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TV를 보며 수다 떠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한 부부가 서로의 장단점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문득 호기심이 돋았다. "여보. 내 단점은 뭐야?" 나의 기습 질문에 남편이 슬쩍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이렇게 답했다. "없어." 역시. 나를 잘 아는 남편은 호락호락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에이. 내 단점 세 개만 말해 봐." 그는 또 철벽을 쳤다. "진짜 없어." 그냥 물러설 내가 아니다. "그럼 두 개만 말해 봐." 나의 유도 신문에 걸려든 남편은 결국 입을 뗐다.
"흠... (뜸 들이며 애써 생각하는 척) 갑자기 와아아악! 터지는 포인트가 있다." 풀이하자면 욱. 녀...라는 소리. 남편이 '와아아악' 소리를 내며 내 흉내를 내는데 헐크가 연상되었다. 젠장. 나는 애써 싱긋 웃으며 "자. 그다음은?" 하고 외쳤다.
"참을성이 쪼오끔없는 것 같다." 명치를 세게 맞은 나는 민망함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내가 웃자 남편도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다. 11년 남짓 지내면서 최초로 내 단점에 대해 언급한 그였다. 우리 둘 다 이 상황이 웃기고 어색하고 신선했다.
자. 이젠 내 차례. "여보의 단점이 뭔 줄 알아?" 그는 준비 됐으면 들어와 보라는 듯이 얄팍한 미소를 지었다. "뭔데?"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없어." 나는 단점 대신 줄줄이 사탕 꿰듯 그의 장점을 나열했다. 아내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사실 나란 여자에게도 단점이란 게 없다는 뒤늦은 빈말을 하였다.
늘 나를 따스한 시선으로 보며 바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남편. 그런 존재에게 처음으로 나의 단점에 대해 들었다. 웃으면서도 내 표정을 살피는 그를 보며 내심 다짐했다.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나를 성숙으로 이끄는 유일한 나침반은 사랑이다. 독설과 매로는 그 누구도 나를 다스릴 수 없으리라.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배우자의 응원은 내가 변화를 위해 발버둥 치는 작용점이다.
누구에게나 단점은 존재한다. '어른'과 '어른이'의 기준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고 노력하느냐, 그냥 생긴 대로 사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갈팡질팡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가까운 이들의 한결같은 사랑 덕분이다.
살면서 상대의 눈에 비치는 나를 셀 수 없이 마주한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나는 티끌보다 못한 존재가 되기도 하고 귀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남편의 눈을 통해 보는 나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은 사람이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남편에게 나의 단점을 묻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배려와 나의 노력에 단점을 비벼, 비벼, 계속 비벼 매운맛을 희석하고야 말 테니까.