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꼭 한번 걸었으면 좋겠다
"어머, 손이 어떻게 그리 고와, 손톱에 뭘 바르지도 않은거 같은데 참 예쁘네요. 제주에선 보기 드문 손이야."
내 손에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신다. 밥집에서 이런 무방비 상태로 손이 곱단 칭찬을 들을 줄 몰랐다. '여자는 손이 고와야 된대, 넌 손이 정말 하얗고 예뻐' 그랬던 누군가의 말이 귓가에 오랜 시간을 뚫고 들리는 듯 했다. 최근들어 이상하게 세월이 지나서인지(?) 투박하게 보였는데. 김치찌게는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고 나도 한동안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제주에서 보기드문 손' 제주에서는 옛날부터 유독 여자들이 가장처럼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제주 여자의 애환이 담겨있는 한마디였다. 고운손으로 야무지게 밥 한그릇 비우고 해변으로 나섰다.
바다가 말간 얼굴로 웃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했다. 해변 옆에 유명해 보이는 카페가 있었지만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나는 인파를
등지고 해변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동산의 능선을 따라 산책로가 보였다.
눈에 보인 동산은 서우봉이었다. 2003년부터 마을 이장님과 동네 청년들이 낫과 호미만으로 2년 동안 만든 산책로라고 하니 더 걸어보기로 한다.
북적거리는 사람들도 없고 한적하다. 입구부터 제주 방언이 눈에 띄었다.
두렁청이 어디로 가잰 햄수광?
정신없이 어디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문장이 던지는 울림이 심상치 않다. 바쁘게만 지내는 사람들에게 쉼표를 찍어주는 한마디. 이 길이 더 기대가 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보는데 또 다른 문구가 나왔다.
인생은 한 번이지만 행복은 셀 수 없기를.
풍경만으로 위로가 되는데 글 하나 하나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 같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길은 잘 다져져 시멘트 바닥처럼 차갑지도 딱딱하지도 않고 푹신하고 편안하다. 한무리의 말도 보였다. 묶이지 않고 요리조리 다니며 풀을 뜯는 모습이 평화롭다.
분명 생각없이 그냥 걸을 길은 아니다. 구간 구간마다 조용한 마음에 물수제비 하나씩 툭툭 던져준다. 왜 그럴까. 그냥 질문인데 묘하게 위로된다. 빡빡한 현실에서는 듣기 힘든 질문이다.
혹시 저버린 꿈이 있나요?
묻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대부분은 꿈은 꿈일 뿐이고 현실에 타협하는게 어른스럽다고 얘기 하기 때문일까. 질문만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여백을 주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가끔 아직도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나를
더 표현할 수 있는 공부와 일을 찾는 내가 남들에게 스스로 거꾸로 걷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번 제주도는 여길 오려고 오게 되었나 보다. 머리속이 질문들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다가도 파란 바다 풍경 한번 보고 바람 한번 씍 불어오면 신기하게 부정적인 생각들은 날아가 버렸다.
이 길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내가 느끼는
기분과 위로를 받았으리라.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멋진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긍정열매 야금야금 양볼에 가득담아 사진만이 아닌 머리 속에 남겼다.
다음에 이 길을 걷는 날엔 오늘 했던 다짐들을 이뤄서 올 수 있길.
한번 뿐인 인생이지만 행복은 셀 수 없이 채워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