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서울(South Korea, Seoul)
동작구 노량진
김민수(가명) 씨는 침대에 걸터앉아 한쪽 다리가 부러진 뿔테안경을 계속 치켜올렸다. 덥수룩한 머리와 지나치게 흰 피부는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작아 통역사가 귀를 바짝 갖다대야 했을 정도였다. 속삭이듯 말하는 게 그의 천성인 듯했다.
이거 가명으로 나가는 거 확실하죠? 조금이라도 제 신상정보가 누출된다면 큰일나요. (불안하게 두리번거린다) 아, 제길.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이거 인터뷰 진행하는 조건으로 별정직 공무원 채용해주겠다고 해준 건 좋은데, 지금 얘기하는 건 공무원 채용 요건이랑 한참 어긋난 사실들일 테니까요.
(그는 두꺼운 다이어리를 펼쳐든다. 거기엔 그가 매일 끄적여댄 일기가 있다.)
그럼 이 사태가 일어날 당시부터 이야기해야겠네요. 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러 노량진에 온 고시생이었어요. 참, 제 신상이야 여러분이 저보다 더 잘 알 테니 이 얘긴 자세히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면 고시원 생활이 어떤 건지 잘 모를 겁니다. 한마디로, 그건 출입이 자유로운 감옥이에요. 그 안에서는 공부 외에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어요. 만약 누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애틋한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하면 1분 내에 사방에서 벽을 치는 소리가 들릴 겁니다.
우리 고시원에는 47명의 고시생이 있었어요. 다들 학원 갈 돈이 없어서 고시원에 처박혀 공부하는 부류였죠. 밥 때가 되면 내려와 중국산 쌀로 지은 밥이랑 중국산 김치를 먹고 다시 올라가곤 했죠. 개인 반찬은 공동 냉장고에 이름표를 붙여 넣어두곤 했는데, 당연히 남의 걸 몰래 집어먹는 것도 가능했죠. 반찬통의 수는 기껏해야 스무 개 남짓이었는데, 고시원에서 밥을 해결하는 사람의 수는 그 두 배가 넘었으니 당연하겠죠. 그래서 고시원에 오래 있을 작정을 한 사람은 미니 냉장고를 사서 방에 꽂아두기도 했어요.
이쯤되면 고시원 분위기는 대충 아실 테고...... 이제, 처음 좀비 사태가 일어났을 때 47명 전원이 고시원에 남았던 이유를 설명해야겠네요. 아마 좀비가 서울에 본격적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 모두는 그 심각성을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 같아요. 바깥 소식에 통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그보단 ‘별 일 아니어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거죠.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씩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피난을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태가 일어난다면 여지껏 했던 공부가 몽땅 물거품이 되잖아요. 그래서 바깥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대신, 더 꼭꼭 틀어박혔던 거였죠. 며칠만, 아니 몇 시간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겠죠.
서울 전역에 사이렌이 울려퍼지고 소개령이 떨어졌을 때, 비로소 우린 굳게 잠갔던 방문을 열고 1층으로 뛰쳐내려왔어요. 그땐 이미 좀비떼가 신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죠. 바깥에서 들리는 고시생들의 비명 때문에 아무도 문을 열 수 없었어요.
나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말인가요? 정말로?
이미 나갔던 사람은 있었어요. 고시원을 관리하는 총무는 소개령이 떨어지기 전날 밤에 피난갔었지요. 그는 우리보다 바깥 소식에 민감했을 테니까요.
만약 그가 떠나는 걸 알았다면 같이 떠났을 것 같나요?
당연히 그랬을 거라 생각해요. 아니, 총무가 자기가 떠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면 분명 모두 고시원을 뛰쳐나왔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총무는 우리와 원만한 사이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자기만 살겠다고 뛰쳐나갔고, 우리만 그 자리에 남겨진 거죠.
그럼 여러분은 순전히 총무가 자기 역할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쳤다는 거군요.
(망설임 없이 대답) 네. 다 그 자식 때문이에요. 빌어먹을 새끼 같으니.
(그는 조금 어색한 태도로 바닥에 침을 뱉는다.) 아무튼 그 뒤의 이야기를 하죠. 남겨진 우리들은 급히 문에 바리케이트를 쌓았어요. 모두는 성벽을 쌓아도 될 만큼 엄청난 양의 수험서를 갖고 있어서 그걸 문 앞에 잔뜩 쌓아두었어요. 부엌 쪽에 사람이 들어올 만한 크기의 창이 있었지만, 다행히 조금 높이 달려 있어 좀비의 시야에 잡히진 않았어요.
작업을 마친 우리는 모처럼 1층 부엌에 모였어요. 부엌에 있던 공용 TV에선 아수라장이 된 서울이 적나라하게 보도되고 있었어요. 전화망과 인터넷은 벌써 죽어 있었고, TV도 지직거리며 나오다 말다 했어요. 기자 하나가 목숨 걸고 가까이서 취재하다 습격당하는 걸 보니 밖에 나갈 맘이 싹 사라지더군요. 게다가 그 장소는 그렇게 멀지 않았어요. 군대든 경찰이든 저놈들을 물리치러 출동해야 할 텐데, 그들을 막아서는 존재는 거의 없더군요. 아마도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었을 근육질의 남자 하나가 좀비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다 좀비 열 마리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TV를 껐어요.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요.
가장 먼저 얘기가 나온 건 역시 식량 문제였어요. 지금 당장 모두가 가진 식량을 합쳐서 분배해야 한다, 라는 의견과 분배까진 할 것 없고 한 군데 잘 모아둔 후 매일 일정량을 나눠 먹는다, 란 의견이 팽팽히 맞섰죠. 평소에 남의 반찬을 훔쳐먹던 녀석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음식을 나눠야 한다는 걸 보니 한숨이 나왔지만, 비상시였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죠.
결국 절충안이 나왔어요. 각자 방 안에 있는 음식은 갹출하지 않기로 하고, 부엌에 있는 쌀과 김치만 매일 같은 양을 배급하기로요. 쌀은 한 포대 반 정도 있었고, 김치는 한 통이 있어 47명이 먹기엔 턱없이 부족했죠. 지금이라도 편의점이나 마트를 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원자는 아무도 없었어요.
부엌의 밥솥은 업소용이 아니라 가정용이었어요. 한 번에 기껏해야 12인분 정도만 밥을 지을 수 있었죠. 그래서 우린 한 끼당 밥을 두 번씩 짓기로 했지요. 한마디로 24인분을 47명이 나눠 먹기로 한 거예요. 산술적으로는 참 근사한 방법인데, 당연히 시행이 제대로 될 리 없었죠. 글쎄, 첫 끼부터 밥솥을 뒤엎은 놈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자기 밥그릇에 딱딱한 누룽지가 몇 숟갈 있다는 이유로! 덧붙이자면, 누룽지는 정말 좀비가 아니면 씹지 못할 정도로 딱딱했어요.
게다가 정작 문제가 터진 건 다른 이유였어요. 바로 담배였죠. 골초들은 절대 남 앞에서 담배를 피지 않고, 문을 걸어잠근 채 담배를 마지막 한 모금까지 빨아댔어요. 하지만 방 안에서 피우면 설사 창문을 닫고 피우더라도 어떻게든 옆방까지 냄새가 퍼지게 되기 마련이죠. 담배가 떨어진 사람들은 처음엔 닫힌 방문을 노크하며 담배 한 대만 달라고 했지만, 곧 욕을 퍼부으며 문을 발로 차곤 했죠.
좀비가 실내에 들어오기 전 이미 고시원에서 살인이 발생했는데, 그럼 그 시작은 담배 때문이었나요?
오...... 아니에요. 그게 또 웃긴 이유였죠. 담배가 떨어진 몇 놈들은 담배 냄새가 나는 방의 문에 표시를 해 두고 주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리고 주인이 문을 열자마자 방에 들어가 담배를 빼앗으려 했죠. 그런데 마침 방에는 반쯤 베어문 초코바 하나가 있었던 거예요. 그게 놈들의 눈을 뒤집히게 한 거죠. 서너 놈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주인을 폭행하고 방을 약탈한 후 유유히 사라졌는데, 우린 간섭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이를 내버려뒀죠.
사실 맞은 녀석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기를 받고 있기도 했어요. 이 녀석의 방에 달린 창문은 이 고시원의 방들 중 제일 커서 햇볕이 정말 잘 들어왔거든요. 이 방의 창과 1층 부엌 쪽의 창을 제외하면 다른 방의 창문들은 말 그대로 손바닥만했어요. 햇볕을 제대로 쬐지 못하면 다들 민감해질 수밖에 없겠죠. 사실은 운이 좋아 그 방이 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매달 5만원을 더 냈을 뿐이었지만.
잠시만요. 당신은......
(질문을 무시하고 계속 말한다) 다음날 약탈을 당한 녀석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내려왔어요. 달랑 카터칼 하나를 쥐고 와선 녀석들을 발견하자마자 다 죽이겠다고 칼을 휘둘렀죠. 물론 쪽수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 단숨에 제압당하고 바닥에 처박혔어요.
그런데 그 움직일 수 없게 된 또라이가, 그만, 자기를 제압한 녀석을 콱 물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좀비로 의심하게 되었겠군요.
의심을 할 새도 없었어요. 물린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자기를 문 녀석을 카터칼로 베었어요. 목을 아주 난도질해 피범벅을 만들어 버렸죠. 하지만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이미 열 명에게 포위되어 있었어요.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는 우리의 상식은 이미 수많은 뉴스로 증명된 바 있었으니까요. 나머진 방에 급히 도망쳐 들어가 귀만 세우고 있었죠.
“봐봐! 이 새끼가 좀비가 되고 있었던 거 같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자기 무덤을 파는 말인 줄도 모르고, 그 자식은 애써 자기를 변호하려 하더군요. 하지만 이제 그를 제압하든 죽이든 해야 했는데, 문제는 사람들도 물린 녀석이 자기를 물지 않을까 걱정되어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는 거죠.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녀석은 자기 죄를 용서받은 줄 알고 얼굴이 좀 밝아졌어요. 한 몇 분만 놔두면 회개의 찬송가라도 부를 기세였죠. 하지만 이때 녀석의 패거리 하나가 품에서 부엌칼을 꺼내 잽싸게 녀석을 찔렀어요. 등 뒤에서 목을 노리고 찔렀는데, 조금 빗겨 찌르는 통에 어깨를 내리찍어 버렸죠. 그 병신 같은 녀석, 사람을 찌르면 피가 난다는 사실을 전혀 떠올리지 않았던 게 분명해요. 어깨에서 뿜어져나온 피가 자기 얼굴을 적시고 입 안에 튀자 칼을 놓고 발광하더군요. 물리는 것뿐만 아니라 피가 튀어도 감염된다는 사실이 뉴스에서 이미 나왔었거든요.
치명상을 입고 죽은 녀석은 다시 살아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좀비화는 사람에 따라 빠르거나 늦을 수 있는 만큼 안심할 수 없었어요. 시체를 밖에 버릴 수도 없었으니, 우린 결국 시체들을 맨 처음 죽은 녀석의 방에 던져넣고 손을 케이블 타이로 묶은 뒤 밖에서 문을 걸어버렸어요. 머저리 같은 새 감염자 후보에게도 똑같은 조치가 취해졌고요. 한 사람이 헤드락을 건 사이 다른 사람이 수건을 입에 쑤셔넣고, 케이블 타이로 포박 완료! 마치 수백 마리의 좀비를 포박해본 것처럼 거침없는 연계 플레이였죠. 입구가 뚫리기도 전에 우리끼리 자멸할지도 모르는 우스운 상황을 막아야 했으니까요.
“하루만 방 안에 있어. 내일 이 시간에 문 열어봐서 좀비가 안 되었으면 풀어준다.”
방문을 걸어잠근 후 문 너머의 녀석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지만, 누구도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게 분명해요. 밥솥을 엎은 새끼는 시체들이랑 같이 굶겨 죽이는 게 제맛이라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내려갔으니까요.
그래서 밤에 방에서 탈출하신 건가요?
무슨 말이죠? 전 방에 없었어요. 가둬진 적도 없고요.
당신의 인터뷰는 조사된 내용과 매우 다릅니다. 방에서 농성하던 채 아사한 자의 일기를 보면, 당신은 밥솥을 엎고 남을 약탈하다 감염이 의심되어 방에 갇혔습니다. 이어서 한밤중에 창문을 통해 빠져나와 가스관을 타고 주방에 침입해 식량을 챙겨 옥상으로 도주했지요. 게다가 사람들의 추적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트에 불을 질러 혼란을 조성했고, 그 결과 좀비들이 쳐들어와 일부는 좀비가 되고 대다수는 방에 갇힌 채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구조대가 헬기로 당신을 구하려 할 때 당신은 대원들을 공격하고......
(눈을 크게 뜨고 몸을 부들부들 떤다) 그게, 무,슨, 말......
김민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비명을 지르며 발작했다. 담당 의사가 뛰어와 면회 금지를 요청해 인터뷰는 중지되었다. 간호사가 ‘이러면 공무원 못 돼!’하면서 야단치자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얌전해졌다. 그에게 두툼한 수험서를 쥐여주자 금세 밝아져 한 장씩 소리내어 읽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해리성 인격장애’라고 의사는 설명한다. 분열된 그의 인격 중 퀴즐링(유사 좀비)의 인격이 들어간 희귀한 사례라는 이유로 그는 처형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고도의 연기인지는 현재까지 판명되지 않고 있다.
“개자식. 어쨌든 제 경쟁자가 줄어들었으니 행복할 테지.”
PTSD로 입원 중인 옆 병상의 환자가 씹어뱉듯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