 온 상식에 믿음을 더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상식의 가드(Guard)를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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