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세스쏭작가 Jul 01. 2024

마트에 가면 엄마를 찾으세요

엄마라는 여자에 대하여

 엄마는 우리를 먹여 살리는 일이라면 뭐든 두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들었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바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전가하지 않으셨기에 감히 그녀의 노고를 체감조차 못하며 자랐다. 엄마는 늘 사람과 부대끼는 일을 하셨지만 대인관계의 승자로 보였다. 엄마를 뵙기 위해 마트를 깜짝 방문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계시는 모습이 먼저 보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판매를 하는 직업이 엄마의 천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라면 절대 피하고 싶고 해내지도 못할 일들을 엄마란 이름으로 척척해내는 그녀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느 날 엄마와 시시콜콜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가 게거품을 물고 쓰러질 만한 사연을 들었다. 엄마께서 대형 마트의 대게 코너 판매직으로 계실 때 벌어진 일이다. 손님이 대게를 유심히 보다가 물총을 맞았다고 한다. 수족관 안에서도 힘이 넘치는 대게의 활약이었다. 그러자 손님이 근무 중이신 얼마를 불러 당신네 대게가 나한테 물을 뿌렸으니 사과하라고 했단다.

 "게가 물을 뿌렸는데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했단 말이야? 갑질도 정도껏이지. 그래서 어떻게 했어?"

 "사과했지."

 엄마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나라면 어땠을까? 대게의 집게다리로 강펀치를 날리는 상상만 할 뿐이다. 마음이 느슨해지고 만사 귀찮아질 때면 '대게의 심판과 엄마의 사과 사건'을 떠올린다.


 그 후 가족들 넷이서 수산물 시장에 대게를 사러 갔는데 전문가인 엄마께서 앞장을 서셨다. 번쩍이는 방수 앞치마를 두른 사장님께서 아주 싱싱한 놈으로 골라주시겠다며 빠른 손놀림으로 바구니에 대게를 담으셨다. 엄마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안 싱싱한 놈, 다리가 없는 놈들을 척척 빼내셨다. 사장님이 대체 왜 그러냐고 묻자 엄마께서 답하셨다. "왜 다리도 없고 다 죽어가는 놈들을 담아요. 내 자식들 먹일 건데."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아주머니께선 오히려 동경의 눈빛을 발사하시며 "오메. 사기는 못 치겠네. 제대로 만났구먼." 하시며 싱싱한 대게를 함께 고르자고 하셨다.


 군침 도는 대게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의 손엔 빳빳한 명함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엄마 웬 명함이야?"

 "스카우트 받았다. 언제든 일하고 싶으면 연락하래. 돈 많이 준다고 하셨어." 우와. 우리들은 엄마의 내공과 친화력에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그날 부모님 댁에 아홉 식구가 모두 모이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한여사의 무용담을 누설했다. "엄마 오늘 대게 사러 갔다가 스카우트 받았어. 사장님이 무릎을 꿇었다니깐." 우리는 웃고 수다 떨고 먹느라 바쁜데 엄마께선 분주한 손놀림으로 대게 살을 발라 접시에 놓기만 하셨다. "그만하고 엄마도 드시라니까. 대게 살수율 최고야."


 개미도 무서워하는 여자가 가족들을 위해 대게를 팔러 다녔다. 미물인 대게가 물총 쏜다고 사과도 하고 집게발에 손가락을 물려가면서 그렇게 우리를 키웠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마트에 가면 장시간 서있느라 지 사원분들의 다리가 먼저 보인다. 시식 코너에서 도둑 같은 손놀림으로 음식을 싹쓸이하고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대신 분노한다. 물건을 사다가 따뜻한 친절을 체험하면 어느 때보다도 감동하는 장소가 바로 마트이다. 여전히 마트에 가면 사람들 틈에서 밝게 웃고 계시던 엄마가 보인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여린, 사랑하는 그 여자가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